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는 지난달에 이여서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를 공부하겠습니다.

달란트의 비유: 마태복음 25장 14-30절

주인이 종들에게 소유를 맡김, 14-18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착하고 충성된 종들, 19-23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악하고 게으른 종, 24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달란트의 비유는 마태복음 24장에서 배운 바 믿는자들의 속성을 결론적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우선 달란트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달란트의 뜻

달란트는 돈, 금화(金貨)의 단위이며, 또 금의 중량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말하는 달란트를 영문성경이 Talent로 번역을 했고, 그 talent의 뜻이 사전에는 "재주", 또는 "솜씨" 등으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성경학도들이 달란트를 "재주"나 "솜씨"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설교 제목으로 삼고, "선천적으로 재주(talent)를 받았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라는 설교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성경이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것 중에 출애굽기 25장 39절의 말씀이 달란트의 뜻을 일부분 설명합니다.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출 25:39-40)

성소 안의 모든 기구는 정금 한 달란트: 이 구절에서 한 달란트는 성소 안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만들만큼 큰 중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기구"라고 하신 것은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는데 쓰이는 기구가 되는 것을 상징하셨습니다. 성소를 짓는데 필요한 모든 기구를 만들만 한 금의 중량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성경말씀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여러 성경학자들이 발표한 문헌들에서 "일 달란트"는 약 75파운드 내지 125파운드라는 연구의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금의 시가를 570만 불($5.7million: Nelson Pub자료에서)로 계산했습니다. 이 숫자가 정확하다고 믿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마태복음 25장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주인으로부터 받은 자는 자기 평생에 그러한 재물을 벌 수 없고, 구경 할 수도 없는 거액이기 때문에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하여 땅에 묻어둔 것은 참으로 정직한 사람의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금 달란트는 국가간에 통상을 한다거나, 조공(朝貢)을 하는데 사용했습니다(왕상 10:,왕하 18:14).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2달란트의 은으로 산 기록 (왕상 16:24)은 금 한 달란트의 값이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쓸 수 있던 금화는 세곌(Shekel) 이며, 한 달란트는 3000세겔이며, 금화 한 세겔은 남자가 4일을 일해서 얻을 수 있던 임금이라고 합니다(BibleStudy.org의 자료). 여하간 한 달란트의 금은 평민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금은 성경에서 택하신 백성을 상징할 뿐 아니라, 천국을 건축하는 자료의 한가지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달란트와 숫자: 마태복음 18장에는 우리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는 값을 일만(10,000) 달란트로 비교하여, 100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탕감하지 못하는 인간성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 18:21-35). 이 비유에서 100 데나리온은 100일간의 품값이며, 일년 생활비의 약 3분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상징한 10,000 달란트는 100 데나리온의 400만 배가된다는 것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또 성경의 다른 놀라운 기록은 다윗 왕이 성전을 짓기 위하여 준비해 둔 금이 10,000의 10배인 100,000 달란트임을 읽음으로서(대상 22:14) 다윗 왕이 새우고 솔로몬이 건설한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하셨음을 마태복음 18장의 10,000 달란트와 대조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여하간에 종들이 주인에게 달란트를 받았다함은 거액의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들은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된 것입니다.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며 다른 종들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에 대하여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처음의 기록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 안의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를 사용하여 만들도록 명령하신 것이며,(출 25:39), 이스라엘이 그 명령에 순종하여 그 일을 시행하였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출 37:24).

그 다음 기록은 사무엘하 12장의 다윗 왕에 대한 얘기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큰 죄를 범했을 때, 선지자 나단의 방문을 받고 회개할 기회를 얻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 다음은 솔로몬을 낳았고 그 갓난아이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음을 같은 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에는 또 다른 얘기가 계속됩니다. 그 얘기는 다윗 왕이 암몬 자손의 왕성(王城) 랍바를 쳐서 이기고 랍바왕의 왕관을 다윗 왕이 자신의 머리에 쓴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마태복음 25장 달란트의 비유의 주석의 한 부분이 됩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이 역사적 얘기를 역대상 20장 1-3절에 다시 기록하셨습니다. 한 달란트는 왕위의 상징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왕위에 오르는 것입니다(벧전 2:9).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택하심을 입은 자들과, 택하심을 받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자들의 차이점은 그 왕권을 행사(行使)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왕의 자격을 땅에 묻어 버리느냐(25절) 하는데 있습니다.

장사하여 남겨라: 마태복음 25장 달란트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종들이 그 달란트로 장사하여 남겼다는 점입니다. "장사하여 남겼다"는 것은, 그들이 왕권(王權)을 행사(行使) 하였다는 점입니다. 왕국에서 왕권을 과시(誇示)한다는 것은 권력을 말하며, 또 그 왕에게 속해있는 신하들을 다스림을 말하기 때문에, 달란트의 비유를 왕권과 연결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에서 배운 바와 같이, 사단의 정체를 알게될 때 이 왕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온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사단을 우리가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인간 구원 계획을 말할 때, 사단은 구원받은 자들의 통치아래 있으며, 통치하는 권력은 만왕(萬王)의 왕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는 것입니다. 그 권력이 바로 그의 말씀, 성경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바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믿는자들에게 있어 권력이며, 그렇게될 때 사단이 그 사람을 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창조된 직후부터 사단은 광명의 천사 그리고 거짓의 아버지로 일하고 있으며, 세상이 사단에게 속해 있지만, 택하심을 입은 백성은 사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의 왕관을 쓴 이 왕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국(천상의)이 또 확장되며, 그 왕국이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의 주석은 15절의 말씀을 음미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15절: 각각 그 재능(dunamis:희랍어)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이 구절에서 "재능"의 희랍어 원어는 "dunamis"이며, 그 뜻은 "권력:power" 이라던가 "위대한 사역:mighty work"으로 영문 성경, KJV는 번역하였습니다. KJV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이 "dunamis" "ability"로 번역한 것은 오역입니다. 특히 한글 성경이 "dunamis""재능"이라고 번역한 것은 큰 오역입니다. 바른 번역은 "각각 그 권력대로"가 되어야합니다. 그럼으로 이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는 기독교 자체가 그 권능(dunamis)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이 권력을 받은 것이며, 세상의 어떠한 종교나 학문도 "예수의 이름"과는 대항하여 겨눌 수 없는 귀한 이름인 것을 가르칩니다.

여분의 달란트, 택하심을 받은 표시: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달란트 위에 또 다른 달란트를 받은 것입니다. 모든 권력 위에 가장 큰 권능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지옥의 권세를 이기는 권능입니다(눅 12:5). 이러한 권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우리의 육감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만 왕의 왕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한 생명이 구원받는 일은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그들 생활 자체가 이 달란트로 장사하는 것이며,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는 일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씀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단의 미혹을 받고 있는 것을 마태복음 24장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이 미혹을 받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주인에게서 금 한 달란트를 받은 자들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받지 못한 기독교인들의 속성을 2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4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자들은 우리가 영원히 지옥에서 받을 형벌을 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마치 예수님 당시에 기사와 이적 보이기를 원하며 예수님께 나왔던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세대에게 보여줄 기사와 이적은 "요나의 기사 밖에 없다"라고 하신 것을(눅 11:29)기억하시는 줄 압니다. 다른 한편 구원받은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열매의 씨는 씨 뿌리는 자가 옥토에 그 성령의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삼라만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창조하신 완벽한 법칙을 가지고 그 천지를 운영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 하시고 그 결실을 어떻게 가져오는지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말씀으로 무장하게 하시며(엡 6:11-17), 거짓의 아버지이며 광명의 천사인 사단과 대항할 때 이기게 하시며,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사역의 임무를 주심으로 우리는 받은 달란트를 "남기게"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성경에서 발견한 달란트의 뜻을 생각하면서 달란트 비유의 얘기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소유를 맡김

14-18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말할 것도 없이 이 구절에서 말하는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자신이십니다. "타국"은 천국이며 세상을 떠나시면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KJV는 이 비유가 천국에 대한 비유임을 "For the Kingdom of heaven을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유의할 단어는 "소유를 맡김" 입니다. 소유는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이 소유(goods)의 뜻을 "물질"이라는 뜻 외에 다른 뜻으로 설명한 곳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소유가 그리스도의 것일 뿐 아니라, 육신이 소유하는 모든 물질도 결국 그리스도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숫자 2와 5를 사용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내어보내신 전도사역을 말씀하신 것이며, 구원과 멸망을 동시에 상징하는 복음의 본질을 숫자 5로 표시하셨습니다.

비유를 이해하는데 있어 성경 학도들에게 가장 큰 문제점이 되는 단어는 "장사하여" 입니다. 과거 수많은 성경학자나, 유명한 설교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장사하는 것"을 "열심을 다하여 복음 전도와 봉사하는 것"이라고 믿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전도에 봉사하는 것은 구원을 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생활이며, 주인에게서 받은 금 한 달란트를 장사하여 또 다른 한 달란트를 남기기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한 달란트의 크기를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어느 누가 자기의 570만 불 가치의 행위와 실적을 그리스도 앞에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근본적인 신앙의 교리로 돌아가 이 달란트의 교훈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홀로 성취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아무런 일을 하여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지니라" (눅 17:10)

우리는 무익한 종: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는 구원의 크기에 대하여 실마리를 주신 것입니다. 어떤 구원받은 자들이 남을 구제하고, 또 모든 일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발견하도록 일하면서 살았다 할지라도 그는 "무익한 종"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자를 주인이 "무익한 종" 이라고 판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두 달란트를 받는 자가 두 달란트를 남기고,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은 자신들의 행위로 된 것이 결코 아니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여러분께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남기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장하십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왕관(Crown)에 대하여 성경을 살펴봄으로써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며(벧전 5:4),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고(약 1:12, 계 2:10), 또 금 면류관을 받을 것을(계 4:4)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가 왕관을 받을 만큼 그리스도에게 충성할 자들이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4장에서 모든 믿는자들을 상징하는 24 장로들이 금관을 받아썼고, 또 그 면류관을 그리스도 앞에 던지는 장면이 이 사실을 잘 설명합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4:10-11)

여러분께서 택하심을 입은 사람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머리에 금 면류관(달란트)을 씌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된 것처럼, 그 큰 달란트를 장사하여 남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믿는자들이 해야할 일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일입니다(21, 23,절).

다른 한편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dig)" 라고 한 동사가 다른 곳 마태복음 21장 33절, 과 마가복음 12장 1절에 씌어졌습니다. 두 경우가 다 "즙 짜는 구유를 파고(dig)"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즙 짜는 구유: winepress"는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합니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winepress)을 밟겠고" (계 19:15)

그러므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처했다고 볼 수 있으며, 주인에게 속해 있는 귀한 돈을 자기 뜻대로 감추어둔 것입니다. 소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성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 마음대로 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

19-23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오랜 후"는 달란트로 장사하는 시기, 복음 시대가 끝났을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이며, 모든 믿는자들이 기다리는 때입니다. 사실은, 장사하여 곱이 된 주인의 달란트를 자랑스럽게 보이기 위하여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주인에게서 받은 달란트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늘 생각할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알파와 오메가임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셨고, 또 끝까지 완성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가 새워놓으신 법, 성경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한 가지도 빠짐없이 순종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주인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떤 교인이 딴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팔아 우리를 사시고, 우리가 지옥에서 영원히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영원히 받을 형벌의 슬픔을 더 이상 보시지 않는 즐거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사랑하시는 신부(新婦)를 맞이하시는 날이며, 신천지의 유업을 그가 사랑하시는 모든 택하신 자들과 함께 받는 날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24-30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 구절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속성을 말합니다.

24절에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법을 세우시고 그 법대로 세상을 운영하시고 계심을 믿지 않는 자 들입니다. 그 법 중에는 자연법칙이 있고, 또 인류에게 주신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경의 법칙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두시고(시 138:2), 하나님 자신이 이 법을 지키심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임을 모르는 자 들입니다. 이들에게 큰 문제는 "내가 알았으므로" 라고 한 점입니다. 자기들이 믿는 것에 대하여는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100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에 대한 100가지의 다른 정의를 듣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게으른 종"들로 정의하셨습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것은 게으른 행동이며,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라고 하신 것은 한 달란트가 거액임을 상기시킵니다. 돈을 빌릴 때 법(성경)에 의하여 이자를 갚아야 되지만, 형제들이나 가난한자들에게 돈을 꿔 줄 때는 그 변리를 받지 말도록 명령하셨습니다(출 22:25).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제와 같이 또 가난한 자와 같이 생각하시고 이자(利子)없이 큰돈을 주신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구원받은 자들을(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들) 칭찬하시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내려질 형벌을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달란트를 여분으로 받은 자들이며, 이들이 받을 상은 신천지(新天地)의 상속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형벌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2/20/2007

문서의 처음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