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정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더 가까워지며, 그 말씀을 더 많이 깨닫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교단이 세운 교리는 변경할 수 있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기와 계절은 우리가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해와 달과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써서 시기를 정하신 후 성경에 기록하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이 세상의 종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가장 현저하게 사단이 사용하고 있는 꿈과 환상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말씀의 이 구절과 저 구절을 비교하면서 발견한 하나님의 기록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달력의 뜻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시기에 대하여 조회를 가지시기를 바라면서 지난달에 도표를 보내드렸습니다. 2008년도에는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그 도표를 자세히 살펴볼 계획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계 9:5)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계 9:10)

지옥의 형벌, 153일: 위의 두 구절에서 말하는 "다섯달"은 153일이며, 이 숫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그물을 던져 생선을 잡게 하신 때의 그물에 걸린 생선의 수(요 21:11)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는 우연하게 기록하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기간에 일어나는 일을 요한계시록 9장에 기록하셨고, 이 시기는 마지막 큰 환난기간의 후반입니다. 이 기간을 창세기 7장에서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간 날짜가 2월 17일이며(창 7:11),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던 날짜를 다섯 달 후인 7월 17일이라고 기록하심으로(창 8:4) 지옥의 형벌을 비교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그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의 고통을 "전갈의 쏘임을 받는 고생"으로 비교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는 전갈도 뱀과 같이 사단을 상징합니다. 이 시기에 대하여도 다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 4장 공부

얘기의 줄거리:

1-3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온 천하에 명령을 내려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 적과 기사를 알게 하기를" 원하는 조서를 내림.

4-9절: 바벨론 모든 박사들에게 왕이 꾼 꿈을 해석하도록 명령하나 해석을 못하기 때문에 다니엘에게 그 해석을 요청함.

10-18절: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다니엘에게 모두 고하며,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음을 믿고 명령을 내렸음.

19-27절: 다니엘이 왕이 꾼 꿈을 해석함.

28-33절: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느부갓네살 왕에게 계시한 사건이 모두 이루어짐. 느부갓네살 왕이 미친 사람이 됨.

34-37절: 느부갓네살이 제 정신이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양함.

이상에 말한 얘기 줄거리가 다니엘서가 씌어진 후 근 2000년 동안 한가지 얘기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사가(史家)들에게는 큰 연구의 재료가 되었으며, 온 세계를 큰 권력으로 통치하던 대왕이 정신이상이 되었다는 얘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을 것입니다. 더욱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 다니엘 4장을 쓴 저자가 얘기의 장본인인 느부갓네살 왕 자신이며, 다니엘은 그 글을 자신이 쓴 책의 한 장으로 삽입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들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며, 다니엘 4장의 이 기록이 바로 말세를 처한 우리가 알아야할 중요한 사건들임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다니엘 4장 1-3절, 느부갓네살왕은 꿈에서 본 이적과 기사를 알게 하도록 조서를 내림:

"느부갓네살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찌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權柄)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 하는 자"는 사건이 전 세계적임을 잘 표시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역사적으로 통치한 지역이 온 천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이 제외되었을 것이며, 북 남미도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니엘서의 독자가 21세기 천하에 사는 사람들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2절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라고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절대자이심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 4장에 나타나는 느부갓네살 왕의 기사는 그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기록이다"라고 오해하는 사람들 몇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사단을 상징하고 있음이 현저합니다. 사단이 거짓의 아버지임을 특히 마지막 때에 와서 나타낼 것을 예수님께서 경고하시지 않았습니까?(마 24:24).

말세의 기독교 지도자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말세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할렐루야!"를 계속하여 외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다는 소위 신령하다는 부흥강사들을 상징한 것이 아닙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대형교회의 지도자가 모두 이런 형에 속합니다. 눈에 나타나는 교회의 번영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과 기사"라고 믿고 가르칩니다마는, 성경이 정의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될 수 없음을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악한 세대가 이적을 구하나 하늘에서 오는 이적은 "요나의 이적밖에 없다"고 하신 점입니다(마 16:4). 그러므로 어떤 기독교의 지도자가 꿈이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가르침에 속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완성하시고 자신의 계시를 마감하셨다는 기록(계 22:18-19)입니다. 성경말씀의 모든 뜻이 성경말씀으로만 해석이 되어야합니다. 우연하게 texas에 있는 Lakewood 교회와 Joel Osteen 목사의 얘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는 설교의 내용을 "Your best Life Now"라는 책을 발간하여 100만 권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주목을 끌었던 얘기는 그 설교 집에 성경 구절이 한 마디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교의 내용인즉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노력할 때 번창하는 장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놀라게되는 것은 Lakewood 교회의 교인수가 47,000명이라는 점입니다.

이 번창에 대하여는 10절에 가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사단이 온 천하에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한 것은 지금 세계 평화를 부르짖는 범 종교단체, WCC가 아닙니까? 수많은 기독교 교파와 교회가 WCC의 회원이 되었다는 것은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한 느부갓네살의 소원이 성취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4장 4-9절: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였으되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인하여 번민하였었노라 이러므로 내가 명을 내려 바벨론 모든 박사를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매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가 들어왔기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느니라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좇아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고하여 가로되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이상의 해석을 내게 고하라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을 실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천하를 정복한 대왕의 생각은 그 한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며, 어떤 충신을 등용하여 각 지방을 통치하게 할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왕을 세우시고 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었다면 그 결과가 달랐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뇌 속으로 이상을 받게 하셨습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 이 이상을 받은 때가 "내 궁에서 평강할 때"라고 함으로써 마지막 때에 교회가 전하는 평강의 복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하신 관심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교단과 교회에 있으며,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느부갓네살의 역사가 말세를 당면한 온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교단과 교회가 "멸망의 가증한 것"에 의하여 점령된 때를 상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예루살렘)을 "소돔이라고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계 11:8)라고 하신 점과 일치합니다. 마지막 때가 바로 사단이 온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는 때이며 이 때의 상황을 가장 잘 표시한 구절을 예레미야 6장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 13-14)

위 구절에서 "평강이 없도다"라고 하신 것이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점령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난리(亂離)를 지적하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불타서 없어 질 때까지 거짓선지자들은 평화를 왕에게 고하지 않았습니까?(렘 28:1-11).

바벨론 모든 박사: 6절에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해몽하도록 불러드린 사람들은 "바벨론 모든 박사"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궁전에 들어온 사람들은 "박수(magicians:요술사) 와 술객(astrologers:점성가들)과 갈대아 술사(갈대아인)와 점쟁이들입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마지막 때의 교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자 만이 존재해야할 교회 안에는 요술사, 점성가, 갈대아인(구원받지 못한 자의 상징) 그리고 점쟁이들로 완전히 점령되었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듯이 교회는 완전히 파괴된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떠나셨다는 사실이며, 교회에서 지상(至上)의 법이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이상 법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성경말씀을 다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리상 하는 것이며, 사실상 지도자들이 말씀의 진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 교리가 바로 자유의지 신앙이며, 하나님께서 확고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세우신 성경의 법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요술사이며, 점성가이며, 점쟁이들이며 또 이방인인 갈대아인 들입니다.

7절에 나타나는 요술사나, 점성가나, 갈대아인이나 점쟁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하는 다니엘이 마지막으로 초대를 받은 기록은,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오묘한 성경말씀의 뜻이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개봉될 것을 상징합니다.

9절에 다니엘을 "박수장"으로 부른 것은 지난달 2장 공부에서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다니엘에게 주어진 명예로운 직책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능력을 알게 되고, 다니엘을 통하여 많은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 없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기록을 읽습니다.

다니엘 4장 10-14절: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

"내가 침상에서 나의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더라 내가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巡察者:watcher),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큰 나무: 위의 구절은 느부갓네살의 장래를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꿈에 대하여 다니엘이 일일히 설명을 한 구절이 19-27절에 뒤를 따릅니다. 성경에는 "나무"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 1:3)라고 하셨고 또 "포도나무"의 가지로 비유하셨고(요 15:5),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시어(마2432) 자기가 계획하신 인간역사의 시간표를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주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마 24:32)은 근 2000년만에 이스라엘이 한 국가로서 다시 독립한 것의 예언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또 이 이스라엘의 독립이 말세의 시기를 알게 하시는 기점이 됨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줄을 자연히 아나니"(눅 21:29-30)라고 하심으로 우리가 그 마지막 추수하는 때(여름)에 살고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모든 나무"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국가들입니다.

1945년 10월 24일에 세계 40여 개의 국가들이 함께 모여 UN을 구성했다는 자체가 누가복음 21장에서 말씀하신 예언이 이루어 진 것이며, 이 UN의 회원국 수가 60년이 체 못되어 192개국이 되었다는 것은 역시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이라고 하신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에는 이 나무들을 한 나무로 보이셨으며, 그 나무를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라고 한 것은 마지막 때에 이르러 번창하는 나무들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순식간에, 또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을(전자시대) 예언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늘에 닿은 나무: 나무가 자라서 "하늘에 닿았으니"라고 한 것은 창세기 11장에서 인간들이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창 11:4)라고 한 것과 일치합니다

창세기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탑을 완성치 못했지만, 느부갓네살은 하늘에 닿았다 라고 기록된 것은 이간이 무엇인가를 달성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지난 60년간에 세상에 성취된 업적들은 하늘에 닿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자시대를 전개한 과학과 공학은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본 것이며, 이 발전을 찬양하는 축제를 계속하여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과학과 공학에 병행하여 인간의 문화는 화려하게 빛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공적이 찬양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든 발전의 기본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라고 한 것은 잘 살게될 세상을 지적하신 것이며,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라고 하신 것은 실제적으로 그 식량이 풍족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겠습니까? 1960년대에 아프리카 여행기에는 벌거벗은 흑인들의 미개(未開)한 그림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가 고층건물을 짓고 또 사람들은 모두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가 70억에 육박하고 있습니다마는, 모든 인구가 먹고 살만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좋은 시대가 인간의 노력으로만 되었다고 모두가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하늘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하늘이 땅보다 높음과 같이 내 길은 너희 길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9)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도록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많은 경우 성경말씀은 실제적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징하고 예언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이 세대가 "음란한 세대"라고 하신 것은 실제적으로 세상이 음란해질 것을 말씀하신 동시에, 영적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할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늘에 닿은 큰 나무를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나무는 사단(느부갓네살)을 지적하며, 그 그늘에서 짐승들과 새들이 살았다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구원받지 못한 인간들이 함께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제사 법에 정결한 짐승과 새를 가르시고, 그 특정한 짐승과 새 만이 제물(祭物)이 될 수 있는 법을 만드셨지만, 부정한 짐승 낙타나 당나귀도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하셨다는 점입니다(행 10:16).

"한 순찰자(Watcher), 한 거룩한 자"는 그리스도이시며, 마지막 심판 때를 상징함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사단이 인간을 다스리지 못할 때입니다. "그 나무를 베고"는 나무 가지를 자르며, 그 가지가 얼마 동안 살아 있다가 말라버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4장 15-18절: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 (계속)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 청초(靑草:tender grass)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나 느부갓네살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박사가 능히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

이 구절은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이며 다음 23-25절에 반복됩니다.

다니엘 4장 19-23절, 다니엘의 꿈 해석: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얼마 동안(for one hour)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하여 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을 인하여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왕의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멸하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청초(靑草:tender grass)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더라 하시오니"

요한계시록을 묵시록(apocalyptic book)이라고 불러왔으며, 구약의 다니엘서를 또한 묵시록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묵시록을 공부한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여러 각도에서 서로 비교해야 함을 알게됩니다. 요한계시록이 바벨론의 멸망을 한 주재로 삼고있는 것과 같이, 다니엘서도 실제적으로 바벨론왕국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겪고 있는 마지막 때의 실상을 보여주십니다.

"다니엘이 얼마동안 놀라 벙벙하며"는 다니엘이 말세에 일어날 무서운 진상을 보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얼마동안"은 오역이며, "한 시간동안"으로 번역되었어야 합니다. 이 "한시간(one hour)"의 뜻을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께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신 그 시간을 "한시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0, 막 14:37, 눅 22:59). 그 시간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영원히 멸망당할 큰 죄를 대신 받으신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시간"을 바벨론이 심판 받는 시간으로 요한계시록 18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량을 같이 하며"는 들짐승들이 받는 모든 혜택을 동일하게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one hour)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계 18:10)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one hour)에 망하였도다" (계 18:19)

사단의 왕국: 그러므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왕위를 떠나고 짐승과 같이 미친 사람이 된 것을 큰 나무가 베여짐을 당한 것으로 기록 하셨습니다. 견고하여진 나무는 사단의 왕국이며, 그 사단은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사 14:13)고 하며 13,000년 동안 세력을 거침없이 구사(驅使)해 온 것입니다.

"그 나무를 베고(Hew down:베어 넘기다) 멸하라"고 명하신 뜻을 살펴보기 위하여 "베어 넘기다(He down)"는 단어가 단 두 번 다른 곳에 사용되었음을 발견합니다. 그 중 하나는 신명기 12장 3절에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Hew down)불사르고"라고 하셨고, 또 하나는 예레미야 6장 6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흉벽을 쌓으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고 하신 곳입니다.

신명기 12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제일 먼저 가나안 주민들의 우상을 "베어 넘기라"는 명령이며, 예레미야 6장에서는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렘 6:1)고 명령하신 때에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두 경우가 다 마지막 큰 환난 시기를 지적합니다. 신명기의 기록은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을 말하며, 예레미야 6장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우리에게 그 예루살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일곱 때: "일곱 때를 지내리라"고 하신 말씀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를 지적하심을 알게됩니다. 이 "일곱 때"가 7개월 일수도 있고 7년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 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때가 완전히 지나간 후에"라고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이 일곱 때에 대해서는 장막절, 혹은 수장절을 상기시킵니다. 장막절은 유대 달력 제 7월이며, 이 7월을 연말로 부른 것은(신 15:1-2) 장막절이 마지막 큰 환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표시합니다. 또 일곱 때와 연관이 되는 해는 희년(禧年)입니다. 이 희년은 7년이 일곱번 반복된 후에 오는 해 이며(신 31:10). 이 해에는 빚이 면제(免除)되는 해이며 또 세상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레위기 26장에는 하나님께서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칠배나 더 징치할찌라"고 거듭 경고 하셨습니다(레 26:18,21,24,28).

이상과 같이 다니엘 4장에서 읽을 수 있는 숫자, 한시간과 일곱 때는 세상종말을 지적합니다마는, 그 때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공부는 이번 달 공부에서 끝을 맺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루터기(stump)는 땅에 남겨두고"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루터기"라는 단어가 다니엘 4장에 유일하게 씌어졌으며 한글 성경에 "그루터기"로 번역된 4 구절들이 다 각기 다른 원어에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라고 하신 것을 더 이상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하신 것에서 "들"은 세상이며 "청초"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양때가 먹고 자라게하는 초장입니다. "하늘 이슬에 젓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신 32:2). "들짐승"은 사단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상징입니다.

이상 살펴본 내용을 요한계시록 9장 5절에서 말하는 5개월을 생각하면서 결론을 내려보겠습니다.

하남께서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을 성경으로 쓰셨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 꿈의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할 중요한 사건임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을 "내 종"이라고 불렀고(렘 25:9), 느부갓네살이 회복된 후 말년에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해서, 그는 더 이상 사단을 상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게된 때는 이미 그에게는 바벨론 왕권의 종말에 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이 들짐승과 같이 살게된 떼는 믿는자들이 다 휴거를 당하고 없을 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순간부터 인류는 사단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고, 이 사단의 지배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다 믿고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들짐승처럼 지낸 기간 "일곱 때"가 형벌을 받는 기간이며, 그 기간이 5개월인 것을 요한계시록 9장이 말하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하늘의 이슬이 내린다는 뜻은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보이시는 말씀의 검으로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신 32:2).

다니엘 4장 24-27절, 다니엘의 꿈 해석 계속: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정(命定:decree)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 다니엘이 왕에게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라고 함은 왕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시는 가의 설명입니다.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마 5:3),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권유한대로 하지 못하고 교만한 왕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은, 인간을 멸망시키는 마지막 재앙을 내릴 때 인간들이 이를 갈며 원망한다는 기록을 상기시킵니다(마 8:11-12).

다니엘 4장 28-33절,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왕에게 임함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 두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쌔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는 모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적용되며 비로소 그리스도를 시인하게 될 세상의 종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고, 소처럼 풀을 먹으며,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다는 뜻은 앞으로 더 성경구절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다니엘 4장 34-37절, 느부갓네살 왕의 하나님을 찬양: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그 기한이 차매"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나라의 흥망을 다 친히 계획하시고 이루어지게 하심을 가르칩니다.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는 하나님이 절대자이시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심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한 역사적 기록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져 하는 뜻이 숨겨져 있어 그 뜻을 다 찾기가 어려워 앞으로 더 살펴볼 계획입니다.

지금까지의 공부를 요약하면,

1. 바벨론은 사단의 왕국을 상징하며, 이 대국의 왕 느부갓네살을 사단으로 상징하는 것은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며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된 바입니다. 이 다니엘서 4장은 그 사단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또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글의 끝을 맺는 것에 놀라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단이 광명의 천사 그리고 거짓의 아버지로 나타날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2. 사단의 왕국과 그 통치자를 큰 나무로 상징한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은 번창하고 평안을 누릴 것에 대한鑁3 상징입니다. 큰 나무가 "배어 넘김을 당하는(Hew down)" 일은 모든 불신자들에게는 갑자기 일어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오신다"고 믿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돌연한 사건일 것입니다.

3. 다른 한편 성경에 절기에 대하여 상세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장막절(수장절)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 직전에 있을 마지막 환난기간을 상징합니다. 큰 나무가 배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종으로 쓰시던 사단의 사역이 끝났음을 지적하며, 또한 교회시대에 교회의 사명이 끝나고,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고 있는 기간에 일어날 사건임을 가르칩니다.

4. 성경은 지구의 창조가 13,000년이 되었음을 명확히 기록하셨으며, 노아의 홍수 후 7000년이 되는 해가 2011년임을 믿는자들이 살펴보도록 명령하셨습니다(벧후 3:12). 지난달에 보내드린 도표를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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