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우리가 지금 큰 환난 시기에 살고 있는가?

이번 달에는 계획한대로, 세상의 큰 환난 시기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환난시기에 처한 것을 알게되는 한가지의 증거는 성경을 쓰신 참 뜻을 분명히 알게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천상)을 대표하는 택한 백성들과, 그들이 생명의 떡을 받아먹는 줄 알고 있던 현대 기성교회의 종말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성경을 쓰셨음을 비로써 알게됩니다. 성경역사에 이스라엘과 유다를 견책하시고, 저주하시고 또 축복하신 기록은, 지금 있는 기성교회가 행하게될 것을 모형으로 일어나게 하셨고, 그 역사 속에 믿는자들과 기성교회의 실상을 정확하게 계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과거의 성경학자들에게는 알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과관계(因果關係)

인간은 현세의 생활에 있어 자신들의 인과관계를 믿고 육신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열심히 일하면 잘살게 된다던가,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법칙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일에 인과관계도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교인들도 자기의 신앙이 인과관계에서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착하고 잘해야 천당에 간다는 믿음이 대다수의 기독교인의 신앙이며, 또 모든 종교인의 신앙입니다. 교파들의 교리를 보드라도 "내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교리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개혁교리를 믿는 교단이라 할지라도 "물로 세례를 받으므로 내 구원이 보장된다"고 가르치고 믿는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인과관계를 믿는 것입니다.

말세가 된 또 다른 증거는, 우리가 받은 구원은 내가 행하는 것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홀로 진행하심을 알게 하십니다. 성경에 이스라엘의 망한 역사는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였고, 다윗 왕과 같이 선한 왕이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왕국이 번창하던 것이 인과관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도 100% 하나님의 계획으로 되었음을 알게되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에는 인과관계가 없음을 또한 성경의 역사를 통하여도 알게 됩니다.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구약은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현 기독교인들에게 교훈 하신다고 믿고 가르쳐왔지만, 성경의 모든 장이 우리의 구원에 관한 것을 가르치며, 특히 큰 환난 시기에 있을 현상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유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즉각적으로 기성교회, 내 신앙,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마지막 큰 환난과 밀접한 관계가 된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알게됩니다. 믿는자들에게 있어 이것이 또한 이 말세가 된 현저한 증거의 한가지입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지금 기성교회에서 나오라"고 한 그대로의 구절이 없습니다.

믿는자들에게는 마지막 때의 시기를 알게 하신다

말세가 된 현저한 또 다른 증거는 "믿는자들이 그 시기를 알게된다"는 점입니다. 노아에게 120년에 걸쳐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시고, 7일 동안 방주 안에서 살 준비를 하게 하신 것은 같은 명령임을 이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계시(啓示)되어 있음을 믿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에게 세상 종말이 올 날짜를 주신 것이 노아의 식구 8명에게만 한 것이라면 무슨 큰 뜻이 있었겠습니까? 또 그것을 기록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성경에서 교회시대가 언제 시작했으며, 언제 끝이 났다는 말씀을 직접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 절기를 예루살렘에 올라 와서 지키도록 하신 것은, 교회시대가 언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을 계시하시고, 날짜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우리에게 주셨음이 분명합니다.

AD 33년에 유대인들이 양을 죽여 유월절을 지키는 바로, 그 날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후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또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유월절에서부터 50일 만인 오순절에 성령을 세상에 보내어 교회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가 시작 한 정확한 날짜는 33년 5월 22일이 됨을 알게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유월절과 오순절에 대한 모든 역사적인 기록은 실제적으로 유월절의 양이 되신 예수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며,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단지 예수님의 초림(初臨)을 기다리던 구약시대를 대표하며, 오순절은 성령께서 교회를 통하여 인간구원의 역사를 하시는 교회시대를 대표합니다. 마지막 절기인 수장절, 혹은 장막절은 교회시대가 끝난 후에 일어날 큰 환난 시기의 일들을 상징하여 기록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수장절, 또는 장막절

말세가 된 큰 증거 중에 하나는 수장절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찾는 성경학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교회에서 배운 신앙을 고집하는 기성교회의 교인들은 이 수장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여지가 없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시기를 칠(7)일 동안을 기념하였고, 오순절은 유월절부터 50일이 되는 하루를 교회시대로서 기념하였지만, 수장절은 그 기념하는 축일이 8일간이 됩니다. 분명히, 대부분의 예언서는 이 수장절 시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초막절을 기념하여 지키던 한 기록이 느헤미야서에 있습니다. 7월 15일이 이 절기의 첫날이며, 초막절을 말할 때는 이 시기를 굳이 연말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출 23:15, 34:22). [출애굽기 34:22의 한글 개역성경의 오역을 교정합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에서 "가을에는", "연종(年終)에는"이어야 합니다. 성경원문에는 "봄"이나 "가을"이라는 계절이 없습니다. 계절을 말 할 때에는 반드시 "여름" 혹은 "겨울"로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연종이라고 하실 때는 수장절을 지적하며, 수장절은 세상종말의 직전인 큰 환난시기를 지적하십니다. 느헤미야서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사실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들을 몇 가지 상기해 보겠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70년간을 바벨론 치하에 있었고, 539 BC에 바사왕 다리오에 의하여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70년간을 바벨론에서 살았고, 그 중에는 왕족과 느헤미야와 같은 귀족들이 많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 때에 "왕의 술 관원"(느 1:11)이 되어 왕의 신임을 받고 유대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이 되었습니다(느 5:14). 황폐된 예루살렘을 다시 중건(重建)하기 원하는 느헤미야의 뜻을 왕이 받아들여서, 성전 중건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축하는 상징이며(계 22:12-14), 지상에서 건축사역이 이루어 질 때 따르는 여러 가지 일들을 느헤미야서에서 배우게 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예수님께서 지적하셨기 때문에, 황폐된 예루살렘을 중건한다는 것은, 죄에 물들어 쓸모 없게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듭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상징한 사건으로 믿게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과 문(門)들을 탐색하고, 유대인들과, 제사장들과 귀인들에게 성을 중건할 뜻을 말할 때 그들이 다 동의하고 순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사역을 업신여기고 반기를 들고 나오던 무리에 대하여 2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항하는 무리들에게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 2:20)

느헤미야 3장에는 중건 사역을 구분하여 서로 나누어서 담당한 자세한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각각 다른 사역을 주셨지만, 그 모두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큰 사역입니다. 그 중에 몇 가지 뚜렷한 일은 성벽(wall)을 짓는 일이며, 성벽을 둠으로써 두 왕국을 격리하셨습니다. 다음은 문들입니다. 여러 가지 문이 있으며, 출입하는 통로입니다. "내가 문이니(요 10:9)"라고 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느헤미야 4장에는 예루살렘 주변의 거민 들이 중건사역을 비웃고 방해하던 기록이며, 이것 또한 우리 신앙생활의 상징입니다. 또 이 장에는 유대인들이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하고 중건사역을 했습니다. 6장 15절에는 예루살렘 중건사역이 52일만에 완료된 것을 기록하셨습니다.

성읍 예루살렘은 52일 동안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은, 느헤미야의 지도력을 나타내는 동시에 중건에 참가한 유대인들의 지대한 노력을 또한 과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52일만에 끝나매"라고(느 6: 15) 하신 말씀 중에는, 그 중건 사역이 끝나는 해를 지적한 것이며, 그 해가 교회시대가 끝난 해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7장에는 사역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사역에 참가하는 각 개인과 또 그 개인의 직책을 일일이 계획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곽이 완성되고, 모든 문이 닫혔습니다.

느헤미야 7장 3절에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도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원문에 정확한 번역이 "해가 뜨겁게 되기 전에는" 입니다. 해가 뜨겁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며, 교회에 심판이 내려진 후에 다시 예루살렘성에 들어온 사람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중건한 예루살렘은 천국을 상징하며, 7장 마지막 절에 그 성에서 살 사람들을 지적하셨습니다.

수문(水門) 앞 광장

지금까지 "말세에 일어날 현저한 징조"를 지적하기 위하여 느헤미야서를 제 7장까지 대충 살펴보았습니다. 제 8장에 그 현저한 증거가 있습니다. 8장 1절에 "일제히 수문(水門)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수문 앞 광장"이 어디겠습니까? "수문 앞"은 생명수가 되시는 그리스도 앞을 말하며 ""도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광장"이라고 함은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광장에 학사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였습니다. 에스라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모세의 율법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또 제 2절을 읽으면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 가 다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온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고 한 것은, 말세 큰 환난시기에 이르러 구원받은 모든 믿는자들이 "수문 앞 광장" 즉 누구나 와서 얻을 수 있는 생명수를 구하면서 율법책, 즉 성경을 공부하는데 전력을 다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느헤미야 8장 9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첫째 눈물은 감사와 기쁨의 눈물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내가 구원받고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복락(福樂)을 누릴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는 감사와 기쁨입니다. 또 다른 눈물은 모든 인간이 받아야할 지옥의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말씀에서 배우고, 믿지 않는 부모, 자녀, 형제자매와 친지들을 생각할 때에 흘리는 슬픈 눈물입니다.

느헤미야의 성전 중건이 장막절 직전에 끝나고, 7월 1일에 이스라엘이 수문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다니엘서 12장 9절에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라고 하신 말과 연결이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칠 때 "알아들을 만한:understanding(2절)", "깨닫게:understand(7,8절)", "밝히 앎이라; understood"(12절)고 한 것은, 성경말씀을 비로써 깨달았다는 기록입니다. 성경을 깨닫는 일이 아무에게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편 119장 27절에 "나로 주의 법도(성경)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시 119; 34).

이와 같이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은 세상 종말이 도달했다는 증거를 믿는자들에게 성경을 통하여 주십니다. 성문화된 성경이 3,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 말씀은 말세에 사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보전해 두신 것을 깨닫게됩니다.

교회시대의 마지막

교회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대하여는 누차에 걸쳐 편지를 쓴 일이 있습니다. 누구든 간에 그 교회에 남아있는 한 자신이 믿는 교리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다

시 오실 때까지 믿는 교리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29장에 다음과 같이 예언 하셨습니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사 29:9-14)

특히 명성 있는 설교자를 바라보는 신자들은 그 명성의 그늘 때문에 참 빛인 성경의 가르침을 배울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 좋은 한 예가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입니다. 저희들이 사는 고장이 Charlotte, North Carolina 교외이며, 빌리 그래함이 나서 자라면서 복음선교를 시작한 곳입니다. 지난주에 새로 건축한 빌리 그래함 선교 본부의 도서관을 개관했습니다. 6월 5일부터 시민들의 방문을 기대하며, 입장은 무료라고 합니다. 몇 대의 미국 대통령들이 정부의 큰 행사를 치를 때마다 빌리 그래함을 초청했고, 축복기도를 담당한 아주 유명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교리를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면 구원의 교리와는 거리가 아주 멀리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공부하면 사단이 광명의 천사, 그리고 거짓의 아버지로 나타나는 것이 지금의 큰 환난 시기임을 알게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유혹을 그들 가운데 보내시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때입니다(살후 2:11-12). 다음달에는 몇 년 전에 번역한 "빌리 그래함, 교황 그리고 성경" 이라는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믿는자들이 아닐지라도 세상이 종말에 이르렀다는 그 증거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을 성경말씀과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리라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이 구절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사랑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사랑에 대하여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구제(救濟)와 자선"을 생각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아프리카의 거민(居民)들을 도와주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고전 13:3)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큰 환난시기에 이르러 식어지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 사랑은 죄값으로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할 우리를 구원받

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말세에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를 분명하게 구분하시며, 그 구분은 하나님의 계명인 성경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요 14:15)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세운 교리를 믿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참 복음 즉,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을 세상에서 듣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교단마다 그럴듯한 교리가 있습니다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곧 인과관계의 사랑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기사와 이적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 24:24)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고전 14:2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리라"(행 1:8)고 하신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 눈으로 봅니다. 성경이 수백 국어로 번역되고, 선교사들이 각국에 파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활동을 보면 대개가 카리스마적인 복음을 전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의 가장 큰 현상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안수하여 병을 고친다고 믿으며,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고 믿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을 말하므로 성령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야말로 가장 큰 사단의 유혹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올무에 빠져 참 구원, 성경이 가르치는 참 구원을 알지 못하게 만듭니다.

성경말씀만을 의존할 때, 방언을 말하는 것이 사단의 속임수임을 알게되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면서 많은 군중을 속이고 있는 사단의 역사가 말세의 가장 큰 증거임을 알게됩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만 생각하더라도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수백 가지 방법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계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참 계시는 성경에서만 발견합니다.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한 가지 계시, 성경을 쓰시고, 이 성경을 마감하시고, 이 성경 마지막에 "더 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 18-19)

참 믿는자들은 말세에 대한 충분한 계시를 성경에서 찾을 것이나, 사단에게 속한 교인들은 카리스마적 활동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혼돈합니다(살후 2:10-11). 말세에 가장 현저한 현상입니다.

불법이 성하므로(마 24:12)

인간의 역사는 가인이 아우 아벨을 살인한 사건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전쟁은 한 편이 악하거나 양쪽이 다 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락, 중동, 아프리카의 전쟁이 인간이 악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세상의 종말을 잘 알리는 사건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사악하다는 것은 법을 위반한다는 것이며, 법을 위반할 때 정부의 법이 그 국민을 처벌합니다. 법치국(法治國)인 미국에서도 범인을 다 수용할 감옥이 모자라 중범이 아니고는 다 감당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 3국이나 신생국가들의 무정부 상태에 있다는 보도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정부라 함은 무법상태이며, 인간의 사악한 본질, 즉 살인하고, 간음하고, 또 도적질하는 추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사람들이 말을 타고 장거리 여행을 다니던 때가 10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인공위성 등은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왕래하고 있는가를 100년 전과 비교하면 잘 설명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을 말한다면 컴퓨터를 발명했고, 모든 분야에 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문명이 급진적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이렇게 문화문명이 발전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도 있습니다마는, 세상이 종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을 믿는자들이 보고 깨닫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복음 전도사역에 있어서도 이러한 문화문명의 기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전자 방송망의 발전으로 하나님의 참 복음도 몇 초만에 세상 방방곡곡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말세가 된 현저한 증거를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공부할 때 예수님께서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 24:15) 이라고 하셨고 다니엘서를 공부하도록 암시하신 것을 믿게됩니다.

이대우가족 드림,

6/14/2007                   문서의 처음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