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지난달에 다니엘서를 공부하기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린 후에 다니엘서를 다시 읽어보고, 이 책을 공부하고 해석을 쓰는 일은 참으로 큰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다시 용기를 얻게됩니다.

그 첫째 이유는 다니엘서도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얼마나 어렵다거나 쉽다는 점이 공부를 하고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성경학자들이 쓴 주석에 오류가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을 수없이 많이 기록하셨으나 그 때가 될 때까지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도록 인봉 해 두셨다(단 12:9)고 하셨으며, 큰 환난이 시작되면서 마침내 인봉을 떼셨다는 점입니다. 특히 역대의 성경학자들이 다니엘서를 다른 책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기록을 남겨두었지만, 예외 없이 그들의 주석에는 오류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진실한 학자라 할지라도, 큰 환난 시기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뜻을 깨닫지 못하게 인봉 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많은 성경학자들이 구원에 대하여 "신령한 일을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고 하신 근본적인 원리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역자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가 되기 위하여 안수를 받고 선서하는 것이 교단이 세운 교리에 충실하겠다는 선언이며, 그후 교리에 오류를 발견할지라도, 자신이 그 교단에 남아 있는 한, 교단과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그 오류를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게됩니다. 이러므로 결국은 교단이 세운 교리에서 목회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평생을 두고 성경을 연구한다 해도 그 결과에서 쓸만한 내용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카톨릭교나, 몰몬교나, 제 칠일 안식교나, 또 어떤 자유의지를 구원의 원칙으로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학자들이 쓴 성경 주석을 읽어볼 가치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해석의 오류가 개혁교리를 믿는 교단의 학자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세운 교리를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할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려할만한 대상은 극소수의 교파와 교회이며, 그들은 "성경을 다 바르게 믿으며, 아주 적은 부분밖에 잘못된 점이 없다"라고 생각되는 교역자들입니다. 야고보서 2정 10절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교단이 세운 교리 중에 한가지 교리만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많이 잘못된 교리를 많이 믿는 교단과 그 차이가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모든 성경 구절이 전부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단은 자신들이 부단히 교리를 성경말씀에 비취어 살펴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역사상 잘못된 교리를 계속하여 수정하는 교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못할 때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계 2:5).

그러므로 우리가 말세의 큰 환난시기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현 시대가 아직도 말세의 대환난시기에 이르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서에 쓰신 말세에 대한 내용을 깨닫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에 살고 있다는 현저한 증거는,

1. 말세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신 점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 37-39)

우리 육신의 생활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를 성경학자들이 해석하기를 "세상일이 제대로 돌아간다:Business is going on as usual"라고 말하며, "잘먹고 잘살게된다"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물론 세상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도취되고 있습니다. 인구가 급증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잘살고 잘먹는 시대이며, 새로운 음식의 자료를 연구해 내고, 풍습에 따라 여러 가지 진미의 음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수 없이 많은 음료와 술도 즐겁게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잘먹고 잘살겠다는 노력 때문에 하나님말씀에 귀를 기울일 기회가 없어집니다.

성경에 "먹고 마신다"는 것은 친구를 가진다는 것으로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자"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는가 하는 것을 말하며, 말세의 증거로서 기성교회는 세상과 서로 친구가 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와 친구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 영혼이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떡(하나님의 말씀)과 영원히 살게 하시는 복음의 생수를 마시고 살지만,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육신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상태를 이사야 22장 12-1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사 22:2-13)

이 무섭고 통곡할 날, 심판하실 날을 세상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기록에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간 동안, 모든 이스라엘이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를 새겨 만들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그 송아지에게 "화목(和睦)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고 한 것은, 지금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세상의 기성교회의 상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이야말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받아먹고, 또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며 살던 백성들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애굽 왕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닙니까? 이와 같이 지금 모든 기성교회가 하나님의 완전한 법인 성경을 손에 들고도, 각기 자기들 생각대로 교리를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며, "우리가 세운 교리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들은 이 무서운 죄악을 깨닫지 못 할 것입니다.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라고 하신 것도 영적인 뜻과, 또 실제적인 사회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명국들이 일부일처(一夫一妻)의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혼과 재혼을 허락하기 때문에 실제로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세상에는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뜻은 믿는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상기하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법인 성경말씀을 위배할 때 음행하는 것을(호 1:2, 9:1) 또한 상기시킵니다. 특히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야할 교회가 성경의 법을 위반함으로써 음행하고 있는 상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노아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定罪)하고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였느니라" (히 11:7)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는 마지막 큰 환난시기에 살고 있는 믿는자들이 받는 경고와 동일합니다. 이 경고에 대하여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많은 성경 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짓던 기간과, 또 방주를 완성한 후의 정확한 날을 노아에게 경고하여 방주에 들어가도록 하시고, 또 약속하신 날짜에 홍수가 시작된 것을 어떻게 "노아의 때와 같이"라고 하신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성경 말씀 속에 기록하셨습니다.

그 정보를 살펴보기 위하여 베드로후서 3장 3-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3-7)

6절에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라고 하신 것은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 "노아의 때와 같이"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 구절은 말세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이며, 그들의 생각이 노아 때에 살던 사람들과 똑 같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게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이 아닙니까? "억만년 전에 우주와 지구가 창조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구는 최소한 몇 만년은 더 존재할 것이다"라고 가르치며, 또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노아 때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또 그 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없었을 때가 아닌가? 라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노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말세에 사는 인간들에게 자기의 말씀을 성문화하시고, 이것을 확고부동한 법으로 제정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법에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120년에 걸쳐 방주를 짓는 동안(창 6:3)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노아" 라고 지적하신 것은(벧후 2:5), 그 때에 세상을 멸하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노아의 식구들이 전도 한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은 계속하여 "노아의 때와 같이"라고 하신 말세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놀라운 사실은 8-10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8-10)

말세에 대한 정보를 노아 때에 일어난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알게될 것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8절에 1,000년을 말하시면서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루와 천년에 대하여 노아 때를 공부할 때 "내가(하나님) 하루를 천년으로, 그리고 천년을 하루로 계산하고 있음을 알라"라고 강조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명령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명령을 기억하고 창세기 6장, 노아 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3)

이 구절은 하나님의 무서운 선언입니다. 어떤 물건이 주인을 잃었다면 폐물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을 120년 후에 영원히 포기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은 인간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동시에, 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육체는, 하늘로 들리움을 받고 주님을 맞는 마지막 때에 새로 지음을 받아야 하는 육체임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육체, 즉 인간이 세상에 사는 기간이 120년이라 하셨고, 노아는 이 120년 동안에 방주를 지었습니다.

숫자 120에 1,000을 곱하면 지구가 창조된 후 남아 있을 해가 됨을 노아에게 말씀하셨으며, 이 햇수는 12,000년이 됩니다. 그러나 숫자 12는 성경에서 항상 충분한 것을 지적하며, 이 숫자를 예수님의 12사도, 이스라엘의 12지파 등으로 사용하셨지만, 실제로는 사도의 수는 13사도였고, 이스라엘은 실제로 13지파로 되어있었습니다. 실제적으로 현재 지구가 존재한 햇수는 13,000년이 됨을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저희들이 존경하는 Family Radio의 사장 캠핑씨가 수십 년에 걸쳐 성경에 기록된 달력을 발견한 것을 여러분과 같이 일일이 확인하고 증명해 볼 계획입니다. 이 일은 다니엘서의 공부를 끝내면서 곧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요약해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여 120년에 걸쳐 방주를 짓게 하신 것은, 세상이 존재할 그 기간을 가르치신 것이며, 11,013 BC에 세상이 창조되었고, 4,990 BC에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고, 그 날부터 7,000년을 계산하면 AD 2,011년이 됩니다.

방주가 다 완성된 후에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 6:4)고 노아에게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이 칠일 동안에 방주 안에서 살 준비를 했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십니다. 노아에게 말씀하신 7일에 대하여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셨고, 인간들은 이 7일을 기억하도록 일주간을 7일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의 여덟 식구가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고 7,000년이 된 해를 "지금부터 7일이면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계시하신 것이 아닙니까?

2. 말세는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 17: 28-30)

말세에 일어날 현상이 롯의 때, 즉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도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라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비교하면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라고 하신 것을 더하셨으며, 그 동안 인간의 문화문명이 노아의 때 보다 더 발달되었으리라 짐작을 하게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망한 것이 2067 BC이며, 홍수로부터 2923년이 지난 후 입니다. 여덟 식구로 시작한 인구도 노아의 때 보다 더 많았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이 구절도 인간이 육신적으로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말세에 가서 어떻게 사고, 심고, 또 집을 지을 계획인가?" 라고 택하심을 입은 자기 백성들에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경고하시는 방법은 "주의 날은 도적 같이 오리니"라고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도적과 같이 오시지 않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살전 5:2-4)

성경학자들의 주석을 읽으면 "말세에 가면 세상은 더 잘살게되고 또 그렇게 잘살기 위한 노력 때문에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하여는 생각할 여지가 없게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해석이 바른 해석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주석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2)고 하신 말씀이 여기에 포함 되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고"에 대하여 쓰신 성경말씀을 살펴보는 것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사고 팔고"는 장사하는 것이며, 우리는 달란트를 받아 장사하는 사람들인 것을 마태복음 25장에서 배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5-46절은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잘 살기 위하여, 또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사고 팔고 또 장래를 계획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의 장사 법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귀한 진주(구원)를 사는 것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누구입니까? 천국의 모든 영화를 다 버리시고 우리가 영원히 지옥에서 받을 고통을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백성은 이런 장사에 깊이 가담하는 때가 마지막 때이며, 장사의 계획과 사역의 진행을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시고 계십니다. 이 장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이마에 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로 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수가 144,000 입니다.

반면에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에 말세에 세상이 장사하는 현상을 기록하셨습니다.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여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는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관심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표가 있어야만 살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떠한 상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이 사고 팔고"라고 하신 것은 인간사의 경제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복음을 더 믿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롯의 사위들이 롯의 전도를 듣고도(창 19:14)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이마와 손에 사단의 인 침을 받아야 사고 판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인친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어떤 복음의 내용이 절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충실한가를 다짐하는 일입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분간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짓고" 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가 집을 짓는 자라고 하셨고, 그 집을 반석 위에(그리스도의 말씀)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7:24-27).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확고하게 그리스도의 신앙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천상에 있는 성전을 짓는 자료들이며, 그 자료들 중에는 금과 은과, 귀한 보석과, 나무와 풀들이 있으며, 마지막 심판날에 금과 은과 귀한 보석들은 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을 가르치십니다(고전 3:12). 모든 교파와 교회가 타고 없어질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마는, 말세에 심판하시는 불에 견딜 수 있는 신앙, 곧 금과 은과 귀한 보석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천상교회를 짓는 자료들입니다. 귀한 천상교회의 건축 자료들이 타서 멸망을 받을 교회에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세에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성경전체)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은 "심고:(plant)"에 대한 성경의 뜻입니다. 심는데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하나님께서"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planted)"(창 2:6),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고,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 2:9)도 그 동산에 심으셨습니다.. 그 다음의 기록은 창세기 9장에 있으며,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다음에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창 9:20)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에서 보면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이 심는다는 뜻이 "인간들이 계속하여 농업에 종사 할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은 생명을 땅의 소산으로 유지합니다. 농사의 결과를 시장에서 팔고 있는 많은 농산물은, 인간들이 농업을 발전시켜 우리들의 식탁을 부유하게 함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을 살게 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육신을 위한 농사가 아니고,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신 "곡식과 가라지"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더 뿌리고"라고 하신 실제적인 현상이 말세에 가서 더 현저하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말세가 되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그리스도의 심판 날) 가라지는 단으로 묶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말세는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다"라는 것은 동성애를 하는 자들의 상태입니다. 그 추잡한 상태를 말하거나, 통계적으로 동성애자들의 활동을 수록한다면 책이 될 것입니다. 요점은 이 죄악의 수치를 수치로 모르는 때가 바로 세상종말의 현상임을 지적하셨습니다.

다음달에 계속하여 말세의 현저한 징조를 몇 가지 더 살펴보고 이어서 다니엘서의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4/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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