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는 마태복음 25장의 공부를 마감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공부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다니엘서는 참으로 어려운 책이지만 다음달부터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배우기 위하여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인자가 영광으로 오실 때, 31-36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의인들에게 하시는 찬사, 37-40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왼편에 저주를 받은 자들, 41-43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악인은 영벌에, 의인 영생에, 44-46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오늘 공부할 성경 말씀의 내용은 이 세상 인류역사의 끝이 오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심판 주로 강림하시어 영생에 들어갈 자기의 백성과,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을 나머지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얘기입니다. 이 사건은 그 시기로 보아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마지막 큰 환난이 지나간 후 신부들이 신랑을 맞이하는 때이며(마 25:1-13), 또 달란트로 장사하여 곱절을 남긴 종들과 땅에 달란트를 묻은 자들이 주인을 맞이하는 때 입니다(마 25:14-30).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 영광스러운 마지막날을 택하신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중요한 과제를 다루고 있음을 곧 알게될 것입니다.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양으로 비유하셨고, 구원받지 못한 기도교인들을 염소로 비유하신 데 대하여 그 뜻을 살펴보고, 또 참 믿는자들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부르시는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양과 염소:

구약성경에 속죄 제를 드릴 때 소나, 염소나 양을 쓰도록 누차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제사 법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비유입니다. 구약의 모세의 5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그 제사 법에 대한 하나님의 법령이라고도 할 수 있고, 태반의 기록이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는 제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얼듯 생각하기에 그 기록들이 유대인들의 역사이며, 한때 그들이 지켜야 했던 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모세의 오경도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라고 믿을 때, 구약의 모든 말씀이 신약교회시대, 특히 큰 환난시기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알아야 될 사건들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 중에 속죄 제(sin offering)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소나, 염소나, 양을 속죄 제물로 드릴 수 있게 한 것은, 교회가 시작되면서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다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었음을 상기시킵니다. 말하자면 교회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속죄 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사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라고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2)

이 구절은 구약시대에 드린 모든 속죄 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여 지적하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하신 점을 알게됩니다. 이 구절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어린양)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라고 하신 이유를 알게됩니다. 그 다음 13절에도 "염소와 황소의 피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라고 함으로써 양의 피와 구별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양과 염소를 나누시는 비유는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명령에 따다 이삭을 제물로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 창세기 22장 8절에 "자신을 어린양으로 준비하셨다"고 하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요 10:11) 자기 양떼를 대신하여 양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으며, 그 일이 세상 종말에 가서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세에 일어날 일을 에스겔 34장 17절과 스가랴 10장 3절에 미리 예언 하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수양과 수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겔 34:17)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수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슥 10:3)

위의 두 구절이 분명하게 양이 자기의 백성이며 염소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적합니다마는, 우리의 구원을 비유로 설명하실 때 두 염소를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레위기 16장 구약 제사 법에, 대 제사장 아론이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수장절(收藏節) 행사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제사에 드리는 짐승을 두 염소로 되어 있으며, 그 중 한 염소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게 될 아사셀 염소(azazel: scapegoat)에 대한 제사법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를 갈르시는 비유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입니다마는, 아사셀 염소를 광야에 내어버리는 행사가 수장절의 행사라는 점에서 이 아사셀 염소의 뜻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역사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월절과 7 7절과 또 수장절을 지켜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유월절의 참뜻이 이루어진 것이며,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시어 신약교회가 시작한 것은 7 7절의 참 뜻이 이루어진 것임을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장절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기독교인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장절에 대하여 구약성경에 누차 말씀하셨고, 수장절이 7월에 있는 행사이지만, 연말에 있을 절기라고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출 23:16), 이 수장절이 세상 마지막 때를 상징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유월절 양을 도살하는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실제적으로 수장절에 한 염소는 제물로 바치고, 다른 염소는 정처 없는 광야에 버리움을 받는다는 것은, 천국에 갈 양을 오른쪽에 두고, 지옥에서 멸망을 받을 염소들을 왼쪽에 갈라놓는다는 말씀과 일치합니다. 이 해석이 진실함을 레위기 27장 1절과 히브리서 9장 22절에 "피 흘림 없이는 속죄함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염소에 대한 주석이 또 다니엘서 8장에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다음달부터 공부할 계획이지만, 우선 하나님께서 다니엘서를 쓰신 이유가 말세에 일어날 현상을 우리(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아니고, 교회시대 초기에 살던 사람들도 아니고, 바로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저희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게됩니다. 다니엘이 본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19)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 관한" 예기가 뿔을 가진 염소의 얘기로 되어있습니다. 즉 뿔을 가진 염소가 사단을 상징했으며, 그들은 "진리를 땅에 던지며"(12절)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12절) 등으로 사단의 사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창세기 32장에서 야곱과 에서의 얘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산후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형 에서를 피하여 다녔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면서 장가도 가고 또 부자가 되고, 드디어 에서가 있는 고향에 귀향을 하면서 형을 만나는 장면이 창세기 32장입니다. 그 중에 야곱이 형 에서에게 말한 10절의 말이 "지극히 작은 자" 의 뜻을 이해하게 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창 32:10)

여기에서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업사오니: I am not worthy of the least"라고 한 점입니다. 야곱의 이 고백이야말로 나는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라고 하나님께 고백한 것입니다. 이 고백이 자기의 생명을 찾는 형 에서에게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는 고백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택하심을 입고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가 될 자격이 없었고, 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노릇하면서 지극히 부요(富饒)하게 된 것은 우리가 값없이 받는 구원의 은혜를 설명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the least of) 감당하지 못한다"는 신앙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극히 작은 자 입니다. 영적으로 우리 믿음의 조상 야곱이 받은 축복을 우리가 다 받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49장 20절에 하신 말씀을 50장 45절에서 그대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49장은 에돔에 대한 예언이며, 50장은 바벨론에 대한 것입니다. 에돔과 바벨론은 사단의 왕국을 말할 때의 동의어입니다.

"그런즉 바벨론에 대한 나 여호와의 도모와 갈대아인의 땅에 대하여 경영한 나 여호와의 뜻을 들으라 양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가고 그 처소로 황무케 하리니" (렘 50:45)

이 구절에서 "양 떼의 어린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가고"의 원문의 영문 번역은"Surely they shall draw them, least of the flock out" 입니다. 바른 번역은 "양떼의 지극히 작은 자들을 반드시 끌어 나오고"입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을 성경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에돔과 바벨론이 누구를 지적하셨는지 성경말씀에서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섬긴다는 기성교회입니다(계 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지극히 작은 자"들을 에돔과 고모라에서 직접 끌어내십니다. 그 곳에 지금 심판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는 세상 종말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합니다. 그렇게 알 때 비로소 성경말씀이 완벽하신 하나님의 실제적인 사역임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정의 한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두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삿 6:15)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슥 13:7)

이와 같이 참 믿는자들이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임을 알게되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 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를 여러 가지 비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처음 경우는 거지 나사로입니다. 천국에서 나사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에서 고통받는 부자에게 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6:25)

세상에 사는 동안 누가 나사로보다 더 작은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소망이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물질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심령이 가난한 자 들입니다. 매일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의 자비를 구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자"들은 끊임없이 성경말씀만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더라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 3:8)라고 다짐함으로서 구원받은 택하신 백성을 "지극히 작은 자"로 정의했습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자"의 기록은 세리에 대한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3-14)

예수님 당시에 사회에서 세리보다 더 천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나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신 것은 세리가 자기를 사람들 앞에서 낮추었다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사회적으로 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택하심을 입은 모든 백성들은 구원을 받는 순간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얼마나 천한 가를 알게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세리의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세리의 기도를 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지극히 작은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지극히 작은 자"를 정의 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눅 9:48)

이상과 같이 "염소"의 뜻과 또 "지극히 작은 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상기하면서 비유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인자가 영광으로 오실 때, 31-36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다시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창조주 자신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상기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13,000년이 지났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알지도 못하고 영광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것은 창조주 그리스도의 영광을 모든 인간들이 마침내 알 것이며, 새로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확실하게 볼 것이며, 또 하나님께 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계). 사실상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기성 교회에서 시작되었고(벧 4:17), 다시 말하면 이미 심판을 내리시고, 마지막 형의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너무도 놀랍고 분에 넘치는 상입니다. 사실상 "무익한 종" 들이 이 상을 받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지극히 작은 자" 들입니다. 우리가 유의할 점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속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계획하시고 집행하신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기독교가 예외 없이 고집하는 교리가 있고, 그 교리를 지킬 때 구원 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교리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권위라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선택을 받은 양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께서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기독교 교파가 이 말씀을 기독교인들이 실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제사업에 열심을 내며 또 감옥선교를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영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며, 요한복음 17장에 말씀하신 것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8절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신 내용 중에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받는 순간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20절에는 예수님의 기도가 제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자들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21-22절이야말로 그 뜻을 다 이해할 수 없고, 또 우리가 받는 큰 은혜를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 21-22)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살아 계시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늘 믿고 있습니다마는, "우리(하나님과 예수님)안에 있게 하사"라고 하신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들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이며, 그 사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임을 요한복음 17장은 가르칩니다. 주릴 때와, 목마를 때는 복음을 듣기 위하여 갈급 하는 때이며, 벗었을 때는 구원받기 이전에 죄의 수치가 보이는 때입니다. 병들었을 때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이 죽을병이 걸렸으며, 또 옥에 갇혔을 때는 사단의 통치아래 있던 때입니다. 이 모든 상태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이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진실한 복음을 전할 때 듣고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복음을 믿는자들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공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는자들에게 의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하신 것은, 인간이 아무리 선을 행한다 할지라도 의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는자들을 의인이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하심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오른쪽에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중에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모든 봉사를 했습니다. 이 삶에서 우리가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내 신앙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되는 것임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그리스도의)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그리스도를"은 오역이며, "그리스도의" 가 정확한 번역입니다.

의인들에게 하시는 찬사, 37-40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의이들이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보아준 기억이 없습니다 마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아온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가 "지극히 작은 자"인지 아시기 때문에, 반듯이 또 다른 "지극히 작은 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왼편에 저주를 받은 자들, 41-43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무서운 고발(告發)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린 자와, 목마른 자와,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와, 병든 자와, 또 옥에 갇혔든 자 들에게 봉사하였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봉사가 예외 없이 자신들이 세운 기준이며, 그 봉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궁극적인 권위라는 근본적인 신앙이 없을 때, 그들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은 영벌에, 의인 영생에, 44-46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결론적으로 지금 살펴본 바 예수님께서 "모든 천사와 함께 영광으로 오실 때" 양은 오른쪽에 그리고 염소는 왼쪽에 두신 이유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요 6:39)를 오른쪽에 두셨고, 그 나머지 기독교인이 왼쪽에 있게 됩니다. 믿는자들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오른쪽에 있는 것이 아니고, 택하심을 입은 후에 말씀의 위대함과 또 존엄성을 알기 때문에 평생을 그 말씀에 기준을 두고 살게 됩니다. 사실상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다 할 것 없이 말씀에 기준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는 사단의 속임수에는 기독교인들이 다 속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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