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다니엘서 2장 공부

다니엘서 2장은 49절로 된 긴 장이지만 그 내용은 참 간단한 얘기입니다.

1-11절: 누부갓네살 왕이 위에 있은 지 2년이 되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잊어버리고, 치하(治下)에 있는 박수들과 술객(術客)들과 점쟁이들에게 자신이 꾼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12-15절: 아무도 그 꿈이 무엇인지 알 사람이 없었고, 바벨론의 모든 박수들을 멸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16-23절: 죽임을 당할 그들 박수 중에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있었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 비밀을 알게됩니다.

24-45절: 다니엘이 왕 앞에 서서 왕의 잊어버린 꿈을 말하며 또 해몽합니다.

46-49절: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에게 선물을 주고 바벨론의 온 도를 다스리는 권한을 줍니다.

다니엘서 2장의 얘기가 어떤 주석이나 또 주일학교에서 쓰는 교제들 안에서, 세상의 독재자들을 비평하거나 또 비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니엘의 고결한 인격과 신앙을 찬양합니다. 한가지 또 말하는 얘기가 있다면, 큰 우상의 어떤 부분은 역사상의 희랍 국을 지적하거나, 또 로마를 지적한다는 등의 얘기입니다. 그보다 더 큰 영적인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을 믿고 성경을 거듭 읽어봅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꿈" 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지금 까지 만나 본 기독교인들이나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꿈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현상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그 부정하는 이유를 성경말씀에서 찾아 볼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의 특별한 꿈이 하나님의 계시라면, 하나님은 혼돈을 주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자기의 율법인 책 성경책에 모든 것을 써 두셨다고 하시면서(계 22:18-19) 또 여분으로 더 이상의 계시를 주신다면 하나님이 완전하시다 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꿈"이나 "꿈을 꾼다"는 단어가 111번 나와있습니다. 그 중에 꿈이라는 단어를 다니엘서에서 30번, 요셉의 얘기에서 41번을 제외하면 나머지 40번이 됩니다. 성경에 제일 처음 꿈에 대한 얘기는 창세기 20장에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했을 때 그랄왕이 사라와 동침 할 뻔 했던 사건에서 나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랄왕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얘기는 창세기 31장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시어, 삼촌 라반의 집을 나아와 아버지 이삭이 있는 고향으로 갈 것을 지시하십니다(창 31:11-13).

그 다음, 소년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 꿈을 말한 얘기(창 37:)와, 그가 옥에 갇혔을 때 두 죄수가 꾼 꿈을 해몽합니다(창 40). 그 후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일약 애굽의 총리내신이 됩니다(창 41).

이상에서 읽은 얘기들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진행될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꿈을 통하여 그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가르치십니다. 그 후 계속하여 하나님은 인간들이 꾸는 꿈속에 나타나 자기의 뜻을 시행하셨습니다.

소년 요셉과 아버지 야곱의 대화를 창세기 37장 10절에서 읽음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창 37:10)

야곱이 큰 환난을 당할 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미리 야곱과 그 자식들에게 요셉의 꿈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12장 6-8절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민 12:6-8)

위 구절에서 가르치는 두 가지 꿈에 대한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꿈은 "은밀한"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그 꿈의 바른 해석도 하나님께서 주셔야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는 "직접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라 하신 것은, 꿈을 통하여 말씀하시지 않을 때가 올 것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꿈을 통하여 인간에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도 헤롯왕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갈 것을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지시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꿈을 통하여 계시하신 기록이 마태복음 27장 19절에 있습니다. 아주 특이한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총독 빌라도의 심판을 받으실 때 빌라도의 아내에게 꿈으로 나타나신 기록입니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I have suffered many things) 하더라" (마 27:19)

여기서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녶나이다"는 KJV에는 "Suffered many things -- because of him"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도,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suffered many things)"(막 5:26)라 한 것과, 갈라디아서 3장 4절에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하는 과정을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Have ye suffered so many things)"라고 읽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많은 괴로움을 우리 대신 당하실 것을 남편 빌라도에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유의할 점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사도들의 편지 중에 꿈에 대하여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글 성경 번역에 "비몽사몽(非夢似夢:행 10:10, 11:5, 22:17, 고후 12:1-4)"은 특이한 한국어이며, 꿈이 아닙니다. 유다서에는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을 자"들을 "꿈꾸는 자" 라고 기록했습니다.

구약에서 꿈에 대하여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하셨습니다.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 13:3)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사 56:10)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렘 27:9)

물론 지난달에 살펴본 요엘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한 것과 이 구절을 인용한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하신 꿈은 우리 육체가 꾸는 꿈이 아닙니다. 이 꿈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소망, 하나님의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며, 이 천국에 대하여 분명한 말씀, 성경을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꿈은 생리적인 현상이며, 우리의 신앙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특히 한국 기독교 신자들이 자신들이 꾸는 꿈에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독실하다고 지적을 받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꿈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꿈의 지시는 예외 없이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고후 11:14) 나타났으며, "거짓의 아버지"로(요 8:44, 렘 23:25)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입은 모든 백성이 꾸는 꿈은 위에서 말한 생리적으로 경험하는 꿈이 아니고, 신앙으로 장내의 대한 소망을 가지는 꿈입니다.

저희들은 지난주에 한국에서 기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한 자매님이 근 30여 년 동안 방언을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버릴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듣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중에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으신 적이 있습니까? 회개하고 그것이 사단의 사역이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신 13:3).

다니엘 2장 1-7절: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지 이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왕이 그 꿈을 자기에게 고하게 하려고 명하여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매 그들이 들어와서 왕의 앞에 선지라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바벨론은 대국(大國)이었으며, 느부갓네살 왕은 온 세상을 다스리던 대왕이었음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꾼 꿈을 잊어버리고,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와 갈대아 술사"들이 잊어버린 꿈을 말해 줄 뿐 아니라, 그 꿈을 해몽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고 동화와 같은 얘기이지만,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한 것이 하나님이시며, 또 사실상 사건의 주인공이 느부갓네살 왕이 아니라 다니엘과 그의 동무소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피조물 중 인간들에게 있습니다마는, 택하심을 입은 자기 백성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1000배나 더 많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해가 어떻게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는지 2년"이 될수 있나? 하는 논란이 주석마다 있습니다. 사실상 한글로 번역된 2년은 "second year"로써 "다음 해"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번민하여"는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세상을 정복한 그 큰 권력이 침해될 염려를 늘 하고 있었든 것입니다. 짐승들의 세계를 관찰하면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누르고 번성하듯이, 인류의 역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역사를 말하는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바벨론은 사단의 왕국을 상징하였고, 사단은 자기의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번민하고 있습니다(마 8:29).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도 사단의 속성을 말합니다. 지금 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분쟁과 시기와 불법과 당짓는 것"(갈 5:20)입니다.

다니엘 2장 8-13절: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줄을 내가 알리라 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느부갓네살 왕이 국령(國令)을 내려 그가 꾼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도록 그 앞에 모은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글 성경의 번역이 KJV와 다른 점이 있어, 원문을 참조했습니다.) 그들은 술사들(요술사들)이며, 점성(占星)가들(astrologers)이며, 마술사(sorcerers)이며, 갈대아인(Chaldeans)들입니다. 그들 중에 아무도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사형을 받게 되었지만, 다니엘이 왕 앞에 서서 그 사형을 면하게 됩니다. 그 중 술사와 점성가와 마술사는 불신자들을 대표함이 틀림없습니다. 이 해석을 바른 해석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을 해몽하도록 명령을 받던 사람들이며, 모세가 출애굽기 전에 10가지 재앙을 애굽인 들에게 내렸을 때, 그 몇 가지 재앙들을 흉내내던 애굽인 들이 또한 술사와 점성가와 마술사들 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술사와 점성가와 마술사는 사단왕국에서 왕의 정사를 보좌하는 요원들입니다. 유의할 점은 왕이 처음에 자기의 꿈을 알아내도록 명한 사람들은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들"(KJV에는 magicians, and the astrologers, and the sorcerers, and the Chaldeans)입니다. 더 바른 번역은 "요술사들과 점성가들과, 점쟁이들과 갈대아인들(술사가 아님)"입니다. 원문에는 박수(wise-man)가 빠져 있습니다. 아람 방언으로 갈대아인(술사가 아님)이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권력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인:술사)에게 물은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KJV는 갈대아인이 지적한 사람들은 요술쟁이(magician)와, 점성가 그리고 갈대아인 입니다. 박수가 제외되어 있습니다.

왕과 대화를 한 것이 갈대아 인이라고 한 것은, 세상을 다스리던 대왕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동족(同族)을 신임하고 가까이 만나서 대화한 기록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주목을 끄는 구절은 갈대아 인이 왕에게 "아무도 왕의 꿈을 알아낼 사람들이 요술사나 점성가나 갈대아인 중에 없다"고 했을 때, 모든 박사들(wise-man)을 처형하도록 왕이 선고한 점입니다(단2:12).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이 처형을 받게 되었지만 점쟁이와 점성가들을 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니엘서에서도 구원받지 못한 요술사나 점쟁이들이, 구원받는 자들을 상징하는 박사들(wise-man)과 구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외 없이 요술사와 점쟁이들은 사단의 추종자, 거짓선지자들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음을 여러 번 읽을 수 있습니다(계 9:21 18:23, 21:8, 22:15).

다니엘의 일생은 구원받은 자들의 일생을 상징합니다. 사단은 모든 수단을 써서 하나님의 백성이 올무에 빠지도록 시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살후 3:3, 시 121:). 물론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 우리의 육신이 편안하게 산다는 것이 아니고, 일단 구원을 받은 영혼은 실족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까지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살게된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2-14)

다니엘 2장 14-18절: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는 KJV번역에 "answered with counsel and wisdom"입니다. 남을 권고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왕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인품을 하나님께서 주셨을 뿐 아니라, 사명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시기로 보아 왕이 다니엘에 대하여 이미 잘 알고 있던 때였었다고 봅니다.

다니엘과 느부갓네살 왕과의 관계는 지금의 구원받은 참 믿는자들과 사단과의 관계를 잘 상징합니다. 세상이 사단의 통치하에 있습니다마는, 200여 국가들이 각기 자기들이 새운 국법에 의하여 국민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위하여 국제법을 마련하고, UN이라는 정치체제를 통하여 통치하고 있습니다. 얼듯 보기에 세상이 평화로운 듯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평화로운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큰 사건이 폭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가지고 사는 것이 세계역사입니다. 그 와중에서 참 평화를 누리며 살수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참 믿는자들입니다. 영원한 평화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자기의 생명과 동무 박수들의 생명을 위하여 왕 앞에 나아가듯이, 믿는자들은 잃은 양을 찾으시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이라고 한 것의 성경말씀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건을 "기한하여" 일어나게 하시고, 또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때를 기한하신 사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생각하게 합니다.

다니엘이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무들과 합심했다는 기록은, 마치 우리가 모여서 주일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깨닫기 위하여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니엘과 동무 셋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지혜와 능력을 생각하며 노력한 기록이 아닌 점입니다.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자비만을 구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다니엘과 세 동무를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기 때문에 수다한 기도제목을 듣게 됩니다. 그 대개가 "주십시오" 하는 기도들입니다. 그러나 참 믿는자들의 기도는 "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쓸 것을 모두 먼저 알고 계신 것도 알게되고(마 6:25-30, 눅 12:22-30), 또 세리의 기도를 가장 기뻐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다니엘과 세 동무의 기도는 세리의 기도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지 않으면 ,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이 영원한 죽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저희들 복음회에 일어난 몇 가지 일들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저희들 복음회를 도와주시는 임 자매님이 책 을 신문에 광고 낸 결과 백 여권이 팔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는 위급한 하나님의 명령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마 24:15-16)고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한 몇 분과 대화한 편지를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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