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 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출판하는 책의 머리말을 책의 서론으로 하고, 출판사로부터 새로 머리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머리말을 다시 썼습니다. 이 머리말에 대한 여러분의 조언이 있기를 바랍니다.

2월 달에는 책 출판을 계약하고, 이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이주옥 피아노 회사 사장님께서 맡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머리말과 제 10장을 2006년 뉴스레터로 보내드립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1-26-2006

머리말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책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책의 새 이름) 는 캠핑씨(Mr. Harold Camping)의 "The End of The Church Age---And After(교회시대의 끝----그리고 그 이후)"와 "Wheat and Tares(곡식과 가라지)"의 내용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Family Radio 의 요청에 의하여 "교회시대의 끝----그리고 그 이후"가 이미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께서 지금 무료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Family Radio, Oakland, California 94621).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는 말세에 대하여 성경을 공부한 내용입니다. 성경은 창조 주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책이라고 믿는 독자들에게 지대한 성경지식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이제까지의 성경학자나 신학자들이 알지 못한 내용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의아한 생각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을 때,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발견하여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며, 또 진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말세에 대한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천년왕국(이광복), 아마겟돈전쟁(John Walvoord), 신세계의 도래(Hal Lindsey), 대 유성 지구의 종말(Hal Lindsey), 대환난과 휴거(Tim LaHaye) 등의 소설과 같은 유명한 얘기가 교리의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LaHaye 박사의 종말에 대한 저서는 5,500만 권이 팔렸고, Lindsey의 저서도 1,000만 권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예외 없이, 많이 팔리는 책의 내용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 있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이 성경의 진리와는 먼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기독교의 교리는 유명지사들이 전개한 신조를 믿고 채택한 것이며, 그러면서도 예외 없이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책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는 이와 같은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며, 그 부정해야할 이유를 성경말씀이 지적하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교리가 근년에 와서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약성경을 쓰던 때에 이미 교회 안에 잘못된 교리가 침투되어 있었던 사실을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종교개혁이 발생함으로써 기독교의 교리가 바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 했습니다. 1619 AD에 "The Synod of Dort"가 제창한 칼빈주의의 5개 항목과 같은 교리를 대개의 교회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5개 항목은 지금까지도 성경말씀을 최소한 바르게 알고있다는 기초적인 교리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 신앙은 점차로 알미니안(Armenian) 교리로 인하여 점령되었고, 지금에 와서 칼빈주의는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교회와 교파가 알미니안 교리를 믿고 있습니다.

이 칼빈주의의 5개 항목, 투립(TULIP)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여, 하나님을 영접할 의지가 전혀 없다.(Total depravity)

2.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만이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을 받으며, 믿음도 은혜로 얻는 다.(Unconditional election)

3.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만을 거듭나게 하신다.(Limited atonement)

4.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인간이 거절할 수 없다.(Irresistible grace)

5. 성도가 받은 구원은 상실 될 수가 없다.(Perseverance of the saint)

그러나 성경의 교리를 비교하여 말한다면, TULIP의 교리는 성경이 포함한 교리의 1,000분의 1도 되지 못합니다. 사실상 이와 같은 1,000분의 1의 성경교리를 잘못 믿을 때, 나머지의 성경교리를 잘못 믿게 된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알미니안 교리 중 유명한 교리의 하나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TULIP의 교리를 전부 부정할 뿐 아니라, "내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오지만 그 구원이 완성되기 위하여 내가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릇된 교리를 믿으면서도 그 교리가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온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잘못된 교리를 고집할 때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눈을 더 멀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TULIP의 교리를 배경으로 성립된 종교개혁시의 교리가 우리의 신앙 문제를 다 해결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벨직신앙고백,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성경문답 등이 Tulip과 같은 교리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교리도 수없이 많은 오류가 포함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참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고 성경을 깨달을 때마다 교리를 부단히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말세가 올 때까지 성경의 숨겨두신 진리를 결코 하나님께서 깨닫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믿고 있는 교리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은 불가피하며, 책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를 이해하는데도 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 신앙은 내가 노력해서 찾고 선택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일한 하나님의 음성인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참 뜻을 찾는 일입니다. 성경은 결코 알기 쉬운 책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알게 하시는 때를 겸손하게 기다려야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세우신 이유는, 그들이 자기가 택하신 백성들의 선생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생명을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은 이 선생들을 통하여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롬 10:17)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여러분을 인도하는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엘리사가 살던 당시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아내에게 시중들던, 사로잡힌 "작은 계집아이"가 저희들의 ALM 복음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무능하고 지혜가 없지만, 문둥병을 고치는 의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 작품이 어떤 책의 번역이거나, 그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회가 염두에 두는 것은 참 진리가 전해져야 한다는 소원뿐이며, "그 놀라운 성경말씀의 뜻을 누가 발견했는가" 에는 관계하지 않습니다.

저희들 복음회를 도와주시고 책을 출판하기 위하여 동역을 하시는 한국의 이주옥사장님과, 미국의 동역자들 임병순 목사님, James Yune장로님, Helen Kong자매님, Song Brown자매님, 이장호 형제님, 김상천 형제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복음회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모든 글을 타자치는 일과, 복음회의 살림을 맡아보고 있는 저의 충실한 동역자 제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 성경의 복음을 전하는 Family Radio와 캠핑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 10장

내 구원은 확실한가?

1. 곡식과 가라지가 나눠지다

이 장에서 중요한 질문 한가지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어떻게 나눠집니까? 교회시대 동안에 이 일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성취하실지, 그 계획과 방법을 말씀하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큰 환난기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성취하십니까?

A. 곡식과 가라지가 나누어지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하여는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는 그 원칙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16절에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복음이 전해질 때에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영적으로 살아나게 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더욱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됨을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양면으로 날이 선 검(劍)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쪽 날로서 구원을 가지고 오게 하지만, 다른 날로는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당하도록 잘라 내십니다.

교회시대가 끝남과 함께 큰 환난이 시작되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시대가 끝난 후에도 아직 추수가 계속됩니다.

교회시대를 통하여 참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영원하고 보이지 않는 천상교회의 시민이 됩니다. 사실상 교회시대(외형적인 눈에 보이는 교회)가 마지막에 이르렀지만, 지금 이 큰 환난 기간에, 아무도 셀 수 없이 많은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천상)의 회원으로 그 수를 더하십니다.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큰 환난 시기의 두 번째 시기에 추수할 일군을 보내게 되나, 이들은 지교회 회중에 의해 보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 있는 구원받은 개인들을 통해,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구원하시는 추수하는 일군으로 보냄을 받습니다.(계 7:9)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교회시대 동안에 교회가 전하던 복음과 본질상 동일합니다. 굳이 그 차이를 말한다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교회가 전하던 복음보다도 성경에 더욱더 충실합니다. 교회시대 동안의 복음은 지교회의 회중을 세우는데 초점을 두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추수 때에 전파되는 복음은, 이 교회시대가 그 마지막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교회에 내려진 것에 초점을 둔다. 교회 목사가 충실하게 설교를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듣고 구원을 받도록 마음에 적용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시는 사역을 성취하시는 방법이며,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B. 추수하는 자들이 가라지를 거둔다

마태복음 13장 30절에 곡식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를 살펴볼 때, 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만 할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어라 하리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 보아야합니다. 지난 장에서 배운 바와 같이 추수군들은 복음을 전하는 참 믿는자들입니다.

그런데 가라지를 먼저 단으로 묶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와 같은 질문에 답변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성령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합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더욱이 복음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가지고 옵니다. 참 믿는자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사실을, 마치 그들이 구원을 누구에게 주는 것처럼 표현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위하여 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고 실행할 때, 복음 자체가 영적인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추수군에 대하여 요한복음 4장 36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추수군들은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참 믿는자들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있습니다. 추수군들은 충실하게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눔으로써 추수를 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됩니다.

우리가 교회시대의 끝장이 났음을 온 세상에 선포할 때, 지교회의 회중도 이것을 듣게됩니다. 그들도 또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기에 대하여 이해하여야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묶어 불태울 가라지를 거두시게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 30절에서 가라지를 거두어 함께 묶고 태울 준비를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서는, 교회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 위에 내려졌음에 초점을 두고있습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심판을 내리시는 예가 됩니다. 예레미야서 5장 15-17절과 20절을 읽어봅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예레미야 4장 16-17절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와 똑 같은 내용을 요한계시록 14장 6-7절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심판을 지교회에 내리신다는 말씀을 우리가 세상에 선포할 때, 지교회도 역시 이것을 듣게 됩니다. 그들도 우리가 살고있는 절박한 시기에 대하여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진리를 들음으로, 이것이 곧 불에 태우기 위하여 가라지를 거두는 사역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 하심을 알게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에서 추수군이 가라지를 거두어 묶어 불에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회원들 중에 누가 구원을 받은 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아무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고, 그 사람의 영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엄숙한 선언을 온 세상과 교회에 선포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을, 예레미야 5장과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큰 환난 기간동안에 지교회는 영적으로 바벨론이 되었고, 사단이 지교회를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바벨론의 왕으로 군림하여 이 지교회를 통치하게됩니다. 그는 광명의 천사(고후 11:14)로 나타나며, 거짓의 아버지(요 8:44)로 나타나기 때문에, 교회의 회중이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믿고 있으나, 사실상 그들은 사단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C. 하나님께서 지교회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마지막 추수기에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만일 그들이 바벨론이라고 불리게 된 교회에서 아직도 출회를 당하지 않는다면, 교회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 24:15-16,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눅 21:20-21,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렘 12: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렘 51: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이 명령이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시는 방법입니다. 많은 진실로 믿는자들이 교회에서 출회를 당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들이 교회의 회중으로 있는 동안, 하나님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너무도 강조했기 때문에 당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그들은 교회를 위해 죽임을 당한 두 증인으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에 남아있는 참 믿는자들은 교회에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나와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에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교회에서 나와야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이며, 이 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함으로서 마지막 추수를 하게되는 것입니다.

D. 우선 가라지를 묶는다

우리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공부하면서, 마태복음 13장 30절의 말씀을 이해하는데는 질문이 생깁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그 다음에 곡식을 곡간에 드린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이 구절에서 어떻게 가라지를 불사르게 단으로 묶습니까?

큰 환난시기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던 지교회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서, 사건의 순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됩니다. 교회로부터 출회를 당했거나, 교회에서 나오라는 명령에 순종한 곡식(참으로 믿는자들)은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존재할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교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멸망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큰 환난의 두 번째시기에 있으며, 더 많은 곡식의 추수가 마지막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추수한 곡식을 곡간에 넣는다는 뜻은, 세상 종말에 추수가 완성되었을 때를 말해야합니다. 마지막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곡식은 곡간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참 믿는자들이 들림을 받아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며, 그때에 믿는자들은 영원히 부활한 새 몸을 받습니다.

그러나 큰 환난기간에 지교회 안에서 어떤 활동이 전개될 것이며, 거기에서 가라지는 묶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실정을 볼 수 있는 그들의 영적인 눈이 아직도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명령이 내릴 시기가 아직도 되지 않았다고 논박하며, 이러한 명령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다시 오시어 심판하실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단으로 묶어 준비하십니다.

E.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미혹을 보내신다

성경은 가라지를 묶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첫 번째 방법은 아주 강한 미혹을 보내십니다. 두 번째 방법은 그들에게 진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십니다.

강한 미혹에 대하여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의 문맥은 "불법의 사람"(사단)이 나타나 성전에 자리를 잡는(통치하는) 그 시기에 우리가 처해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는 사단이 표적과 거짓 기사를 가지고 옴을 말합니다. 10절을 또 읽어봅시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절과 12절을 또 읽어봅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회중은 사단의 왕국에 속해있기 때문에 쉽게 현혹되며, 거짓말을 믿게됩니다. 그들이 현혹되었기 때문에 사단의 올무에 쉽게 빠지게됩니다. 그러한 올무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것이며, 방언을 말하는 것 등입니다.

F. 하나님께서 그들의 귀를 닫으시고, 또 그들을 장님이 되게 하신다

예레미야 5장 21절이 주는 두 번째 경고를 읽어봅시다.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찌어다"

이러한 상황을 사도행전 28장 26-27절에 더 자세히 설명되었습니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위 구절의 문맥은, 교회시대의 끝에 가서 참 믿는자들이 지교회에서 출회를 당하는 상황의 그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교회를 성경말씀의 관리자로 쓰셨던 시대가 끝나고, 세계선교에 있어 하나님께서 개인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들은 것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기는 원했지만, 그들은 바울을 반대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8장 22절이 이에 대하여 보고 하고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그러나 그 당시의 가장 훌륭한 신학자였던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바를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28장 23절을 읽어봅시다.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바울이 이 진리를 유대 지도자들에게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듣고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또 그들 마음에 갈등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과의 집회의 결과를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8장 29절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가 이 말을 마치니 유대인들이 자리를 뜨더라.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상당한 쟁론이 있더라."(행 28:29 KKJV)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가지고온 사도바울의 복음이 진리인가를 그들 자신의 생각에 적용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받아드릴 의사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사도행전 28장 25-28절에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사실상 사도행전 28장의 말씀은 또 하나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역사적으로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의 얘기이지만, 실제 하나님께서 회당과 성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관리하는 일에 임무를 받았었지만, 시대가 전환되어 그러한 사역을 지교회에 넘겨주시던 때를 그들이 당면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비교하여 볼 때, 유대인들은 큰 환난 기간에 지교회 회원들을 상징하는 일종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를 기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위의 구절은 사도행전 28장 25-28절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이 두 구절이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13장 15절은 이스라엘 나라를 직접 말하고, 사도행전 28장 25-28절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가서 지교회 회중에게 나타날 상태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복음의 관리자로 더 이상 쓰시지 않게 된 것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우리는 판단하여야합니다.

지금 우리가 질문하고 살펴 보고있는 것에 대하여 로마서 11장은 특별한 도움을 줍니다. 로마서 11장 전체는 이스라엘이 교회시대로 전환된 후 수 십 년(十年) 동안의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이 장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저버리신 것입니까? 그러나 이 장의 문맥은 이스라엘 나라에 초점을 두고있습니다. 5절에 그 답이 명백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 구절에는 남은 자를 말씀하시며, 이에 대하여 로마서 11장 7-8절에 엄중하게 선언하신 것을 읽습니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구원을 받은 남은 자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스라엘이 장님으로 남아 있음을 가르칩니다.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우리가 직각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얼마 전에 살펴본 마태복음 13장 14-15절에서와 같이, 나머지가 장님이 된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예언하여 경고하시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알게되는 중요한 진리는, 단지 남은 자들(remnant)만이 말씀에 충실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은 자는 전체의 아주 적은 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서 11장 4절에 7,000을 사용하시어 엘리야 때에 남은 자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의 인구는 수백만이 되었을 것입니다. 7,000은 1,000,000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남은 자가 전체 수에 비하여 아주 적은 숫자임을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이스라엘에 대하여 살펴볼 때, 세상의 종말까지 이스라엘의 상태가 장님으로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로마서 11장 25절을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두 가지 사실을 이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은 "이방인의(모든 나라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하신 것이며, 이것은 세상의 종말을 지적합니다. 이 구절이 가르치는 것은, 온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사람이 남아있는 한, 이스라엘 나라는 장님으로(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심을 알지 못하는) 남아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님으로 남아 있게되는 것이,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을 우리가 알게되었습니다.

두 번째 유의할 점은, "이스라엘의 더러는 장님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중에 참 믿는자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아주 신사적인 유대인 중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수는 극히 적은 비율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리고 참 믿는자들은 유대인 회당의 회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회당 밖에 있습니다.

눈이 멀어 진다는 언어를 이스라엘에게 쓰셨고, 또 동일한 언어로 큰 환난 기간에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의 눈이 멀어진다고 하신 것을 기억합시다. 이와 같이 눈이 멀어진다는 비유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와 직접 관계가 됩니다. 오늘날의 지교회의 영적 상태는 사데교회(계 3:)의 상태와 동일한 것입니다. 사데교회 안에는 몇 몇 참 믿는자들이 있었지만 죽은 교회였습니다.

G.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을 쓰셨는지 우리에게 가르친다

예레미야 36장 2절이나, 사무엘하 23장 1-2절에는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6장 2절을 읽어봅시다.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사무엘하 23장 1-2절에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마태복음 13장 34-35절에서 배우듯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계속해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위 구절에서 단순하게 "비유"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상의 얘기로서 천국의 뜻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사실은 예수님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요 1:)이라고 하신 점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비유가 아니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셨고, 성경전체가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 기록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는, 축복으로 물려받는 모든 영적인 풍성한 성경의 뜻을 알게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H.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암시하시는 비유의 주제를 우리는 더욱 더 이해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 결과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비유를 이해 할 수가 없게 되었지만, 믿는자들이 진리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고 선언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10절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 대한 질문을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을 때 그 답을 11절과 14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러한 구절을 공부하면서 알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적 진리를 참 믿는자들에게 알게 하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비유는 동시에, 참 믿는자가 아닌 자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이전에 배운 바와 같이,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방법에 있어, 비유를 사용하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예를 때때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구약 잠언서도, 하나님께서 "잠언"이라는 이름을 이 책의 이름으로 주셨습니다. 히브리어 "잠언"은, 때때로 "비유"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잠언은 모든 구절이 비유나 은유로 되어있기 때문에, 잠언에 기록된 모든 구절이 영적이고, 복음의 뜻이 있다고 알아야합니다.

시편 78편 1-2절을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또한 구약시대 때, 피를 흘리는 제사나, 번제, 제 7일 안식일과 또 다른 많은 의례적인 율법은 비유이며, 또 은유임을 우리는 이해하여야합니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실제적으로 있던 사건이 어떤 하나님의 복음의 프로그램을 지적합니다.

위의 구절과 또 많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신 그 방법을 보여주십니다. 성경의 비유나 은유는, 하나님께서 천국의 뜻이나 영적인 뜻을 제시하시며, 또한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 프로그램의 설명이 항상 동반합니다.

I. 표적이 믿는자들을 따를 것이다

모든 성경구절에서 영적인 뜻과 복음의 말씀을 발견해야합니다. 이렇게 성경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을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신 때에 능력을 주심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2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더욱이, 사도바울이 파선을 당한 후 멜리데 섬에서, 나무를 불에 넣을 때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바울은 그 독사를 불에 떨어트리고 해(害)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이 마가복음 16장 18절에 "뱀을 잡으며"라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고합니다.

신학자들의 이러한 결론은, 마가복음 16장 17절의 "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하신 예언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표적이 사도들에게 따르리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믿는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고 하신 것은, 모든 믿는자들이 어디에 있거나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는자들에게 따르는 다섯 가지 표적에 대한 영적인 뜻을 발견함으로써, 이 구절들이 나머지 성경말씀에 조화가 되고, 또 하나님께서 직접 이 구절을 쓰셨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구절이 완전한 성경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내 (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로서, 믿는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될 때 그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선택받은 자가 구원을 받을 때는 마치, 그가 가지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고, 그들은 더 이상 사단의 권력아래 있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두 번째의 표적은 믿는자들이 새로운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영적인 뜻은, 모든 국가가 본국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비단 영어, 독일어, 혹은 불란서 어를 말한다 할지라도, 믿는자들이 말하는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방언과 구별이 됩니다.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그 뜻과 적용이 말하는 자에 의하여 확실하게 다릅니다.

믿는자들을 따르는 세 번째 표적은 그가 뱀을 잡습니다. 성경에서 뱀은 사단(계 12:9)을 상징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사단의 권력아래 있고 사단이 우리를 통치하지만, 구원을 받은 후에는 우리가 오히려 사단을 통치하게됩니다. 마가복음 16장 18절에서 사용한 비유는, 마치 뱀꾼이 뱀을 마음대로 취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자들을 따르는 네 번째 표적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 구원을 받으면 우리는 정결한 복음의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거짓 복음을 듣는 것은 독약을 마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32장 32-33절에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그러나 믿는자들이 구원을 상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믿는자들이 거짓 복음의 독을 마신다할지라도 그들은 구원을 상실하지 못합니다.

믿는자들을 따르는 다섯 번째 표적은,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믿는자들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이것은 영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믿는자들이 복음을 증거 할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시는 것은, 영적으로 병을 고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표적이 모든 믿는자들에게 따른다는 것을 보았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봐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유로만 말씀하셨다는 성경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우리가 아름다운 성경구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말씀은 역사적인 자료이지만, 그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임을 발견하고, 영적으로 해석을 할 때 비로소 성경의 뜻의 확실한 해명을 얻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J. 숨겨져 있는 많은 진리를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그 시기가 되었다

우리는, 다니엘 12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그 시기에 와있습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이 구절은 성경에 숨겨졌던 많은 진리가 우리에게 드러났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방법이 비유이기 때문에, 진리는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신다는, 성경해석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계속하여 숨겨져 있습니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인봉 되었던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어떤 부분이나 또 전체에서 영적인 가르침을 우리는 찾아야하며, 하나님의 자비로 성경에서 교회시대의 종말에 대한 진리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지교회에 심판을 내리시며, 마지막 추수를 하시는 늦은 비에 대하여 알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지교회를 버리고 거기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심을 볼 때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더 찾고 또 발견해야합니다. 이와 같은 영적인 진리를 바로 이해할 때, 성경의 구절 구절이 크게 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직역의 성경해석법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문이 닫아 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가르침을 성경에서 찾지 못하게됩니다. 불행하게도 신학을 졸업한 거의 모든 목사들과 성경학자들이, 문법-역사적 성경직역법 만을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하여 교회시대가 끝난 것을 영적화(靈的化:Spiritualizing)한다고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그렇게 쓰신 이유가, 바로 그들로 하여금 불평할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슬프게도, 이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극히 중요한 과제를 완전히 무시하게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온전하신 가르침을 따라 가는 참 믿는자들을 사용하시어, 처음으로 가라지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 다음에 마지막 추수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곡식은 곡간에 넣으십니다.

K. 곡식의 마지막 추수

요한계시록 14장 14-16절에 곡식과 가라지가 갈라지는 마지막 추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추수"라고 한 것은 구원받은 사람을 지적하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들이 추수하는 순간 그들은 부활된 영혼을 받습니다. 인자(그리스도)가 추수의 사역을 주관하시며, 참으로 믿는자들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됩니다. 그러므로 이 추수는 세상종말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추수가 된 각 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교회인 하나님의 왕국에 가입이 됩니다. 우리가 배운 바와 같이, 추수하는 때에 가라지는 묶임을 받습니다.

이 추수의 마지막에 가서 곡식은 곡간(구원이 완성됨)에 들어가며, 그들은 새로 부활한 영적 몸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마지막 심판날에 도달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8-20절에서 경고하신 것을 읽어봅시다.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이 날이 바로 가라지가 불태움을 받는 날입니다. 이 날은 바로 가라지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날이며,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 25장 15-16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시기로"

교회에 남아 있는 가라지들이 당할 환난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와 같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지교회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실정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많은 교파가, 교리의 권위를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방언을 믿거나, 환상, 표적, 기사를 하나님께서 그들 교단의 설립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말씀의 권위를 성경에 더하거나, 또는 감할 때, 하나님의 심판(재앙을 더하심)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단의 권한아래 있습니다. 본 공부에서 이미 배운바와 같이, 교회시대 동안에는 사단이 교회를 통치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자가 그릇된 교회에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는 더 신실한 교회를 찾는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시험을 받고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참 믿는자들은 교회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곧, 바벨론에서 나와야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 믿는자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 무서워 떨게됩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때에 새로운 부활된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들의 지교회를 떠나게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보수적인 교회들이 교회시대의 끝장에 대하여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오늘날의 지교회를 지적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지극히 심각하게 말하시는 몇 곳의 성경구절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렘 5:23: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렘 5:2627,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군의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가 되어"

렘 6:14-15,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7: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위의 본보기와 같은 내용을 성경에서 더 찾는다면, 백 배 이상의 예를 발견할 것입니다.

교회시대에 사단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어떻게 공격하는가를 알게되면,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이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무서운 놀라움이 우리 마음 속속들이 다가 올 것입니다. 사도시절에 성전과 회당 안에 존재하던 똑같은 현상을 우리가 보지 않는가! 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은 오늘날의 많은 교회지도자들과 같이 아주 도덕적이고, 품위가 있고, 경건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지교회 모든 교인들을 놀라게 하는 또 다른 사실은, 아무도 가라지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내가 그 가라지 중에 하나가 아님을 어떻게 다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교회 안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세상에 있는 사악한자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습니다. 교회시대를 통하여 지교회가 지니고 있는 상태를 성경은 분명하게 지적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이상과 같은 질문은 극히 심각한 질문입니다. 내 성경 교사와 목사가 참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일 그가 구원을 받지 못 했다면, 그는 사단의 통치아래 있으며,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읽은 바와 같이, 그는 사단의 "의의 일군"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시대를 통하여 직접 가르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알 수 없고, 곡식과 가라지는 실제상 아무도 분간을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알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만일 의심을 갖는다면, 내가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을 내가 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각 개인이 자문해야 할 극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2. 구원의 확실성

A. 하나님의 선택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자신이 물어 보아야하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우선 우리는 거듭난 순간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발견하여야합니다.

어떤 개인이 구원을 경험하는 일에 있어, 하나님께서 하시는 아주 중요한 세 가지 사역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은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예외 없이 시행됩니다.

하나님께서 시행하시는 처음사역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어떤 개인을 구원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사람들을 미리 선택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1장 3-5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수천만의 인간이 살수 있도록 세상을 창조하실 그 이전에, 인간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 하는 아주 비참한 꼴을 이여 내려다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완전무결하게 창조하셨으나,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인간은 비참한 상황에 놓였으나, 하나님은 거역한 인간 중에서 몇몇을 선택하시어, 거역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사실은 참으로 엄청나게 무서운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로 오는 형벌 또한 엄청나게 무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에 자신을 위하여 구원할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실이나 희망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죄를 대속 하시고 구원하실 자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러한 선택받은 자들을 영원히 소유하시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무언가 하셔야 했습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완전한 법에 의하면 각 개인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려야합니다. 비단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며, 또 그리스도에게 그들을 영원한 소유로 주셨다 할지라도, 그들의 죄값을 치르기 전에는 그들을 소유하실 수 없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의 대가는 하나님의 법에 의하여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에, 실제상 선택받은 인간이라도 그리스도의 영원한 소유로 받아질 수 없습니다. 선택받은 자들도 그들의 죄값으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두 번째의 극적인 사건을 시행하셨습니다.

B. 죄를 대신 지신 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내려다보실 때, 선택받은 자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대신 받을 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음을 아셨습니다. 이에 대한 구절들이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한 법은 영원한 멸망의 죄값이 치러져야만 믿는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천국에 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하여, 선택하여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 자신이 죄를 담당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가 사람으로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인자(人子)가 되셨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가 구원하시고 저 하는 인간을 법적으로 대신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길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가 저주를 받으셨음을 세상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가 바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인간들을 위해, 대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읽어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 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렇게 함으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바가 되신 것입니다. 지옥의 무서운 형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인간을 버리신 것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버지께 부르짖으셨던 것에서 이 형벌의 무서움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4절을 읽어봅시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한순간도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 아니시었던 때가 없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사건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의 죄값을 지불하시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한가지의 죄도 빠짐없이 사하심을 받지 못한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주신 모든 자들의 죄값을 지불할만한 충분한 경험을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대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완전히, 또한 영원히 사함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 대신 완전하게, 또한 영원히 죄값을 치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더 시행하실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하시기로 선택된 자들도 죄로 가득 찬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받기로 선택된 자들도, 구원받지 못한 온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살고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3절을 읽어봅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누구나 다 구원받기 전에는 그들의 육신은 죄를 원하고, 또 그들의 혼도 죄를 갈망합니다. 그들이 구원받기 이전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동일하게 영적으로 죽어 있어, 그들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지옥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상태는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선택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엄청난 세 번째 사역을 요구하십니다.

C. 새로 태어나는 기적

하나님의 세 번째 사역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신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새로이 부활된 영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요한복음 3장 3, 5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물과 영으로 난다는 말씀은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사역하심으로 복음(물)에서 새로 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을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환경을 조성하셨습니다. 그 환경은 바로 성경이며, 그 성경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시대를 통하여 지교회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각 개인이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으로써 열심을 가지고 세상에 복음을 계속하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D. 위대한 변화

구원을 받는 순간 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질문을 해야합니다. 거듭난다는 뜻이, 그 사람 생애에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구원받기 이전에, 우리의 인격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들과 같았음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의 새로운 영은 그리스도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가 구원을 받는 순간, 그는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에게 새로운 영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요한일서 3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 구절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순간 우리 인격에 큰 변화가 있음을 하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이 새로 부활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영의 인격은 죄를 생각하고 범할 수 없습니다. 그의 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는 성경이 제시하는 모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영은, 구원받는 순간에도 변치 않을 옛 육신 안에서 아직도 살아야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새로운 인격 안에 두개의 완전히 다른 욕망이 서로 대립하게됩니다. 한편, 하나님의 법에 그는 순종하지만, 또 다른 인격은 아직도 죄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곤란한 입장을,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쓴 로마서 7장 21-24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모든 믿는자들은 우리의 죄로 물든 육신이 범죄하지 않기를 원하게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인격 속에 일어나는 갈등은 항상 있게됩니다. 그러나 또한 구원받은 부활된 영은 점차로 승리하는 생활이 발전될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순간에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그 개인의 삶 속에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로마서 8장 9절에서 말하신 바 같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마음속에 거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은 우리의 시민권이 천국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고 난 후 그 사람의 삶 속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며, 또 이러한 변화는 결정적이고 믿는자들의 삶에 중요한 행동과 욕망이 있게됩니다.

특히 시편 119장은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믿는자들의 아름다운 부활된 영을 소유한 사람의 간증입니다.

시편 119편

10절: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절: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6절: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24절: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47절: 나의 사랑하는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77절: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나로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여러 번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 구원을 받으면 성경말씀의 아름다움을 점차적으로 경험하고, 그 삶에 있어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큰 동기가 됩니다. 요한 1서 2장 3-5절은 이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참으로 믿는자들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계명임을 알고있습니다. 그는 또한 아직도 죄로 물들어 있는 육신이 범죄 하게 될 때, 부끄러운 마음을 절실히 느끼게됩니다.

E. 두렵고 떨린다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본성이 거룩하고 의롭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공의로서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믿는자들이 그들 평생을 통하여 행할 "사역"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로 그 구원 자체입니다. 그가 은혜 안에서 자라면서(벧후 3:18), 그는 불신자와 같은 죄로 물든 생각에서 떠나게되며, 두려워하고 떨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믿는자들은 성경을 지극히 사랑하고 믿으며, 지옥이 그들을 위협할 수 없음을 알게됩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음을 알게됩니다. 다른 한편 그가 성경의 가르침을 더 알게되면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인간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형벌을 받는 것이 당연함을 알게됩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을 읽으면 더욱 더 두려움으로 떨게되는 이유를 알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바를 읽어봅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참 믿는자들을 사랑하시고, 또 참 믿는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서 여러 번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상반이 됩니다. 위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 "두려움(fear)이 다른 여러 곳에서도 사용되었고, 그 뜻은 놀란다(Fright)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말씀을 어떻게 해결하는데 있어 열쇠가 되는 것은 "온전" 이라는 단어가 두 번 씌어진 점입니다. 앞서 공부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과 23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이 구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명확하게 나타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시범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한, 죄로 물들어 있는 우리의 육신은 계속하여 죄를 짓고 살게됩니다. 아무리 은혜 속에서 자란다 할지라도, 우리의 육신은 결코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때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부활된 영원한 육신을 받을 때 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극히 사랑하시던 다윗 왕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글을 보면, 그가 범죄 했을 때 그의 심정에 나타난 본성이 있습니다. 시편 51장 전체가 그 본성을 가르치지 만 그중 몇 구절만을 읽어봅시다.

제 51 편: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일은, 우리가 그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당연히 받아야하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므로 안전하다는 것을 알며, 또 절대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는 다는 것을 압니다.

이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거의 모든 회원들은 교파가 가르치는 것이 진실하고 성경적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교회 안에 교리와 상반되는 이단적인 가르침이 발생할 때, 모든 교인이 이단적인 가르침에 반대해서, 그런 자들을 출교(黜敎) 시켰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단을 가르친 자를 출교 시키지 못할 때, 그들은 역사적으로 교회의 창시(創始)자 들이 가르친 것으로써 교역자가 성경에 진실한가를 판단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이단적인 교회를 떠났고, 새로운 회중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개혁 당시에 극적으로 일어났고, 개혁교회가 로마카톨릭에서 나온 후 성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가르침을 지교회가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여러 가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고, 각 교파마다 한 성경의 주제를 가지고 다른 해석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각 교파들이 물로 주는 세례에 대한 본질과 또 성경의 가르침에 있어, 구원받는 것과의 관계에 대하여 각각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 교파는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F. 지식과 이해가 크게 증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서 영적인 큰 변화를 세상에 가지고 오십니다. 세상은 심판날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12장 9절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이 구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이 구절은 세상종말에 성경에 감추어졌던 진리가 마침내 믿는자들에 의하여 알게될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전 교회시대 동안에는 이러한 성경의 진리가 전혀 이해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말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의 인봉을 떼시고 숨겨진 진리를 우리에게 알도록 하십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1). 성경은 인간 역사의 달력을 제시하며,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달력과 맞추어 비교할 때, 세상의 창조가 11,013 BC에 일어났음을 발견하게됩니다. 동시에 노아의 홍수가 4990 BC에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Family Radio가 발간한 "Adam when?"을 참고)

2). 십계명 중 네째 계명인 안식일은 의례적인 계명중의 하나입니다. (Family Radio가 발간한 "일요일이 안식일인가?"를 참조)

3).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신 것과, 성찬식의 계명은 또한 의례적인 계명입니다.

4).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기관, 지교회를 세계선교를 위하여 임명하신 시기의 끝이 왔습니다.

5). 교회 밖에 있는 믿는자들 각 사람에게, 추수하는 사역을 주셨습니다.

6). 교회시대를 통하여 사단은 지교회와 전쟁을 하였으며, 가라지를 교회에 보내어, 교회가 사단의 통치하에 있도록 하였습니다.

7). 마태복음 24장 21절에서 말하는 큰 환난시기에 처하여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하나님께서 지교회의 회중과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8). 큰 환난기간에 사람이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은 온 세상에 교회 밖에서 구원을 얻게됩니다.

9). 마지막 심판은 지교회에서부터 시작되며,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단으로 묶는 사역이 진행되며, 그들이 마지막날에 하나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합니다.

10). 우리의 구원은 완전히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어떤 일도 시작하거나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비유는, 영혼이 죽어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사역을 명백하게 보여주십니다.

위에 열거한 것은 성경진리의 일부분이며, 교회가 가르치지 못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성경의 진리를 열심히 찾던 신학자들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역사상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시간표가 있음을 기억하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 일을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며, 또 그들을 감동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새로운 진리를 더 배울 것이며, 이러한 진리가 성경적이냐 하는 것을 점검할 것이며, 참으로 때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시작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계속하여 이 사실이 성경적인가를 살필 것이며, 그들이 지교회에서 나와야 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지교회가 진리에서 떨어져나갈 것을 성경은 이미 예고하고 있음을 알게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을 뿐 아니라, 그 시기에 대하여도 예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더욱 더 성경을 상고하게됩니다. 그들은 더 명확하게 지교회를 떠나야 되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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