2006 12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도 마태복음 24장의 마지막 부분 40-5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뉴스레터를 쓰는 이유는 성경말씀을 전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문 앞에 와 계심을 성경에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 40-51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0-41: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두 사람" "두 여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모든 믿는자들을 대표합니다. 영적으로 볼 때 그들만이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기르고 추수하는 일군들입니다. "두 여자"는 그 곡식을 가족이 먹을 수 있게 가루로 만들고, 또 요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라는 숫자가 평상시에 많이 쓰이는 것 같이, 성경에도 약 800번이나 쓰이고 있습니다. 이 둘이라는 숫자는 여러 번 성경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노아의 여덟 식구는 네 쌍이었고, 모든 짐승들은 그 쌍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도 이 믿는자들을 상징하여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11:3-5)라고 함으로 참 믿는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전도자들임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40-42절의 ""은 전도자들이지만, 하나는 구원을 받고 휴거를 당하며, 또 다른 하나는 땅에 남아서 불의 멸망을 받을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해답을 마태복음 24장에서 찾아본다면 17-18절이 이 구절의 주석입니다. 또 자세한 주석은 앞으로 살펴볼 마태복음 24 43-50절에 있습니다. 이 구절을 공부하기 전에 "밭에 있는 사람" "매를 가는 여인"에 대하여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밭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육신이 살아갈 수 있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3:23). 한편으로 볼 때 편안했던 아담과 하와의 삶이 밭을 갈아야하기 때문에 고달프게 되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밭에서 나오는 곡식과 채소가 노아의 때까지 인간들의 양식이 되었고,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서 나온 후 육식(肉食)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9:3). 그 후 인류역사는 이 밭에서 나오는 소산으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열심히 밭을 갈 때 천석(千石)꾼이 되고, 또 만석(萬石)꾼이 되어 인간들은 번창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쉽게 말해서, 이 번창하고 있는 땅에 소망을 둔 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휴거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그 밭에서 인간의 맏아들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였고( 4:8),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 때 "벽돌 굽기와 농사"의 일을 그 밭에서 하였고( 1:14), 애굽 땅에 여러 가지 재앙을 땅에 내리셨고( 9:), 또 이 땅에는 여러 가지 칼의 재앙도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26:6).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아무런 일도 땅에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아기 예수를 찾아온 것은, 우리가 들에서 양치는 진실한 목자이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알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6일 동안 들에서 일하고 제 7일에 쉬도록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영원한 안식을 가르치십니다. 또 수장절은 들에서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날임을(수장절: 23:16, 8:18) 우리는 배웁니다.

한편 "매를 갈고"있는 여인도 영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믿는자들을 상징합니다. 성경 기록에서 매질을 하는 사람은 여인이거나 노예들이었으며, 믿는자들을 여인으로 비유한 것으로 보아 40절과 같이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구분하시는 마지막 날을 가리키십니다.

그렇다면 휴거를 당하는 자는 누구이며, 땅에 남아 있는 자는 누구냐 하는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 해답은 마태복음 24장에 있으며, 자세한 주석이 42-51절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휴거를 받지 못하는 자들을 말하며, "유대에 남아있으며 산으로 도망"하지 않는 자 들이며, "지붕에 있다가 물건을 가지러 내려간 자",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킨 자들이며", 이들은 다 "사단의 유혹에 속임을 받은 자들"입니다. 더 확실하게 말하면 이렇게 유혹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도적과 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알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들에 있으며, 매를 가는 자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시기(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하여는 고의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42-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 구절에서 "깨어 있으라: watch"는 번역이 아주 미약합니다. 영어 KJV의 번역은 그 희랍어 원어 gregoreo를 감시하다(watch)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바른 번역이며,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 감시를 지붕 위에서 했고(삼하 18:24, 왕하 9:17), 또 그 감시자는 무장을 했습니다( 33:). 구약에는 이 감시하는 사람을 파수꾼(watchman)이라고 하였고( 33:2), 이 파수꾼은 무장을 했을 뿐 아니라, 적을 파수하지 못할 때 파수꾼이 생명을 대신 바쳐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33:6). 또 군대에서는 이 파수꾼을 불침번(不寢番)이라고 하며, 불침번은 자기 차례가 있어 그 시간에 자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시해야합니다. 파수꾼도 불침번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을 성경에서 배웁니다.

"깨여 있으라: watch" 라고 하신 말씀의 주석은 누가복음 12 35-48절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2 38절에 "주인이 혹 이경(second watch)에나 혹 삼경(third watch)에 이르러서도"라고 함으로서 예수님께서 "불침번을 서서 시시로 감시하라"고 하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가복음 13 35절에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라고 하심으로 파수할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하신 것이 마치 "밤낮, 매일같이, 또 평생을 깨어 있어야 도적을 막는다"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배웠고, 또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성경에서 더 살펴봄으로써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재림을 왜 도적과 비교하셨습니까? 도적의 뜻을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도적은 재물을 훔치러옵니다. 그런데 참 믿는자들에게는 훔쳐갈 만한 것이 이 지상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 3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12:33)

이 구절에서 "구제"를 받아야 할 가난한자는 심령이 가난한자 입니다( 5:3) 믿는자들의 소망은 오로지 하늘에만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도적을 말씀하실 때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될 것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데살로니가전서 5 1-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1-4)

위에서 읽은 두 구절들은 믿는자들에게는 절대로 그리스도께서 도적과 같이 오시지 않는 다는 것을 가르치며, 이 도적을 말씀하실 때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적하여 하시는 말씀임을 알게됩니다. 여러분의 소망이 전적으로 하늘나라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깨어 있는 우리에게는 도적과 같이 오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마태복음 24 42-43절을 읽어보면 우리 믿는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따로 있음을 알게됩니다. 위 구절에서 "너희도"라고 하신 것과 "저희도"라고 하신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같은 내용을 받아 쓴 마가복음 13 37절에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심으로 "도적"을 말씀하실 때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적하셨음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도적과 같지 않다" 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파수꾼은 적이 어느 시에 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때에 써야할 모든 무기를 준비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적과 같이"라고 하신 것은 "생각지 않은 시간" 이상의 뜻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어느 경점(更點:what watch)" 참 믿는자들은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짓선지자를 또한 "도적"이라고 정의 하셨습니다( 10:1, 7:11). 이 구절은 도적이 오는 시기 "큰 환난시기"를 가리키신 것이며, 참 믿는자들은 이 시기를 알도록 충분한 자료와 지혜를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도적"이 교회시대에 대부분의 신자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합니다.( 23:30, 5:4) 그러나 참 믿는자들은 모든 것을 천국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12:33) 도적이 훔치거나 좀이 먹을 보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자들은 깨어 있어, 감시하고 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 4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영문 KJV: Therefore be ye also ready: for in such an hour as ye think not the Son of man cometh

위의 구절에서 "" "an hour" 입니다. "한시간:an hour" 의 깊은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때, 지옥에서 영원히 받아야 될 그 형벌을 "한시간; an hour"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an hour)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26:40)

이 구절에서 "한 시 동안도"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그 기간이며, 제자들이 동산에서 자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 뿔뿔이 흩어져 갔고,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홀로 지셨음을 우리가 알게되었습니다. 그 형벌은 우리가 지옥에서 영원히 받아야 할 것과 동일했습니다. 인류가 마지막 날에 받아야 할 심판 때를 "an hour"라고 부르셨습니다( 18:10).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예비하라"고 하신 것은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이 시간이 언제 오든 간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다 깨어 있는(감시하는) 자들이며, 모든 것을 명령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성경말씀),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적인 관심이 있어 시기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시기는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에 따라 갑자기 정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며, 이 시기는 창세 전에 이미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人子)라고 부르신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인간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지옥에서 받을 영원한 형벌을 인간으로는 아무도 대신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45-46: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택하심을 입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자들은 모두가 구원을 받은 결과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충성의 뜻을 자선사업을 열심히 한다거나, 교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faithful)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말씀, 성경 전체를 다 믿는 일입니다. 또한 "지혜"는 구원의 동의어이며, 우리에게 그 지혜가 있는지는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십니다.

이 구절에서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며, "집 사람들"은 교회의 회원들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 천상교회 회원들에게 서로가 양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의 영문 KJV "give them meat in due season"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3 2절에 "내가 너희를 젖(milk)으로 먹이고 밥(meat)으로 아니 하였노니"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5 12절에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strong meat)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니면서 아직도 우유만 먹는다면, 그 아이에게 큰 건강문제가 있음을 누구나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에도 이러한 상태를 볼 수 있으며, 교회의 권사나 장로가 되었으면서도, 성경은 덮어두고 목사님들의 신령한 설교를 찾아다니는 것이 바로 그러한 현상입니다. 히브리서 5 12절의 교훈은 누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 자라서 단단한 음식(strong meat)을 먹을 것이며, 또 서로가 선생이 되어야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유를 먹는 아이는 남이 먹여주지만, 딱딱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자신이 찾아 먹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음식을 나눠주는 일이 때가 되었을 때(in due season)있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기가 바로 마지막 큰 환난을 당하고 있는 지금입니다. ("때를 따라" 보다는 "때가되어"가 바른 번역")

47-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성경은 믿는자들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악한 종"으로 나누었습니다. 나와 여러 분도 지혜 있는 종이 못되면 악한 종입니다. 그런데 그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그리스도의 재림) 생각하는 신자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도적과 같이 오실 것을 믿는자들이며, 또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말세에 심판 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의식(意識)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다수는 큰 교회의 교인들이며, 지상의 평화와, 안정된 국가와, 행복한 가정을 추구(追求)하는 평화의 사자(使者)들입니다. 어떻게 평화의 사자들을 악한 종이라고 부르셨는가?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아무리 인류 평화에 대한 훌륭한 생각과 계획이 있을 지라도 성경말씀에 위배되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합니다. 49절이 이것을 설명합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취하기 위한 것이며, 술을 마시고 취하면 제 정신을 잃고 뒤숭생숭 지껄이게 됩니다. 성경말씀 중 술 마시고(drunk), 또 취한다(drunken)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가 거짓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는 것을 지적합니다. 성경에서 "먹고 마시게된" 일의 기록을 몇 군데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경우는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직분을 팔았던 에서의 얘기를 창세기 25 34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 25:34)

장자의 직분은 구원과 영생을 상징합니다. 이 것이 바로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영생도 받는다는 현대교회의 상태입니다. 교회의 관심이 구원과 영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눈에 나타나는 번영을 보면서 거기에 속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이사야 22 12-13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 22:12-13)

이 구절은 또 젊은 세대가 술친구들과 모여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며 술에 취한 흥겨운 이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받게될 큰 형벌을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베옷을 입고 통곡하고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누가복음 12 45절에는 먹고 마시는 청지기들의 행동을 더 자세히 설명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노비를 때리며"라고 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노비는 남종과 여종이며, 그 종(교회 지도자)의 회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회중을 때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은 영적인 뜻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림으로 상대방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짓복음으로 심히 때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로 서만의 구원을 바라보는 영혼이 심히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이 충성되지 못한 종이 매를 맞는 다고 하셨습니다.

50-51: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구절은 마지막 날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일어날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12 45-48절에 이 사건을 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12:45-48)

"주인의 뜻을 알고도"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말하며, "알지 못하고"는 세상의 멸망을 받을 모든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매를 맞는 것은 형벌을 말하며, 교역자들이 성경에서 나온 진리가 아닌 말을 회중에게 설교할 때는 비록 청중이 기뻐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감동할지라도, 사실은 그들이 형벌을 받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종말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형벌을 받을 자들을 "외식하는 자들"로 정의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었으며, 이들은 항상 예수님과 대립하였고, 그들 자신들이 가장 훌륭한 유대의 지도자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교회지도자들이 이 바리세인들과 서기관과 동일한 길을 걷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과 서기관을 견책하실 때 인용하신( 15:7, 7:6) 이사야 29 13절을 살펴봄으로써 편지를 마감하겠습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 7:6-7)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 29:13)

이 두 구절에서 읽는 중요한 경고는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신 점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외식하는 자"로 정의하신 데 대하여 유의하며, 저희들의 복음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할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복음회 소식: 출판한 책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1,500권은 반 이상이 배부된 듯 합니다. 출판사에서 책방에 내놓은 것이 288권이며, 한국 동두천에 사시는 임양님씨께서 나머지 212권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부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이 책을 읽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보내드릴 계획입니다. 한국에 사시는 독자 중에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거나, 배부 방법의 아이디아가 있으시면, 임양님 씨에게 연락하십시오(전화:031-862-1011, cell전화 011-9738-0111).

미국에서는 저희들이 책 주문을 받겠습니다. 전하 는 803-233-4402 혹은 803-389-0202 (cel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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