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는 Kentucky에 사시는 Wilson 자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다니엘 4장을 공부하기 전에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3-5)

자유의지의 뜻: 기독교인들 10명중에 8명 내지 9명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다고 통계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유의지"의 뜻이 예를 들어, 문밖에 서있는 사람이 방안에 들어가는 일을 자신의 의지로 하느냐 하나님의 의지로 하느냐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각기 그 육감과 생각에 따라 의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살펴 보고자하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지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내 마음에 영접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신앙 곧 자유의지를 말합니다. 이러한 교리를 부정하는 교리는 "인간은 예수님을 영접할 믿음의 의지가 없고,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라고(요 15:16, 갈 2:16) 믿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는 우리 신앙문제를 결정하는데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믿는 10중 8/9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소수의 사람들의 설득으로 자유의지의 신앙을 버리게 할 수 는 없습니다. 신앙의 변화는 하나님께서만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 신앙은 성경전체가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환난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약 2000년간의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유의지를 마음껏 묘사하던 것이 바로 학파나 학설이 난재(亂在)한 세기의 초기와 중세기이며, 로마교가 등장하므로 자유의지의 신앙은 번창하고 그 뿌리를 박게되었다고 봅니다.

자유의지는 글자 그대로 성경말씀도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직접 쓰셨다는 사실을 믿게될 때 자유의지의 신앙은 없어질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자유의지의 신앙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첫째 이유는 성경이 단편적으로 존재했고, 어떠한 특정인에게만 성경이 주어졌고, 하나님께서 기한을 정하시고 그 진리를 숨겨두셨기 때문(단 12:4)이었습니다.

종교개혁과 자유의지: 종교개혁이 일어남으로 기독교가 한동안 자유의지를 버리는 듯 했습니다. 마탠 루터. 존 칼빈이나 존 낙스 같은 신학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가르쳤고, 인간의 구원계획을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예정하시고 시행하신다는 것을 또 가르쳤고, 많은 교회가 새로운 방향을 찾은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믿는 알미니안 파에 의하여 거의 전 기독교역사와 교회는 다시 점령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 10-15)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마 13:16-20)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3:34-35)

Wilson 자매님의 편지를 일일이 살펴보고 성경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Page 1에 대한 성경공부

이 페이지에 제시된 자매님의 생각은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교리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여건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예비하셨고, 다만 우리는 그를 믿고 영접하는 일만이 남아있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를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가 지은 모든 죄는 사함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는 '믿지 않는 죄'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성경말씀이 이 교리를 받아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 "모든 사람"중에 한 사람인가?: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하신 내용이 누구를 지적하시는 가에 대하여 우선 확인을 해야합니다. 그 중에 특히 "모든 사람"이라고 할 때 내가 그 "모든 사람"중에 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서 누가복음 2장 3절에 "모든 사람이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 가대" 라고 한 "모든 사람"에는 자매님이 해당이 안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6절에서 말씀하신 "모든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와 후서 에는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를 열 번 이상 사용했습니다. 성경 구절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쓰여진 단어의 뜻을 성경 전체에서 찾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를 다 찾아보고 성경전체의 뜻과 일치된 답을 얻어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세계적이고 "모든 사람"이 받을 만 하다는 데 대하여는 논의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딤전 1:15 4:9)이라고 하였고, 복음전도의 수고하고 진력을 다하는 이유를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자들의 구주 시라"(딤전 4:10)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소망을 말씀했고, 그 소망이 특히 "믿는자들의 구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믿는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의 모든 이단들이 포함된 교파와 교인들이 다 포함될 것입니다. 각 교파마다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각기 자신들을 구원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정의: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내가 결정하는 결과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한정된 내 육감이나 내 생각으로 내 믿음을 결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정하시고, 나는 그것을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이렇게 깨닫게 되면 "모든 사람"이라고 하신 것이 경우에 따라 "구원받은 모든 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 2장 6절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모든 사람으로 이해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 말씀하신 "모든 사람"도 "구원받은 모든 사람"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쓴 편지가 구원받은 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겠습니까? 이 구원받은 자들을 "예정하셨다" 혹은 정하셨다고 기록한 성경구절을 30번 이상 읽을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믿는자들은 이 30구절의 뜻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자유의지의 교리는 이 예정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영접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라고 설명합니다마는 성경에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우리 구원의 예정을 잘 설명하는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로 약속하신(선택한) 말씀을 끝까지 의심하면서 살아가던 기록을 읽게됩니다.

성경이 1500년 동안에 50명의 저자가 기록한 책 입니다마는,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고, 모든 책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자신의 저서입니다. 모든 구절이 하나님께서 그 뜻을 예정하시고 진행하시는 기록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 "아무도"도 물론 인류전체를 지적할 수 없으며, "생명책에 이미 기록해 두신 자들 중 아무도"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동이어입니다. 자유의지를 믿는자들에게 은혜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행함의 믿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내세워 구원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2장 1절에 "모든"이라고 하신 것은 세상 종말에 가서, 세상이 비로써 그리스도를 알게된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자매님이 페이지 제일 처음에 기록하신 구절들, 시편 115편, 에베소서 1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로써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로 선택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에베소서 1장 11-12절을 끝까지 읽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예정하신 바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신약시대에 와서 생긴 것이 아니며, 그의 사랑과 자비는 변치 않는 본성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이미 가지고 계신 것을 알아야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말하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는 자유의지를 믿는자들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6장 천체를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기록된 "누구든지"는 "목마른 사람들 누구든지" 이며, 내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목마른 자들이 아니고, 내 마음대로 구원을 믿기 때문에 풍족(豊足)을 느끼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음성을 누가 듣는가?: 자유의지 신앙이 잘못되어 있음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마는, 오늘은 로마서 8, 9장을 읽어 가면서 자유의지 신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8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함으로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지적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 예수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고 하셨고, 또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라고 하신 것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인 성경말씀을 깨닫는다는 뜻이며,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28절에 구원받은 자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고, 그는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함으로써 "선택하신 자들"을 지적하며,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심으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일생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계획되고 진행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하시기 위하여 29절과 30절에는 "미리 정하신"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32절에는 이 "미리 정하신"자들을 "모든 사람"이라고 하셨고, 33절에는 "택하신 자들"이라고 하심으로 복음을 듣고 믿기로 자신이 결정하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35절은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하심으로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요일 4:19)는 것은 이 구절도 강조합니다. 자유의지의 신앙으로 내가 선택하여 사랑하는 그리스도는 언제라도 내가 버릴 수 있습니다마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양으로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환난이나 핏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롬 8: 35)이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실하시며, 또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자녀가 누구인가?: 로마서 9장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가르치며, 우리를 "약속의 자녀"(롬 9:8)라고 부르셨습니다. 11절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음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1)

이 구절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선행이 구원을 받는 일과는 상관이 없음을 가르칩니다. 이 사실은 만일 우리에게 선택의 의지가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20절에 내려와서 우리의 구원을 토기장이가 만드는 그릇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선택을 가르칩니다. 22절에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근 2000년의 긴 기간을 참아 오셨음을 말하며, 이 진노의 그릇과 구별하여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이라고 하심으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인간을 구별하셨습니다.

얼듯 보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차별하시는 하나님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할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부족하여 되는 것이 아니며, 일단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은 하나님자신도 지키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다 는 증거이며, 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불평을 한다면 완벽하게 세워 놓으신 구원계획을 읽고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한대서 온 것입니다.

제 2 페이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페이지에는 우리가 "믿는다"는 구절들을 선택하여 기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모든 기독교인이 교인이 되면서 제일처음으로 암송하는 구절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세상은, 로마서 9장에서 배운 것과 같이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이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진노의 그릇"이 "저를 믿는자마다"(whosoever believeth) 의 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진노의 그릇"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이며, 믿는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정의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문자 그대로 세상사람들의 죄를 지셨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사람들 중 한 사람도 지옥에 갈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속죄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지은 죄는 하나도 빠짐없이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 구절의 "세상"은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요한1서 2장 2절에서 말하는 "온 세상"은 다음 구절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세상"임을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 말하는 "믿는자 마다(every one)"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자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Christ:갈 2:16)입니다.

사도행전 16장 43절에 "믿는 사람들이 다 죄 사함을 받는다"에서도 "누구의 믿음"이냐 하는 질문을 해야합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 왕국의 사신으로 말씀을 전한 것뿐이며, 듣는 사람들이 받은 신앙은 "그리스도의 믿음"입니다. KJV를 제외하고는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의 믿음"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로 번역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사도행전 10장이나 17장에서도 믿는 다는 것과 그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발견하는 가의 문제입니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머지 않아 세상을 멸망하신다는 기록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은 극히 듣기 싫어하지만 성경말씀이기 때문에 들어야합니다.

다음구절은 어떤 책 204페이지에서 옮겨 쓴 것이며, 그 저자가 철저한 자유의지를 믿는 분입니다. 자매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경학자 Dr. Walvoord의 책을 읽고 소개하며, 또 Dr. Vaught의 글을 여러 번 보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두 박사가 다 자유의지를 가르치며 또 세대주의 자들입니다. 204페이지 인용의 내용인즉 칼빈의 교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도록 인도하지 못하며, 근거가 없이 상징적이며, 인간의 타락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가기가 힘들게 한다라고 합니다. 카리스마적 신앙을 믿는 사람들에게 긍정이 갈 것이며, 착한 일을 함으로써 천국에 이른 다는 세상종교의 기본적인 원리를 믿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생각입니다. 이러한 성경학자들은 신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을 하며, 그 근거 있는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온 세상에 퍼져있습니다. 반면에 칼빈의 교리를 믿는자들은 자신이 무능함을 깨닫기 때문에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마 11:25)라고 하신 말씀을 믿게됩니다. 그 때에 그는 어린아이가 되며, 이 어린아이를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자(Whomsoever the Son will reveal him"[마 11:25])라고 하심으로 선택(reveal)하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To comply with God's commands"에서 Comply는 성경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계명에 순종(obey)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Comply는 "동의하다"는 정도가 되기 때문에 글의 저자가 성경말씀을 동의 할 정도로 믿고 가르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칼빈의 교리를 믿는자들은 성경이 무오 함을 믿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칼빈의 교리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세운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성경말씀과 비교하면서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내 행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인가?: *표는 자매님의 신앙간증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교리이며, 성경말씀에는 생소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지만, 내 자유의지를 행사해서 구원을 내가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입니다. @표가 이 *구절의 설명인 듯 하며,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하고 조건이 붙지 않는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칼빈교리의 제 2조항을 반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리를 쉽게 말해서 "내가 복음"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내가 복음"이라는 성경에 없는 얘기를 내가 할 때 그 유명한 김진홍 목사님이 지은 이름입니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음을 자매님은 다시 강조하지만, 저로서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하는 이 "모든 사람"이 전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듣는다 할지라도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그 복음을 받아드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강제로 이 복음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상징)이 어떻게 부르심을 입었느냐 하는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 무엇인가?: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창 6:8)방주를 120년 동안에 지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자기 고향을 떠난 것(창 12:1-4, 롬 4:9) 이 아닙니까? 자매님은 믿기 때문에 은혜가 내린 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성경에는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임하기 때문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롬 4:5). 신약성경에서도 모든 제자들이 은혜를 먼저 받았기 때문에 제자가 되었고,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중에 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다는 신앙은 성경말씀을 믿는 신앙이 아니고 모든 세상의 종교가 믿고 있는 이방종교의 교리입니다.

자매님 편지의 제 3페이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3페이지에서 자매님이 토의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인간들 중에서 자기를 영접할 자들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예정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놀라운 것은 칼빈교리를 믿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똑 같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하지만 그 이해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모든 나라의 죄(Sins of all the nation)"에서 '모든 나라'가 실재적인 모든 나라가 될 수 없으며, 성경에서 "나라"를 말 할 때는 구원받은 개인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거룩한 나라요"라고 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열국의 어미(a mother of nations:창 17:16)라고 한 것도 장차 있을 구원받을 자들을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유의할 점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출생한 것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이며, 이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계획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단독적인 계획으로 이루어짐을 가르칩니다. 이 사건 중에 중요한 사건은 사라는 나이가 많아 이미 단산(斷産)이 되었었다( 창 15:2-3, 16:1)는 사실과, 이스마엘이 13세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을 기다리게 하였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의 얘기만 가지고도 인간의 구원계획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홀로 진행하심을 가르칩니다. "자비로우시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마련하셨다(graciously Provided for all)"등의 신학적인 진술은 사실상 더 이상 고려할 가치가 없는 글입니다(사29:13).

3페이지의 셋째 구절은 신학자 Barth의 글을 인용한 것이며, 논의할 하등의 가치가 없음을 믿습니다. "울리는 꽹과리"일 뿐 아니라(고전 13:2), 독을 마시는(막 16:18)일입니다. 자유 신학자들의 사고는 사람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단의 교리가 현저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학문으로써 배울 수 없다: 자매님이 다시 디도서 2장 11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을 설명한 어떤 신학자의 주석을 3페이지 마지막구절에 소개했습니다. 저는 10대 때에 신학교를 한 학기 다닌 적이 있습니다마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책임을 발견한 후 에는 성경을 학문으로 배울 수 없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신학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다 받아드릴 수는 없고, 또 경계합니다. 더욱 요한계시록 17장 8절에는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을 창세 이전에 기록하셨음을 읽으면서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논쟁'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임을 믿습니다. 사실상 자매님 편지의 나머지 구절들을 읽어보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저희들의 공부는 마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마지막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경고를 자매님에게도 드립니다. 이 경고는 특히 신학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 신학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에게 입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1:18-19)

독자 중에 자매님 편지의 나머지 부분, 4-10페이지를 받기 원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12-1-2007

*윤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예정에 대하여 공부한 내용을 뉴스레터에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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