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5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지난 4월에는 편지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여행하면서 편지를 쓰고싶었지만 기회가 없었고, 사실은 편지를 쓴다해도 성경을 공부하지 못하면서 세상 얘기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여행 중에 출판사에 들릴 수 있었고, 책 내용을 교정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출판되기 전에 표지를 교정할 기회를 놓쳤고, 표지 디자인도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지난 일월에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한 다음에 원고를 정리하고, 이전에 거래가 있던 한국에 있는 두 곳의 개혁주의 기독교 출판사와 연락한 결과, 두 출판사로부터 모두 견적서(見積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난 후에 책의 내용(교회시대가 끝이 났다는)을 받아 드릴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거절을 받고 이틀만에, 우연히 셋째 번 출판사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출판된 책을 귀국할 때 몇 권을 손에 들고 올 수 있었습니다.

1,500권이 출판되었고, 1차로 500권이 서점에 배부될 것이며, 책이 팔리는 것에 따라 그 다음 500권이 서점에 나갈 것입니다. 나머지 500권은 여러분께 보내기 위하여 선편으로 오는 중입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우리가 들고 올 책 꾸러미를 출판사 사장 김수관 장로님께서 손수 가지고 Hotel에 오셨습니다. 그 때 책이 서점에 나가서 어떻게 판매되는 경로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출판된 책을 총판에 의뢰하면 책값의 50%가 총판기관과 책방에 가며, 10%가 비용을 제하면 40%가 저자에게 올 것이라고 합니다. 1,000권이 팔리면 출판비가 충당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책이 몇 권이나 팔릴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시원한 대답이 없습니다. 현재로 한국에 출판된 기독교 서적은 30,000 종류가 나와 있으며, 매월 평균 120종의 기독교 서적들이 출판된다고 합니다. 새로 나온 책이 첫 달에 서점에 전시되고, 그 후 매상이 없는 경우 책은 선반에 들어가며, 몇 개월 후에 출판사로 반납이 된다고 합니다.

책에 대하여 기독교 신문과 월간 출판소식에 광고가 될 것이지만, 많이 팔릴 기대는 하지 말도록 암시를 받은 듯 합니다. 저희들 복음회로서는 출판 비를 다 지불했고,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니고 책을 출판함으로써 책을 읽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찾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기도 중에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김수관 장로님(출판사 사장)을 만나게 된 일입니다. 이 장로님도 출판사의 첫째 목적이 참 복음의 선포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로님의 신앙이 고려파 장로교회(개혁주의)에 그 기초가 있으며, 또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장로님의 이차적(二次的) 사업으로서 출판사에 되돌아오는 서적들을 감옥의 죄수들과 시골 농촌 교회에 보내는 일을 하시고 있습니다. 몇 개월 후 책이 팔리지 않는 경우 저희들 복음회도, 다시 장로님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오늘은 한국을 다녀온 간단한 여행기를 쓰겠습니다.

제가 1965년에 미국에 왔고, 그 후 1993년에 단 한번 전도지를 돌리기 위하여 단체를 따라 서울 거리를 보고 온 일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가서는 내가 나서 자라난 곳 충청북도 단양을 구경하고, 아내의 고향이며,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충주를 구경하고, 국제 관광지가 된 제주도를 구경하고, 동두천 처남 네 집에 있으면서 휴전선근처에 있는 관망대와 또 시골 풍경을 많이 구경하고 왔습니다.

제 인상에 남아있던 한국은 1960년대의 한국이었기 때문에, 보는 모든 것이 요정(妖精)에게 홀려 어떤 알지 못하는 신천지에 와 있는 듯 했습니다. 모든 것이 무척 변하고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시골 골목길이 다 포장되고, 마을마다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어 옛 한국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소가 쟁기질을 하는 농촌의 풍경은 간데 없고, 농가 집집마다 앞들에 자동차가 있고, Tractor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농부들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음식, 식당 문화: 3주를 한국에 있으면서 많은 진미를 즐겼습니다. 몇몇 한국 사람들에게서 한국은 음식, 식당 목욕문화가 많이 발달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찾아갔던 시골마다 식당이 있고, 각 식당마다 특색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동두천에 있는 ()이라는 음식점에서는 음식이 아마도 열 차례가 나왔든 것 같습니다. 한국 고유의 음식자료를 쓴 평생에 먹지 못하던 진미들 이였으며, 휴전선 근방에 있는 오리집에서는 오리고기와 더덕구이도 정말 특별한 맛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전복회와 전복죽을 즐겼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출장을 다니던 경험에 의하면, Hotel에 부속되어 있는 식당의 음식은 별로 맛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서울에서는 골목에 있는 냉면집에서 오래간만에 냉면 맛을 보았고, Outback Stake House에서 양식도 즐겼습니다. 또 기억에 남아 있는 음식은 비행기(KAL)속에서 먹은 비빔밥과 비빔 국수 등입니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이 남아있는 음식은 이모네 집에서 (결혼한 신부의 이모이며, 모든 사람들이 이모라고 불렀음) 보름을 같이 살면서 대접받던 음식들입니다. 아침저녁으로 20가지정도 되는 반찬들을 만들었고, 또 식사 후에는 한국 특유의 식혜와 과일을 대접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국사람만이 아는 시큼한 풋 배추김치는 미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진미였으며, 딸기도 그 맛이 다릅니다. 사실은 제가 여행 직전에 수술로 인해 잃어버린 체중 10파운드를 이모네 집에서 회복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몸무게가 136파운드로 되돌아 왔습니다.

 

여행계획: 사실 이번 여행계획은 제 아내의 조카딸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결혼식을 전후해서 관광계획을 했습니다. 이 관광의 목적이 내가 나서 자라던 모국을 죽기 전에 꼭 한번 가고픈 이유도 있었지만, 스위스에 사는 둘째 딸은 6세 때(1967) 한국을 떠난 후 처음으로 한국에 가 보는 것이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식 전에 제주도를 관광하고, 결혼식 후에는, 새로 개발된 관광지 서해안의 경치를 보고 싶었지만, , 사위, 그리고 손자의 의견이 서울을 구경하는 것으로 한정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딸의 식구가 스위스에서 오기 전에, 제 고향인 충청북도 단양과 충주를 다녀왔고, 딸네 식구가 온 후 제주도에서 2 3일을 관광하고, 결혼식은 4 22일 있었습니다. 그 다음 한 주를 휴전선, 국립박물관, 비원 등을 방문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충정북도 단양은 두메 산골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단양을 지금은 구()단양이라고 부르고, 아주 번화(繁華)한 신()단양이 고개 넘어 있는 옛날의 도전리가 개발되어 관광도시가 되었나봅니다. 신단양이 생긴 이유는 구 단양이 충주 땜이 건설됨으로 물에 잠기어 없어졌기 때문에, 단양에 살던 모든 살림이 신단양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살던 단양에는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언덕에 있었고, 교회 뒤에는 신작로(新作路)라고 부르던 기차역으로 가는 찻길이 있었고, 그 찻길 위에는 향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말끔하게 단장해 둔 향교를 보고 교회가 있던 자리를 짐작만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소학교(1938-1945)는 운동장만 남았고, 그 운동장 주변은 새로 심은 벚꽃나무 꽃이 활짝 피고 있었습니다.

신단양으로 이사를 한 단양 감리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소학교 시절에 같이 교회와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아직도 그 교회의 원로 장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장로님은 부인의 병환으로 서울에 가 있었고, 교회 임재선 단임 목사님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또한 부활절을 앞둔 때였기에 수 십 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청소하고 있었고, 목사님은 저희들 일행에게 단양교회의 80년사(年史) 교회 요람(要覽) 책들을 주면서 제가 교회를 떠난 후(1946) 얼마나 번창해 졌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실상 옛날 내가 다니던 단양교회는 마루바닥에 십 여명이 모여 앉아 예배하던 예배당이었지요. 지금 단양에는 감리교회 이외에 5-6개의 교회 간판을 볼 수 있으며, 교회가 마을이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감리교회는 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이층 건물이며, 281명의 교인이 모일 수 있고, 교육관이 잘 시설되어 있는 현대교회입니다.

 

충주: 사범학교를 다니던 곳이고, 또 아내를 만나 결혼한 곳입니다. 아내의 바로 손위의 오빠는 별세하고 조카와 올케가 살고 있습니다. 충주에서 한 밤을 지나면서 한국 풍습이 아직도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차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와 불교: 제가 한국을 떠나던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은 불교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그 교인 수를 기독교와 비교하면 그 비율이 전도 된 듯합니다. 거리마다 교회는 우뚝 서 있고, 밤에는 그 교회의 십자가에서 찬란한 빛을 멀리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신자의 수가 한국 인구의 60%라고 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도 옛날에는 보지 못했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두천에서 2주를 있는 동안,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면서 10분 이내로 방문할 수 있는 절간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시가를 가면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절간의 간판입니다. 또 놀란 사실은 석가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한달 전에 절간이 초롱으로 장식 되 있을 뿐 아니라 절간이 아닌 시가의 많은 건물들과 거리가 석가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주도 여행: 2 3일의 단체 관광을 제 처남의 사위가 주선해서 신라 호텔에 이틀을 머물었습니다. 같이 간 사위는 등치가 커서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어려워 둘째 날은 Hotel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Hotel의 시설과 서비스는 미국의 고급 Hotel을 능가하며 그 정원과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하루를 소일하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제주도를 돌과 바람과 여자(해녀)가 많은 3다도(多島)라고 부르는 이유 중 돌이 많은 것은 밭, 묘지와, 집들의 주변을 돌담을 쌓은 것으로 알게 되고, 바람이 많은 것은 세차게 느끼도록 불어 닥쳤습니다. 해녀들은 더 이상 자연산 해산물을 따지 않아도 바다 속에서 인공으로 길러낸 해산물이 충분히 재배되고 공급된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국제 관광지이며, 일본과 주변 나라에서 관광 온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관광지점에 버스가 슬 때마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를 보게되며, 2,000대가 넘는 관광버스가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제주도가 얼마 전까지 한국 젊은이들의 신혼여행지였으나, 국가가 잘살게 되면서 지금은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서울 구경: 딸과 사위가 제주도 신라 호텔에 정이 들어, 한국을 떠나기 전에 서울에서도 신라호텔에 3 4일을 보냈습니다. 호텔종업원들에게 받은 절의 수를 계산할 수도 없습니다. 손님들에게 무척 친절하고 모든 편리를 도모합니다. 23층으로 된 호텔은 서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언덕에 있고, 밤에 볼 수 있는 야경도 너머도 아름다웠습니다.

서울 용산에 새로 새운 국립박물관에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이년 전에 개관했다는 박물관은 그 규모가 웅장하며 또 아름답습니다. 수백 명의 소학교 아동들이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관심을 끄는 사실은 많은 국보들이 일본에서 되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경천사 십층 탑은 화강암 조각이고, 그 높이가 30자나 되니 그 무게를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것을 일본이 어떻게 훔쳐 갔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됩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보았고, 남대문 도매시장을 밤에 구경하며 많은 지게꾼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한국사람들처럼 부지런한 국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사람들이 한국의 인상을 빨리 빨리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잘먹고 잘사는 한국사람들은 그 부지런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의 평균 국민소득이 세계의 10위 안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빨리 다니며 사는 한국을 보면서 시간이 빨리 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골로새서 4 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이 구절에서 외인은 세상을 말하며, 세월은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사에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귀중한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오신 것이 기약(시간)이 되어서 오셨고,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6)

또 기약(시간의 약속) 하시기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가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바쁘면 바쁠수록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되지 않습니까?

세상의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 다 곧 말세가 올 것을 시인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도적과 같이 오시지 않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2)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으로 근신하는 것에 대하여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시기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여기에서 어두움은 세상을 말하며, 구원받은 자들만이 이 어두움에 있지 아니함을 지적하십니다. 어두움에 있다는 뜻이 근신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홀연 히 갑자기 오시지만 내가 착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다시올 시기에 대하여 배우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는 여러분에게 도적과 같이 오시지 않는 예수님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전화로나 편지로 책을 주문하시면 무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5 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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