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시작한 마태복음 24장의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24:4-5)

 

주의하라는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기 전에 그 때에 우리가 처신 해야할 태도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의하라:take heed"에 대한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이 길을 갈 때 길이 평탄하지 않으니 조심해서 걸어가라고 하신 정도로 들립니다마는 더 심각한 뜻이 있음을 성경말씀을 살펴봄으로써 알게됩니다. 마태복음 244절이나 마가복음 13 5절에서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을 때는 속게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 말한다면 구원받지 못한 자는 말세에 가서 다 속임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말세에 가서 특히 미혹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미혹한다는 영문 KJV에는 속이다:deceive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영문 KJV 번역은 뜻이 더 확실하게 설명된 것 같습니다.

인간역사가 시작되면서 곧 서로가 속고 속이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에게서 배운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도록 속인데서 시작됩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더라도 사단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싸우는 전술과 전락이 속임수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알게됩니다. 역대의 성경학자들이 소이 종말론이라는 학설을 통하여 마지막 큰 환난에 큰 전쟁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거짓말을 합니다마는, 성경이 가르치는 큰 환난은 사단이 속임수라는 큰 무기를 가지고 택하신 백성들을 대항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데살로니가후서 2 11-12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delusion)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실입니다. 세상역사는 인간들이 속고 속이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유의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거짓 것을 더 믿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에 가서는 역사상에 예를 들을 수 없는 거짓말들을 모두 믿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며, 이것을 바로 예수님께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4:21)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속고 속이는 마지막 환난을 전쟁으로 비유하셨고, 이것을 넓이 아마겟돈 전쟁( 16:16)이라고 하며, 거짓을 믿는자들과의 전쟁을 말합니다.

또 유의할 점은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 하게 하사라고 하신 것은 세상이 유혹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기관과 거기에 속한 사람들, 즉 기독교와 기독교인이 그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줄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는 별로 없으신 것이며(어차피 그들은 다 지옥의 멸망을 받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임을 주장하며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시고, 또 유혹을 보내시는 곳이 바로 그 교인들이라는 점입니다.

전쟁 즉 싸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중동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이러나는 이유를 생각한다면, 서로 미워하고 상대방을 제압하고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이 이방인들과 수 없는 전쟁을 했을 때 그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전쟁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의지하고 싸울 때 늘 승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보호하셨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사건들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그림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은 매일같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정욕과 싸워야되고( 4:1-2), 또 대적이 사단이라고 하셨습니다( 6:12). 특히 사단은 무저갱에서 잠깐 놓인 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사단의 세력은 아주 막강합니다. 사단은 이 싸움을 위하여 사방에서 군사들을 모은다고 했습니다( 16:14). 말하자면 여러분과 저는 역사상에 전무(前無) 후무(後無)한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시무시한 전쟁의 결과를 요한계시록 1919-21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이적을 행하던이라고 말씀했고, 사단의 종들을 거짓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적을 행하는 일은 말세의 가장 큰 징조(徵兆)입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교회가 이 이적을 행하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이적들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며, 기도로 병을 고치는 일이며, 또 거짓 선지자가 이마에 손을 댈 때에 뒤로 넘어지는 일입니다. 사실상 한국인처럼 이적을 믿는 교인들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한국인의 기도원들이 한국과 미국에 있습니다. 이적을 믿고 기사를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기도원에 가는 이유는, 하나임으로부터 신령한 계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도원에서 몇 일을 기도했더니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이해 하게되었다라고 하는 간증들이 바로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적을 행하는 사단이 걸어놓은 올무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지침이나, 말세에 처신할 태도를 말씀에서 배워야 됩니다.

말세에 사단의 유혹이 전쟁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나갈 무장에 대하여 명료하게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6:13)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갑주를 어떻게 얻습니까? 갑주(희랍어: Panoplia)에 대한 주석이 누가복음 11 14-26절까지에 있으며, 개역성경은 이 갑주를 무장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122절에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all his armour)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 11:22)

말하자면 더 강한 자(그리스도)가 와서 사단을 이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게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과정을 설명하시는 한 비유가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구원받은 거듭난 자들에게는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바로 입혀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에베소서 6장에는 이 전신갑주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6:14-17)

 

이 구절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공부해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갑주들을 자신이 만들어 입을 수 있다고 믿는 기독교인이 허다합니다. 또한 우리 손에는 하나님말씀인 예리한 검, 성경말씀, 외에는 갖은 것이 없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 4절에 너희가 사람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것은 너희는 내가 준 전신갑주를 입고 있음을 기억하라고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유혹하는 역사(役事)를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더욱 더 보게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 5절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금 세상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교역자들이 내가 믿는 예수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라고 합니다. 자신들이 유혹을 받고 비 진리를 믿고 있으면서도 자신들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를( 25: 14-46)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어두었던 악한 종의 대답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 25:44)

 

이 한 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은 자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뒷전에 두고 자기 구미에 맞는 교리를 만들고 가르치는 자들과, 또 믿고 따라가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로마교이며, 희랍종교이며, 성공회이며, 감리교이며, 장로교이며, 순복음교회이며, 침례교이며, 모든 종파와 교인들이 아닙니까? 어느 한 교파라도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아니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그 증거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이상의 마태복음 24 4-5절을 공부하고 한국에 있는 어느 독자 한 분과 대화 한 내용을 뉴스레테의 일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이대우 가족 드림, 7/19/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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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H씨로 부터 온 편지, 1

안녕하세요? 지난  5월에 보내주신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를 잘 읽었읍니다. 읽고나서, 여러가지 의문들이 있어서 장로님께 질문합니다.

1.저는 아더 핑크의 책들을 읽고, 회개, 중생 등 기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만일 아더 핑크라면 자신의 이런 구원교리들을 실제 전도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겠는가? "란 의문을 갖고 지난 1999년 가을부터 기도한 끝에, "좁은길"이라는 청교도적 전도서적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이 책의 영문원문은  http://www.intoutreach.org/-> The Narrow Way 에서 읽어 보실 수 있읍니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를 미국에서 만나 중생의 체험을 하고, 귀국 후, 하나님의 섭리로 수원우만교회(합신)" KSS목사님을 만나게 되어, 그 교회에 출석하고 계신 CEY이란 분을 알게 되었읍니다. CEY씨의 중생간증문은 http://www.intoutreach.org/ ->Eye-Kyung Choi  에서 읽어 보실 수 있읍니다. 그 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아더 핑크가 말한 '회심'을 실제 경험한 분을 만나므로, 저는 자연스럽게 그CEY씨가 저에게 했던 말 처럼, "이렇게 믿는 자가 없는가?"란 말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현실 교회를 일단은 거짓교회로 간주하게 되었읍니다. CEY씨가 나가는 교회의KSS 목사님은 현실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학교수이기도 하신데요, 그 분, 역시CEY씨가 생각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KSS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도 '하나님의 징벌'이 내릴 것인지..

2.현실교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좁은 길의 어려운 구원관을 갖고 계시고 그런 복음을 전하기에 주변 현실교회들로 부터 '이단'이란 말도 듣고 계신 KYG 목사님의 교회에도 역시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인지.. (저는 이 교회에서 하는 집회에 몇 차례 참석했었읍니다.) 이 교회에 대한 정보는 http://shema.ne.kr/ 에서 읽고 들을 수 있읍니다.

3.마가복음 16장 후반부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에 나오는 "병든 자에게 안수한 즉 나으리라"는 것을 신자는 자연인의 영적인 병을 치유하여 구원받게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설명하셨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성도가 자연인의 영적인 병을 치유하는지 그 원리를 알고 싶습니다. 만약 거듭난 분을 만나서 치유될 수 있다면, 저는 저의 영적인 병의 치유를 위해서 이 세상 어디라도 가겠읍니다. (이번에 책을 보낸 분의 주소가 동두천시에 계신 분이던데.. 이분도 거듭난 분일 것 같고요. 그리고 대전에도 장로님의 선교회와 관계되는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4.그리고, 장로님의 번역물인 '무엇이 참 복음인가?','일요일이 안식일인가?','다니엘 9장의 70이레'. '교회시대의 끝 - 그리고 그 이후'도 제게 보내주실 수 있는지..위의 1,2번 질문은 제가 출석하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문의드리는 것입니다. 3번 질문의 경우는 제가 지금, xxxx란 불안장애를 겪는 상태에서 직업도 없고, 결혼도 안한 상태여서 어디든지 갈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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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질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1967년생으로 만 38세입니다.

먼 곳에 계시지만, 저를 위해주시는 장로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번거롭겠지만, 명쾌한 답변을 부탁합니다. 그럼, 안녕히계십시요.

SH, ( 1 편지답변)

 

주신 e-mail 정말 반갑네요.

저의 책을 읽어 주신 대에 대하여 더욱 감사를 드리고, SH씨가 기대하는 명쾌한 답변을 상상하면서 편지를 씁니다.

사실 저는 제 책의 독자 중에는 신앙생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어 새로운 천로역정이 시작될 것을 바라고 있지요.

그런데 명쾌한 답변을 기대하는 SH씨나, 내가 쓴 글이 명쾌한 답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다 잘못된 것임을 알게되네요.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이 과오를 범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Arthur Pink의 글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사실 Arthur Pink는 제게도 좋은 선생이며, 또 그분의 책을 저도 몇 권 읽고 또 가지고 있습니다. SH씨는 세분의 이름을 편지에 쓰셨는데 그분들, CEY, KSS 목사님, 그리고 KYG 목사님이 다 Arthur Pink와 같은 분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분들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고 내가 영적인 병을 고치고 구원을 받는 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이 아니며, 성경에서 그 뒷받침을 찾을 수 없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하여는 어떤 사람이든 간에 관여될 수 가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100% 하나님께서만 맡아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쯤은 저희들이 보내드린 2006 6월 뉴스레터를 받으 신 줄 압니다. 말세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공부할 계획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중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을 좀 설명했습니다마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오릅니다. 역사상 하나님의 성전을 상징하는 교회가 여러 가지 훌륭하게 꾸며진 돌들로 쌓여졌습니다. 구원받은 믿는자들이 성전에 돌들이라면, WSH라는 돌과 이대우라는 돌과 또 CEY, KSS, KYG 이라는 돌들로 쌓였고, Arthur Pink와 청교도들의 돌로 쌓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다고 하였겠습니까? 지금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라고 믿게 된다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합니다.

 

SH씨가 제게 주는 인상은, 귀한 성전의 건축자료가 된 WSH라는 돌이 아직도 Arthur Pink, CEY, KYG, KSS라는 돌 위에 놓여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생각은 내 구원은 완전히 하나님만의 사역이다라는 절대적인 성경의 진리를 곧 찾게 될 것이라는 예감입니다. 사실은 아무리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어려가지 설교와 기독교 서적들을 통하여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못됩니다. 마치 갓난아이가 영양이 많은 음식을 받아먹고 든든하게 자라겠지만, 유아 음식을 끝까지 좋아한다면, 그 아이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 내가 직접 하나님과 접촉하여 말씀을 받고 내 영혼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특히 한국인 기독교인들에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유명한 설교와 또 교회의 교리가 교인들을 유아로 머물러 있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전력을 다하여 성경말씀을 직접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잘못 번역되었는지 알아야 할 것이며, 또 모든 말씀이 내게 하신 말씀임을 내가 성경에서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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