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드립니다.
지난해 6월에 시작해서 12월까지 마태복음 24장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보다 먼저 마태복음 24장을 공부하도록 선택한 이유는, 다니엘서 12장 4절과 9절에서 "말세에 일어날 모든 현상을 성경말씀 안에 기록해 주셨지만, 그 뜻을 아무도 모르게 인봉 해 두셨다가 때가 되었음으로, 그 숨겨 놓으신 뜻을 알게 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지 그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 첫째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몇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34, 3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눅 11: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예수님 당시의 세대였고 또한, 근 2000년을 계속하여 그 세대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악하고 음란한"것은 지금이나 예수님 당시에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한 것이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음란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절정에 달한 것을 말씀하셨고, 또 여러 가지 현상들이 더 발전되어 나타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음란"하다고 하실 때는 인간들이 실제적으로 음란한 것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영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음란"이란 뜻은 성(sex)생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법을 세워놓으셨고, 그 법을 위반했을 때의 형벌을 성경에 명시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함께 즉시 사형에 집행하도록 법을 세우시고 집행하셨습니다(레 20:10). 또한 남자가 남자와 교합할 때 두 남자가 즉각적으로 동일한 사형집행을 받아야 했습니다(레 20:12). 만일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법을 지금 지켜야 한다면, 세상에서 사형집행을 받게 될 인간이 매일같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금의 음란한 상태를 50년 전과 비교해보면, 인간은 결국 세상종말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 Newsweek 보도에 의하면, 2005년 통계에서 미국의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경우가 37%라고 합니다. 미혼녀가 아이를 낳는 일은 모든 피임방법에 실패해서 일어나는 일이며, 이 숫자에서 남녀간의 불윤(不倫) 관계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50년 전에는 생각도 못하던 일입니다.
말세를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다고 하실 때는(눅 10:12),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사람들이 다 동성애를 하던 자들이었음을 지적합니다(창 19:5). 또한 로마서 1장에서 세상의 죄악을 명시하면서 동성애자들의 행동은 죄악을 대표하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롬 1:27). 이러한 기록이야말로 "동성애자들의 추악한 활동을 보거든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온 줄로 알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 전국의 고등학교마다 동성애를 하는 학생들의 Club이 있어, "내가 동성애자가 되느냐 아니냐"하는 결정을 학생들 각자가 해야되는 일에 고심을 하고있다는 기사를 읽은 바 있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을 상기한다면, 어느 고등학생이 촐업전에 성 경험을 했다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화제 거리였지요. 여자들의 의상이 점차로 몸의 더 많은 부분을 노출하도록(출 32:25) 변합니다.
기사와 이적: 그 다음 두 번째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고 믿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 기사와 이적 중에는 방언을 말하는 일과 기도를 통하여 병을 고친다는 활동입니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기사와 이적을 청하였을 때(마 12:38)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는 요나의 기적 밖에 없다"(마 12:39)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 24절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여 할 수 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신 것은, 지금 온 세상에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방언을 말하고, 신유(神癒)를 믿으며, 또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고 예수를 믿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마치 짚단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것같이 성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 예외 없이 사단에게 속고 있는 자들이며, 영원한 멸망을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모세에게 준 율법을 읽어 보드라도, 이렇게 신접(神接)한 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도록 명령 하셨습니다(레 20:27).
교회의 교리: 셋째 번 현상으로 교회의 교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교회가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교인들은 자신이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100% 하나님께서 하십니다(시 18:2, 27:1).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을 알아보는 길은 오로지 성경을 펴놓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 설교를 듣기만 하고 살아온 기독교인들은 젖만 먹는 그리스도인이며, 말씀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가 된 것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영혼이 필요한 영양을 말씀에서 얻을 능력이 없습니다(젖만 먹기 때문). 이것은 또한 말세의 현저한 증거입니다.
시기에 대한 관심: 마지막으로 말세의 징조는 그리스도인들이 시기에 대한 관심과 그 시기를 알아보려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나니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에 대해서 일부러 관심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바라보라(looking for:찾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벧후 3:12). 전도서 8장 5-6절을 읽으면 저희들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됩니다.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전 8:5-6)
이 구절에서 지혜자가 누구입니까? 이들은 "시기와 판단이 있는 자들"이며,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치 4계절을 분별하는 것처럼, 성경에 계절이 다가 올 때 자연적으로 그 때가 온 것을 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서 3장은 모든 일에 때(time)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 3:1-8)
금년, 2007년도의 성경공부 과제를 "시기와 판단"으로 정하겠습니다.
말세의 징조를 생각해 보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세상에 심판 주로 오실 그 약속시기에 대한 성경말씀을 공부해야 되겠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앞으로 몇 개월에 걸쳐 이 시기에 대하여 공부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공부하기 전에 마태복음 25장을 공부함으로써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큰 환난에 대한 그 결론을 얻으리라고 믿습니다.
열처녀의 비유: 마태복음 25장 1-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장 1-13)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은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의 계속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들과 구원받지 못할 자들에 대하여 25장에서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에 대한 비유는 우리가 설교자로부터 여러 번 그 해석을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이 비유에서 사용된 낱말들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두 사람이 각각 구원받을 자들과 저주를 받을 자를 대표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그 수가 구원을 받은 다섯(5) 처녀와 멸망을 당할 다섯(5) 처녀로 나누어 졌습니다. 처녀라는 단어에 대하여 성경에 50번 이상 기록하신 이유는 그 뜻을 우리가 찾아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구약에서 처녀는 시집을 갈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었으며, 특히 왕의 부인(왕후)이 되려면 첫째 조건이 처녀야만 되었습니다(에 2:2).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자신이시며, 그리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新婦)로 우리를 부르신(계 21:9) 이유는, 구원받은 자들이 절대적으로 처녀(영적)이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처녀 이스라엘(렘 31:21), "처녀, 유대의 딸(애 1:15), 시온의 딸(애 2:13) 등으로 표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모든 다른 민족보다 더 뛰어나게 사랑하시고 보호하셨음을 가르칩니다. 마찬가지로 처녀의 비유는 신약 교회시대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교회를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고, 보호하시고 극진히 사랑하셨음을 상징합니다.
처녀는 순결함의 상징입니다. "얼마나 순결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주 News 보도에 의하면 90% 이상의 미국의 처녀들은 시집가기 전에 성 경험을 한다고 했습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어떤 처녀가 시집가서 첫날밤에 처녀가 아님이 밝혀져 소박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자의 처녀성과 결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이 종말에 처해 있음을 증거 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또 그리스도인들이 그 순결함을 상실하고 있음을 명시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新婦): 모든 기독교신자는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이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순결한 처녀입니까? 이 교회가 타락한 상태를 예레미야애가에 "처녀 시온"이라고 부르면서 지적하셨습니다. 그 중 몇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애 2:13-14)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일면을 솔로몬이 쓴 아가(雅歌)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아 2:10-14)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천국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교회시대의 마지막 상태가 어떠할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나 순결해야 한가를 "기름"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기름이 없기 때문에 소박을 당한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엉뚱한 방향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러분께서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참으로 논리적입니다. 첫날밤에 순결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할 처녀를 이 비유에서는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등불이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 곧 신부가 될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그 등불을 한번도 켜 본 일이 없으면서도 등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믿고, 밝은 등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지적하는 것이겠습니다.
오묘한 성경말씀: 화제를 잠시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오묘한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말씀을 공부하면서 가끔 생각하는 것은 내가 몸이 아플 때 의사에게 진단을 받는 것과 비교해 봅니다. 사실상 의사들은 내 건강상태를 여러 가지 방향에서 관찰하고 진단을 내립니다. 건강한 이유를 식욕이 좋기 때문이라든가, 혈색이 좋기 때문이라든가, 또 어떤 때는 안색을 보고도 건강함을 판정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너무도 복잡하고 세밀하기 때문에, 어떤 단순한 방법만으로 내 건강을 진단할 의사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하시며 정확하신 하나님께서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지으신(시 139:14) 우리 신체를 의사들이 다 알 수 없는 것 같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이해할 수 없으며, 다만 우리가 말씀에 접할 때 하나님의 완벽하심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성경이 바로 오묘막심(奧妙莫甚)하며, 완전하며, 또 정확합니다. 어떤 의사가 내 몸의 건강을 진단하듯이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정확하고 완전한 진리를 찾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소설은 얘기의 끝이 있고, 과학서적은 어떤 결과와 결론을 찾을 지 모르지마는, 성경을 공부할 때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며, 내게만 주시는 은혜를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완벽하게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의 유일한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나에게 적합한 양을 항상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처녀의 얘기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온 열 처녀는 큰 환난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나와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든 믿는자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부터 세상의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가 다 금 촛대를 받았습니다. 금 촛대라고 한 것은 그 촛대를 아주 귀한 상으로 받은 것을 말하며, 그 촛대를 옮길지도 모른다는(계 3:5) 것은 촛대를 상으로 주어졌지만, 동시에 임무가 주어졌음을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열 처녀들이 등을 선물로 받았고, 동시에 그 등불을 써서 성취해야할 임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우리의 임무를 말씀하셨으며, 모든 믿는자들이 세상을 비취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백히 볼 수 있는 문제점은, 기름 없이 등을 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미련한 처녀들입니다. 그 기름이 없는 이유는 "파는 자들에게 가서"(마 25:9, 사55:1) 산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기름도 없는 등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는 질문이 곧 생길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 배우지 않았습니까? 마태복음 25장은 그들의 상태를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신 것 뿐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유대에 남아있어 산으로 도망하지 않은 자 들입니다. 그들은 들에서 일하던 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땅에서 멸망을 받게 두고 간 자들이 아닙니까? 또 그들은 맷돌을 갈던 자들이며, 지붕에 있다가 집으로 내려온 자들이며, 밭을 갈면서 뒤를 돌아본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이 쉽다고 할 수 있는 한가지는, 성경말씀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람 곧,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두 종류의 사람으로만 구분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만 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즉 인간의 행함을 구원의 조건으로 하는 성경의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기름 있는 등을 하나님께서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름"은 "구원"과 동의어입니다.
미련한 처녀들도 같은 등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는가?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등이 아닙니다. 그 등은 거짓의 아버지 그리고 광명의 천사로 역사 하는 사단이 만든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의 것과 겉 모양이 같아 보입니다마는, 기름이 없는 것을 몰랐고, 또 신랑이 올 때 쓸 수 있다고 믿고 가지고 다니는 등이 아닙니까?
이 비유에서 왜 다섯(5)이라는 숫자를 쓰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일 처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소년 다윗이 거인(巨人) 골리앗을 대항하여 섰을 때 매끈한 돌 다섯을 준비한 일입니다. 그 돌 다섯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 또 그 같은 돌 다섯은 불레셋의 멸망을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5) 덩이로 5,000명을 먹이시고도 부스러기가 12광주리가 되었습니다(마 14:17, 눅 9:13).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첫 오순절(五旬節)에 성령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 때에 처음 믿는 남자가 약 5,000명이라고 했습니다(행 4:4). 그러므로 성경에서 5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며, 그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1,000배나 되도록 풍성함을 가르칩니다. 다른 한편 5라는 숫자는 미련한 다섯 처녀의 경우와 같이 저주와 멸망을 또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처녀가 슬기롭게 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된 것이 아니며, 기름을 거저 주셨기 때문입니다(사 55:1). "그릇에 기름을 담아"라고 한 것은 토기장이가 자기의 권한으로 그릇을 만들고, 기름을 담아 귀히 쓰도록(롬 9:21) 미리 계획하신 것입니다.
기름 없이 "등"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시기를 성전에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 지며"라고 하셨으며,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 5:14-1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등을 가진 처녀들이 기름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말 할 것도 없이 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는, 마태복음 24장에서 거듭 말씀하신 바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을 계속하여 경고하신 것이 아닙니까? 세상의 기성교회가 기름 없는 등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모두 속고 멸망에 이르는 거짓복음을 따라가고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는 마태복음 24장 48절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와 같은 경우이며, "더디 오리라"라고 하는 이유를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3-7)
다 졸며 잘세: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쉴새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을 때 "그냥 있다"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졸며 잘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졸며 잘세"는 구원받은 자들과 받지 않은 자들이 다 파수꾼의 임무를 등한히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56장 10절은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기름 없이 등을 가지고 다니는 말세 교회를 지적하셨습니다.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 56:10-12)
"밤중에 소리가 나되 신랑이로다"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에서 나왔는가를 상기시킵니다. 밤중에 맏아들이 죽는 재앙을 받았고, 그제야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밤중은 24시간마다 한번 돌아오는 그 밤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매를 갈던 두 여인 중 하나를 데려가는 그 때를 말합니다.
"신랑이 더디 옴으로 다 졸며 잘세" 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더디 옴으로"는 바로 위에서 읽은 베드로후서 3장 3절에서 기롱하는 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 신랑이 속히 올 것을 기다립니다(계 22:20).
그렇지만 왜 "다 졸며 잘세"라고 하셨습니까? 미련한 처녀들만이 "졸며, 잘세"라고 하면 그것을 우리는 쉽게 이해합니다. 그들은 "깨어 있어라(Watch)" 라고 하신 명령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졸지 않고 자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지 않는다"는 뜻은 파수꾼이 자지 않고 파수를 한다는 뜻이며, 적이 오는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지난 여러 달 동안 저희들이 배운 바 적(敵,마 24:24)은, 택하신 백성까지도 유혹하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며, 우리가 그 적을 분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말씀을 공부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졸며 잘세"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등한히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근 2000년 동안 마지막 큰 환난 날에 대한 성경기록의 뜻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졸며 잠을 잔 것"이 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아주 분명한 성경말씀을 이사야 29장 10-12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사" 29:1-12
위의 구절에서 "너희에게"는 구원받은 자들을 지적하며, "봉한 책"은 성경 중에서 "마지막 때까지 인 봉하라" 고 하신(단 12:4,9) 마지막 큰 환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유식한 자"라 부르셨고, 구원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을 "무식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사실상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큰 환난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쓰신 책이기 때문에, 교회역사 1955년간 모든 교역자들과 교인들의 거이 전부가 성경말씀의 뜻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참 믿는자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쓴 사도들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렸고, 역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시한부(時限附) 종말론(終末論)을 말한다는 이유로 이단의 누명을 썼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도 "예수님께서 10년 안에 다시 오실 것이다"라는 예측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열 처녀의 비유를 다 말씀하신 다음 13절에서 "그런즉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어라"의 바른 번역은 "깨어 감시하라"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 2:3)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음미하면,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인 봉할 것임이니라"(단 12:9)고 하신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때가 되었기 때문에 깨어 있는, 즉 구원을 등한히 하지 않은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에게 "일어나 등을 준비할" 경고를 계속하여 듣게 됩니다.
밤중에 소리 나되(Cry): 밤중에 소리 나되(Cry)는 바로 요한계시록 18장 1-9절을 말씀합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 18:1-4)
"소리가 나되(cry)"는 보통 나는 소리가 아니며 "외치는 소리"이며, 중요한 사건의 선포를 말합니다. 이 소식은 하나님의 집을 바벨론이라고 불렀고, 그 집에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바벨론(지방교회)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밤은 새벽이 오는 직전이며, 이 밤은 교회가 먼저 심판을 받은 후에 세상이 심판 받을 그 시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시기에 처해 있고(벧전 4:17, 렘 25:29), 모든 일어나는 사건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를 지적한 것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스도를 신랑(新郞)으로 믿는다는 교회와 교인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의 요약:
지금까지 살펴본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열 처녀의 비유도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기름이 타는 등불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는 성경말씀을 내가 직접 공부함으로써만 알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기만 하면서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기름 없는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2.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름 있는 등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그 등은 우리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것이지만, 남에게 비춰야 할 임무를 또 주셨습니다. 그 등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시 119:105).
3.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신 것은 특히 미련한 다섯 처녀에게 하신 말이며,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그 "밤중"이 언제쯤인 것을 알고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4. 지금 우리가 그 밤중에 살고 있으며, 미련한 처녀들은 아직도 기름을 어떤 신령한 사람으로부터 살 수 있다고 믿고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는 날 까지 어두움에서 헤매고 있으면서도 성경의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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