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드립니다.
다니엘 2 장 공부, 제 2편
다니엘 2 장 19-23절: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이르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다니엘이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밤의 이상(vision:異像)으로 왕의 꿈의 내용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상으로 나타나시는 것은, 꿈의 경우와 같이,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한가지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꿈의 경우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이 이 이상을 사용하였습니다(사 28:7).
낮에 보는 이상: 꿈은 밤에 자면서 꾸게되지만, 이상은 깨어 있던 중에 받는 것입니다(욥 4:13, 33:15). 아브라함에게 이상으로 나타나신 기록이 창세기 15장에 있고,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기록이 사무엘상 3장에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에서는 선지자들이 이상을 통하여 여호와를 알게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질문의 여지가 없이 성경을 기록하시는 방법이 바로 이상을 보여주심으로 이루어 졌음이 분명하게 됩니다. 또한 이사야 29장 11절을 읽음으로써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묵시(vision)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사 29:11)
"봉한 책"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봉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봉하셨으며, 지식 있는 자(택하심을 입은 백성)가 이 묵시를 보는 때가 바로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는 때입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교회)에 선 것은 근일에 생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교회 초기에 이미 가증한 것이 교회에 나타났음을 가리키며, 또 기독교의 역사를 보드라도 로마교황을 가증한 것으로 판단한 신교인 들이 있었다던가, 자유주의 신학이 번영하였다는 등의 기록은 가증한 것들이 교회시대가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보거든"이라고 하심으로 지금 우리가 그 영적인 뜻을 볼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가증한 것을 이사야 29장 13절이 잘 설명한다고 믿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 29:13)
이러한 현상은 이스라엘의 얘기이기보다는 말세의 현상을 우리가 알도록 기록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만족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29장 11절에는 "모든 묵시(vision)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목사라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성경말씀은 봉함이 되어 이해할 수 없는 책입니다.
특히 유의할 구절은 다니엘 2장 19절이며, 여기에 다니엘이 "밤"에 본 이상은 그 뜻이 마지막 큰 환난시기를 지적합니다. 그 한가지 예로 이사야 29장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보장을 쳐서 곤고케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사 29:7)
이 구절에서 아리엘은 다윗 왕이 나라를 통치하던 수도 예루살렘입니다(사 29:1-2).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였고, 지금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기관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교회입니다. 이 수다한 교회는 각기 vision을 가지고 제 나름대로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누구입니까? 바로 누가복음 21장 20절에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신 것의 주석입니다. 그러므로 밤의 이상은 마지막 대 환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씀하시며, 또한 다니엘서를 쓰신 이유가 이 밤의 이상을 보여주시는 목적에 있습니다.
이사야 29장이 가르치는 바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군대를(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들)이 밤의 환상과 꿈을 보고 있지만, 그 꿈에서 깨어나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군대는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는(사 29:13) 모든 교회의 교역자들이 아닙니까? 그들은 예외 없이 진리를 가르친다고 믿고 허다한 청중이 만족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마는, 나중에 갈증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갈증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한(눅 16:19-31) 그 갈증입니다.
다른 한편 다니엘이 받은 이상은 바로, 요엘 2장과 사도행전 2장에 말씀하신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이상입니다.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한 것은 다니엘서를 쓴 이유가 되며, 또한 다니엘서의 서문이 됩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자랑하고 내 새울 아무런 지혜나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참 믿는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신 목적이 인류가 하나님의 본성을 알게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롬 1:18-19).
세상의 허다한 종교가 나름대로 하나님을 정의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정의한 책 성경이 있음에도 고사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주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도 몇 가지를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그중 몇 가지를 상기한다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주(시 71:22), 주 여호와(창 15:2), 영원하신 하나님(신 33:27), 만군의 여호와(삼상 1:3), 세상의 빛 (요11:9), 길이요 진리요(요 14:6), 생명이시며(요 14:6), 문이시며(요 10:9), 구원자 하나님(시 106:21), 구주 하나님(딤전 2:3) 등등입니다. 다니엘이 이러한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는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때와 기한"은 "시간(Times)과 계절(Seasons)"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태양계를 창조하셨을 때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하여 정확하게 이 시간과 계절을 제정 하셨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의 끝이 올 것을 선언하신 것이 그의 말씀, 성경입니다. 또한 계절은 우리가 여름, 추수하는 계절에 살고 있으며(출 23:16, 요 4:35-36), 곧 겨울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20, 막 13:18). 그러므로 다니엘이 관심을 가졌던 시간과 계절은 창조이래 세상에 반복되는 시간과 계절이 아니고 우리가 영생에 들어가는 시간과 계절을 말한 것입니다.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도 말할 것 없이 세상 왕국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그 지상 왕국의 역사를 통하여 영원한 왕국, 그리스도의 왕국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하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지혜자 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라고 다니엘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속성을 찬양하고 또 자기(다니엘)에게 왕의 꿈을 알게되는 지혜를 주셨다는 것 이상의 뜻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구원"과 동의어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에서 슬기로운(지혜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주신 것을 배웠습니다. 기름은 우리와 함께 사시는 성령을 상징하며, 또 우리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나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구원입니다. 내가 지혜로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위의 구절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은 오역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믿음"이 바른 번역이며, 내가 지혜자가 된 것은 내 믿음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는 모든 택하신 백성들에게 "때와 기한"을 알게 하심을 믿는자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는 어두운, 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어두운데 있는 자들의 "때와 기한"을 정해 두셨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때와 기한을 믿는자들은 성경을 통하여 알게되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는 각자가 행하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심판날을 위하여 기록해 두심을 말합니다.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는 택하신 백성을 지적하시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 구절의 주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세상에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하여 참 빛이신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말씀하신 후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라고 하신 진정한 뜻을 다니엘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하나가 된다는 뜻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취는 사람들은 그의 택하신 백성들이며 그들만이 빛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라고 다니엘이 하나님을 부른 것은 약속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심판 주로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됨을 하나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갈 3:7-9).
다니엘이 꿈을 해석하다
다니엘 2장 25-30: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아시게 하리이다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니이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은 예수님께서 전도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자기가 나신 곳,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펴서 읽으신 것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눅 4:16-19).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다니엘이 바벨론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본향이 예루살렘임을 느부갓네살 왕의 장관 아리옥이 명시한 것입니다.
사실상 다니엘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행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이, "왕이 물으시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라고 함으로써 이와 같은 불가능한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세상에는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자유의지를 믿는 신앙이 번창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가지 종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과 소망을 발견할 때는 이 모두가 참으로 불가사의 한 하나님께서만 홀로 행하시는 역사임을 알게됩니다.
장래 일: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대답한 말에 유의하게 됩니다.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는 참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왜 왕에게 장래일 을 알게 하십니까? 얼듯 생각하기에 얘기의 줄거리로 봐서 다니엘이 단순히 왕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간단한 사건으로 보기가 쉽습니다. "장래 일"이라고 다니엘이 대답한 것은 얘기의 청취자가 장래에 있을 사람들을 지적하며, 얼마 후에 있을 장래냐? 하는 질문을 다시 하게됩니다. 혹은 느부갓네살 왕의 장래를 말했다고 가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쓸 때는 항상 독자를 생각하게 되며, 독자가 없는 책은 그 출판비용을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저자가 완벽하신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심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Dr. V의 다니엘서에 대한 주석을 참고로 읽었습니다. "다니엘서가 성경 정전(正典)의 일부다" 라는 증명을 많은 시간과 역사적인 자료를 써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두루말이에 쓰신 다니엘서를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하여 쓰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 두루말이의 독자가 100명도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됩니다. 독자가 100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100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것을 추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다니엘서가 말하는 장래는 바로 큰 환난 시기에 살고있는 우리의 시대이며, 또 말할 것도 없이 다니엘서의 내용이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의 상징입니다.
은밀한 것: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한 내용을 또 음미하여야 할 것입니다.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있으되"라고 한 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왕 치하에 있는 모든 분야 지식층의 보좌관들을 지적했으며, 이들은 박사:wise, 술객:astrologers, 박수:magicians 와 점쟁이들soothsayers들입니다. 여기서 "은밀한 것:secret"은 하나님의 계획을 지적합니다마는, 다른 사람의 마음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신명기 29장 2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이 구절에서 "오묘한 일(secret thing)"은 다니엘 2장에서 느부갓네살과, 같이 은밀한 일이나 오묘한 일을 알려고 하고, 또 아는 척하는 것은 사단의 한 속성입니다. 믿는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사와 이적 행하신다는 가르침이 사단에게서 나왔음을 쉽게 알 수 가 있습니다. 신명기 29장 29절에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라고 하신 것은 다니엘로 하여금 장래의 일을 예언하게 하시고, 그것을 "나타난 일"로 성문화하신 후 (성경을 완성하신 후) 저희들에게 영원한 언약으로 삼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사실을 44절에서 다니엘은 말했고, 또 다니엘서를 쓰신 하나님의 목적을 44절에 나타내셨음을 앞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 2장 31-35절: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신상(神像):Image는 우상(偶像)이 더 나은 번역입니다. 거의 모든 성경 주석이 금, 은, 동 철, 진흙으로 된 우상이 역사상의 왕국 바벨론, 희랍 국, 로마제국 등을 말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을 지적하여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주석은 인간역사에서 금과 은이 제일먼저 발견되었고, 그를 뒤따라 동기(銅器)시대, 철기(鐵器)시대가 온 것을 지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석이 잘못된 해석이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는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이 우상이 하나로 된 만큼 세계역사를 하나로 보고, 모든 역대의 열국들이 이 우상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아야하는 첫째 이유는 다니엘서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큰 환난시기에 초점을 두고 쓰셨다는 점입니다. 그 증거가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라고 한 점입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지금 일어나는 사건이며, 이 현상을 "창세로부터 지금 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상을 친"은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사단의 통치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지적합니다.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는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일치되는 현상입니다. (돌, 반석: 마21:42,44 벧전 2:4,8 시 19:14, 118:22 참조)
사단의 왕국이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다 부서져) 그들의 악이 절정에 도달했다고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죄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상상도 못하던 남녀관계나, 동성애자들의 급증과, 마약의 보급 등은 세상에 급속도로 발전된 죄 현상의 극히 적은 부분입니다. 그 보다도 더 주목을 끄는 사건들은 교회들이 범하는 죄악들입니다. 교회는 지금 거룩한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한 오락기관이며, 횡령하는 자선기관이며, 철학과 사회학과 또 심리학 등을 말씀과 대처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명성을 올리는 웅변가들의 활동 무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버릇이 수 천년 계속되어 온 것이 아닙니까? 마지막 날은 급속히 도달하고 있습니다.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라고 하신 것에서 "겨"는 곡식의 일부입니다. 멸망을 당할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단에 속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겨"의 기능을 해 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알곡이 되지 못한 것은 "내 탓"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으로 된 것입니다(롬 9:11). 또 토기장이의 비유를 생각한다면, 그릇을 만드시는 토기 장이신 하나님께 나를 귀히 쓰시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롬 9:21).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에서 "바람"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올 때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던 바람이며(사 11:15), 이스라엘을 죄악 때문에 흩으신 바람이며(렘 13:24), 바벨론을 멸하신 바람이며(렘 51:1), 또 세상을 심판하시는 바람입니다(계 7:1). 특히 바람에 대하여 유의할 성경의 가르침은 에베소서 4장 14절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wind)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4)
여기에서 "모든 교훈의 풍조(wind)"는 "거짓 가르침에 조심하라"는 정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멸망을 당하는 그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여호와의 말이니라:Thus saith the Lord"라고 말하면서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선지자들입니다(슥 1:4).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하여 "여호와의 말이니라; Thus saith the Lord"라고 다짐하시는 말씀을 430번 구약성경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돌에 맞는 우상이 누구이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한 모든 교회와 거기에 속한 자 들입니다.
금 머리 바벨론 왕: 성경에서 금, 특히 정금을 말할 때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요 23:10, 계 21:21).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곧 그 금 머리니이다"라고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모든 믿는자들이 아직도 사단이 통치하는 세상에 살고있음을 지적하며, 또 이 사단에게 속한 금이 산산이 부서져야 정금이 되며 또 그리스도께서 쓰실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 세상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하나도 없다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상(image)의 모양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각 부분이 다른 금속으로 되어 있다고 함은 인간역사의 각 부분이 각기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든 특색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진행하시는 계획 속에 있으며,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우상을 부숴뜨리는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우상은 "크고 광채가 득심하여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상징입니다. 광채가 득심함은 특히 말세에 관명의 천사로 나타나는 사단을 상기시키며, 수만 명을 끌어 모이는 집회가 바로 이 우상의 실제가 아니겠습니까?
이 우상을 형성한 물질들이 다 성전을 건축하던 때에 사용하던 물질임을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니엘 2장 36-45절: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왕의 권력: 인간 역사에 왕들이 권력을 행사하면서 그 권력이 자기가 훌륭해서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다니엘이 우선 느부갓네살 왕에게 왕의 권력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선언했습니다(단 2:37). 다니엘의 선언은 왕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능력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특별히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전의 증축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느헤미야 1장 5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 1:5)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는 느부갓네살 왕이 천하를 통치하던 유일한 대왕이었음을 시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모든 피조물들을 인간이 다스리는 주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음을 가르칩니다.
놋 같은 나라: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라 한 것은 바벨론보다 못한 나라가 장래에 나타날 것을 예언한 것이지만, 반드시 국력, 혹은 병력이 바벨론만 못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며, 무엇인가 인간의 생활 수준이 떨어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며, 21세기의 국가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가마다 무섭고 예리한 군사무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사회의 도덕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놋 같은 나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는 선진국들이 발명한 무기들의 파괴력을 상기시키며, 원자탄과 수소탄을 생각하게 합니다. "철과 같은 넷째 나라가 로마제국이다"라고 많은 주석들이 해석합니다마는, 하나님께서 로마제국보다 더 큰 관심을 갖으신 나라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 직전에 존재하는 열국들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열국, 교회가 바로 하나님께서 초점을 두고 말씀하신 국가입니다. "네째 나라"라고 하신 것은 마지막으로 세상에 존재할 나라들을 지적한 것이며, 숫자 4를 성경에서 말할 때는 사방의 온 세계적임을 표시합니다. 이 해석이 확실한 해석임을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라고 한데서 증명을 하며, 이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 성경은 이 마지막 때의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으로(계 16:) 말씀하셨고,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눅 21:20) 이라던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막 13:14) 이라고 하신 것이 다 이 "철이 모든 것을 부숴뜨리는"사건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단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여러 번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눅 4:6). 그러나 통치권을 받은 사단의 속성을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현상은 나라가 나누일 것이라고 하는 동시에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다"라고 함으로 서로 융합하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발"은 의지의 시행을 말하며, 결국은 그들이 계획하고 진행하는 국사(國事)들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말합니다. 금으로 된 머리가 구상을 잘 하고 인접국가들과의 외교를 잘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실은 상오간의 파괴를 초래하는 결과뿐인 것을 알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 민족은 궁극에 가서 멸망을 당할 것을 4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단 2:44)
위의 구절은 다니엘서를 하나님께서 쓰신 이유가 되며, 또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앞으로 다니엘서를 계속 공부하면서 이 44절의 말씀이 성경을 설명하는 근본적인 지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계사를 하나로 보시고 사단이 통치할 권한을 주셨지만, 세계역사는 분열과 전쟁으로 인간의 파괴를 거듭거듭 초래했고, 국가들의 권력을 쟁탈하고 또 위협하는 것이 인간 역사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단의 궤휼을 처서 승리하시고 한 나라를 세우시는 그 때가 눈앞에 도달했음을 우리는 감지 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천국을 전도할 때에 거듭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고, 예수님께서도 천국이 가까이 와 있음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비유가 다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 천국이 마침내 오게된 것을 거듭 Radio를 통하여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구의 창조 연이 11,013BC 라던가, 1988년이 지구 탄생의 13,000년을 기념하는 해이며, 하나님께서 성경에 마지막 큰 환난 기간을 23년으로 정하셨다는 가르침을 다시 살펴볼 것입니다.
다니엘 2장 36-44절의 말씀을 요약하면, 세계를 통치하는 사단의 왕국들은 항상 그 흥망성쇠가 있고 그들 왕국의 국력과 문화와 문명이 절정에 이를 즈음에(네째 강한 왕국)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이 건립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이 마치 역사상에 존재하는 어떤 국가처럼 건립된다고 잘못 알고 가르치는 세대주의를 경계하기 바랍니다. 지상의 천년왕국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이라고 함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되는 지혜를 얻는 일이며, 믿는자라고 함은 그리스도께서 새로 세우실 신천지를 믿고 기다리는 자들을 말합니다.
왕이 다니엘을 높이다
다니엘 2장 46-49잘: 이에 느부갓네살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청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세계에 유일한 통치자 그리고 권력자인 느부갓네살 왕이 땅에 얼굴을 대고 (fell upon his face) 다니엘에게 절을 하고 경배(worshipped)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이 느부갓네살 왕의 행동은 바로 자기의 신을 경배 한 것이었고, 진정으로 다니엘을 숭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현명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기 치하에 있는 세상에 어떤 인간도 자기의 꿈을 알아내고 해석할 자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배우게 되였고, 자신이 그 하나님권능 아래 있음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는 천하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자기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잠깐 보게 된 것이며, 또 다니엘에게 많은 선물을 줌으로써 자기의 고백을 표시했습니다. 영적인 비유를 생각하지 않고는 이 일은 이해하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그 영적인 비유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사단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마지막 때의 현상이며, "산에서 뜨인 돌"(벧전 2: 4-5)이 금, 은, 동 철로 된 열국을 완전히 파괴하고 승리하는 때입니다(단 2:45). "산"은 구원의 원천이며(시 121:1-2), 그 원천에서 나온 천국을 건설하는 기초석(基礎石) 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WCC와 666: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시어 사단의 큰 군사를 쳐서 이기실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세대주의를 믿는 교역자들이 잘 못 알고 가르쳐왔습니다. 대다수의 신자들이 아직도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하는 666이 Computer이다, Bar-cord 이다 등으로 혼돈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WCC(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김시환 목사는 시국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한 다음 세계 단일 정부 건립을 시도하는 단체가 Kissinger Group이며, 세계는 유대인인 Kissinger가 계획하는 대로 조정되고 있다는 강연을 하고 다닙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Kissinger Group를 Rockefeller Council이라고 했으며 그들이 적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WCC나 Kisinger Group이 성경적이 아님을 동의 합니다마는, 성경이 정의하는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적그리스도는(렘 23:30, 고후 11:13-15, 살후 2:3,4)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라고 하면서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모든 교역자와 기독교인을 가리킵니다. 신앙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모든 교파가 적그리스도입니다(요일 4:1-3). 개혁교리를 가르친다고 해서 적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 못된 교리(개혁교리를 포함)를 백년이상 가르치면서 수정하지 못하는 교단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교리 중에는 "간음한 배우자와 이혼할 수 있다던가, 물로 세례를 받고 구원이 확정된다"등등입니다.
그러나 성경만을 가르치지 못하는 모든 교단과 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둘러 싼 군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군대를 치시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 때"입니다. 예루살렘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기 위하여 급히 교회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료들,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와 함께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했고, 또 느부갓네살 왕이 베푸는 상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니엘은 궁전에 있었더라"는 오역입니다. 바른 번역은 "다니엘은 왕실 문전에 앉았더라(Sat in the gate of the king)" 입니다. "문전에 앉았더라"는 그의 직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왕 다음에 가는 권력을 지적한 듯 합니다.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니엘이 앉아있는 곳을 누구나 통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전에 앉았던 얘기를 사무엘하 15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부왕(父王) 다윗을 반역한 왕자 압살롬이 이 예루살렘 문턱에 앉아서, 왕께 신원(伸寃)을 가지고 성에 들어오는 백성들을 자기가 대신 받아 처리함으로써 민심을 사고, 그 민심을 배경으로 아버지 다윗 왕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여하튼 "왕의 문전에 앉았다"하는 일은 국무총리의 직책을 시행한 것이 라고 생각됩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10/10/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