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다니엘 5장을 공부하기 전에 성경에 기록하신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몇 가지 살펴보고, 작년 12월에 보내드린 도표 "지금 까지 이루어진 아주 중요한 시기들의 간격"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말세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짐: 성경에 기록된 말세에 대한 예언이 모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2011년이 세상의 종말이 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신학에서 나온 교리도 아니며, 예언서에 선언하신 오랫동안 기록되어 남아 있는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사 46:10-13, 48:3, 16, 20, 전 8:5, 암 3:7, 창 1:14).

기독교가 번창하면서 사실상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기록교인의 수는 희귀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설교의 주재가 되고, 기독교인들의 생활 목표는 "선한 사람이 되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킨다"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세상 종말에 있을 것이나, 그 세상 종말이 언제냐 하는 것에는 다윈(Darwin)의 진화론의 영향을 암암리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받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직도 수만 년은 더 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은 다 자칭 거듭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며, 천국에 간다는 보장을 믿고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는 가에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그 심판의 날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강조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은 말세에 사는 인간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묘사하였고, 또 노아의 때와 비교하여 우리가 그 마지막 날을 어떻게 당해야하는 가에 대한 명령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2)

"Looking for and hasting unto the coming of the day of God, wherein the heavens being on fire shall be dissolved, and th elements shall melt with fervent heat?"(2 Pet 2:12 KJV)

한글 성경의 번역이 미약합니다. KJV의 번역이 희랍어 성경에 가까운 번역이며,

"Looking for"는 희랍어 "prosdokao"이며 "찾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는 "하나님의 날이 옴을 찾아보는 일에 대하여 지체하지 말라"고 번역 되어야할 것입니다. 이 구절도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는 암시이며, 하나님의 날에 대한 자료가 성경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음을 또한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교회가 세운 교리를 잘 지키고 교회에 순종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며, 모든 성경말씀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알게되는 것은 교단이 세운 교리가 극히 미약하고 불충분할 뿐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내용의 극히 적은 부분만을 다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이 너무나도 오묘하기 때문에 내가 성경을 공부한다 할지라도 그 뜻을 당장에 알게 하시지 않고, 성경 구절들을 비교하면서 숨겨두신 말씀의 뜻을 노력하여 찾게 만드십니다(사 28:10).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살펴보기 전에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신 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구절을 요한복음 14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이 구절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읽고 위로를 받는 구절입니다.

3절에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신 것은 어떤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재림을 말씀하신 것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라고 하신 말씀에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단어 "근심하다(troubled)"가 예수님의 재림을 지적하여 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마지막 날"이라고 하셨고(요 6:39, 40, 44, 54), 여호와의 날(사 13:9) 주의 날(살전 5:2, 살후 2:2, 벧후 3:10), 피난 때(time of trouble: 시 9:9, 10:1), 전무후무한 환난의 날(마 24:21-22, 막 13:19-20, 단 12:13), 재앙의 날(렘 17:17), 심판의 날(계 14:7, 20:12)이라고 하신 구절들이 성경에 가득 차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실 때마다(마 13:34, 겔 20:49, 막 4:11등) 그 비유는 천국에 대한 비유이며, 이 천국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써 시작될 것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 한가지 비유의 말씀을 살펴보면, 씨 뿌리는 비유에서 추수 때(마 13:30)를 말씀하시고 그 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지적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학도들이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성경을 공부할 때 도달하는 한가지 결론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성경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 마지막 때에 초점을 두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그리고 역대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마지막 때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는, 몇 가지 성경 구절 때문에 이 "때에 대하여"서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고 믿도록 많은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신자들은 교파에 상관없이 이 구절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교리로 믿고 있습니다. 그 구절이 마태복음 24장 36절이며 또 마가복음 13장 32절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모두 말하기를 "보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아들도 모르고 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 때와 시를 알려고 하는 자체가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이다. 과거에도 날짜를 지적하고 예시하였지만 맞은 일이 없지 않았는가?" 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1992년도에 다미선교회의 이단적인 활동이 사회에 끼친 악 영향을 특히 한국사람들은 알고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강단에서 나오는 소리 보다 더 크게 들리는 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요 10:3, 27). 자신이 성경말씀을 배움으로써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전도서 8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judgment:심판)을 분변하나니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전 8:5-6)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 4:17)

심판(judgment)의 시기: 전도서에 "시기와 판단"은 "심판(judgment)의 시기"를 말하며, 이 두 단어를 서로 구분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심판은 없으며, 지혜자(구원받은 자)는 이 심판의 시기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셨음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다"라고 만 믿는자들에게 극히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성경을 쓰신 이유가 마지막 시기에 일어날 사건과 그 심판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쓰셨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에 심판을 말하실 때는 반드시 그 시기를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홍수의 심판을 노아에게 말씀하셨을 때 7일 후에 장마가 시작되리라고 하셨고,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 들어간 7일 후에 즉시 방주의 문이 닫쳤고, 계획하신 대로 7일 후에 인류를 멸망하는 홍수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전도서에서 "시기와 판단"은 "시기와 심판"이라고 번역되었어야 하며, 심판을 하실 때에 반드시 그 시기를 정하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5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judgment:심판)을 분변하나니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고 하심으로써, 지혜자(구원받은 자)들에게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언제"라는 날짜를 동시에 말씀하셨음을 지적합니다. 말세의 심판을 상징하는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니느웨 성을 멸하시기로 하셨던 계획을 우리는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심판날에 대한 명확한 날짜를 정하시고 알게 하셨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할 것입니다.

인자(자신)도 모르나니의 뜻: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인자(자신)도 모르나니"라고 하셨겠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창조주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날을 계획하시고 그 사건이 일어나도록 친히 진행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성경은 구절과 구절을 비교하면서 분석을 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경험이 없다"는 단어가 "모른다"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인자도 모르고"라고 하신 것이 결코 "나는 그 때를 모른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말씀하시던 때가 그리스도 자신 외에는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모르는 때이었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앞으로 이 어려운 경험을 겪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른다"는 단어가 이와 같이 씌어진 또 다른 한 경우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잉태할 것을 전할 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라고 한 것은 마리아가 남자와의 동침한 경험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도적과 같이 오시는 예수님: 위에서 살펴본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한 구절과 같은 관심을 끄는 구절이 또 있습니다. 그 구절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과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확실히 앎이라"(살전 5:2)고 하신 구절입니다. "도적과 같이"의 뜻 뿐 아니라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의 뜻을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구절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상태임을 다음 구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 지적하셨습니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하신 것은 어떠한 상태를 말씀하신 이상의 뜻으로 믿는자들에게 약속하시는 기쁜 소식이 숨어있습니다. "못하리니(should not)"는 하나님께서 시행하시겠다는 의지를 표시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세가 노아의 때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다고, 또 여러 번 성경에 기록하셨으면서 "너희들은 그 날과 때만은 모르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15-16절을 깊이 생각하게됩니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계 9:15-16)

사도요한이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고 말한 것은 "그 때"에 나타날 수이며, 또 "그 때는" 밤에 도적과 같이 오는 때가 아니고, 정확하게 "년, 월, 일, 시"에 이르러서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때는 "심판의 때"이며, 이 심판의 때가 얼마나 무서운 때임을 거듭거듭 기록 하셨으면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그 때를 숨겨두시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29장 29절에 약속하신 대로 "심판 날"에 대한 날짜는 이미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주신 비밀이며, 그들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해야할 일은 더 열심히 성경말씀을 찾아보는 일입니다.

숨겨진 비밀: 소위 기독교인들에게 문제가 되어온 것은, 이 비밀을 찾기 위하여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단 4:7)에게 가서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지금 말세에 살고있는 믿는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의지할 때, 그 말씀 속에 숨겨두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세상이 보기에 가장 미련한자 들입니다(고전 1:27, 2:14). 그러나 이 백성들의 절대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의지하게됩니다. 말세에는 거짓선지자들이 판치는 때인 것을 모든 예언서에 기록하셨습니다(신 13:). 그러나 믿는자들이 그 거짓선지자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다 성경말씀을 그럴듯하게 인용하기 때문입니다(살후 2:7-12). 수없이 많은 기독교 교리가 세상에 쏟아져 나왔으며, 그 거짓교리를 배경으로 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신학박사들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화의 근원이 된 것을(렘 23:30-32)참 믿는자들은 다 알 수 있을 때가 되었습니다. 말세에 가서 가장 어리석은 기독교인은 아직도 교회를 찾아다니며, 어떤 목사의 신령한 설교를 믿고 따라다니는 자들입니다. "산으로 도망하는 자"만이 살게되는 때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AD 2011: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는 작년에 공부한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을 보내드리기로 하고, 세상에 종말이 2011년이라는 단정을 성경에 어떻게 표시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천지의 창조, BC 11013: 우주의 창조가 얼마나 된 것은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며, 구약성경에는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기록에서 히브리어 "카라 쉠(Qara Shem)이라는 단어를 써서 직계 아들을 지적하는 경우와 후손을 지적하는 경우를 분명하게 구별하신 것을 이해하게됩니다.

노아의 홍수, 말세의 징조: 노아의 홍수가 BC 4990에 일어난 사실을 발견하며, 그 해부터 7000년을 계수(計數)하면 AD 2011이 됩니다. 노아의 홍수를 성경에서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숫자 "7"에 대하여 강조하신 것을 또한 알게됩니다. 노아에게 "7일 후"면 홍수가 시작될 것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창7:4), 이 7일을 7000과 비교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벧후 3:8). 베드로후서 3장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3절에 "말세에 기롱(譏弄)하는 자"들은 특히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내가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에 대한 모든 것을 계획하신 것을 믿지 못하는 발언은 "기롱하는 자들"의 말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서운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자세한 하나님의 계획을 살펴볼 의도가 없는 자들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심으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지적하셨고,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심으로 2011년이 노아의 홍수부터 7000년이 되는 해는 잊어버릴 수 없는 사건의 해인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잊지 말라"고 하신 것은 명령이며 참고 정도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해, AD 1994: 1994년은 희년(禧年)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BC 7년 희년에 탄생하셨고, 40번째가 되는 희년이 1994년입니다. 희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속죄하심을 상징하며,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받는 마지막 환난기간이며, 이 기간이 1994년에 시작된 것을 지적합니다.

1290년(단 12:11): 야곱이 애굽에 피난하던 해가 BC 1877년이며, 1290년 후인 BC 587년으로부터 2580(=2 x 1290)년이 되는 해가 AD 1994이며, 이 해는 교회가 심판을 받고 교회시대가 끝난 해 입니다.

성경역사에 기록된 3가지 큰 환난: 성경에 기록된 세 가지 큰 환난 (야곱의 큰 환난, 이스라엘이 겪은 큰 환난, 우리가 겪고 있는 마지막 큰 환난)은 그 성격과 영적 뜻이 동일하며, 그 기간에 대하여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서 서로를 1대 1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렘 30:7).

 

야곱의 큰 환난(행 7:9-11) 7년 = 84개월;

이스라엘이 겪은 큰 환난; 70년 = 840개월;

마지막 큰 환난: 23년 = 8400일; AD 1988에서 (2300주야[전반], 6100주야[후반])

마지막 5개월, 153일 ------- 5월 21 (오순절)-->10월 21일(속죄일)

BC 1877년 과 BC 587년: 야곱의 7년간의 기근이 가나안에서 시작되었지만 요셉의 초청을 받고 BC 1877년에 애굽에 가게됩니다. 그 해부터 정확하게 1290년인 BC 587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당합니다.

BC 587년과 AD 1994년: AD 1994년은 BC 587년에서 정확하게 2580년(2 X 1290) 후이며, 우리가 겪고 있는 마지막 큰 환난의 후반(後半)이 시작되는 해입니다. 이때부터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복음을 듣게 되는 때입니다.

AD 1988년: AD 1988년은 우주 창조의 13000년 기념일이며, 교회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큰 환난, 23년이 시작된 해 입니다. 노아 홍수의 멸망이 창세 후 6023년만에 (11013 - 4990=6023) 온 것 같이 세상의 종말도 13023년 만(11013 + 2011 - 1=13023)에 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몇 해'를 지적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해의 '어느 날'이 지적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특히 그 해의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이 해를 계산하는데 사용됩니다. (다니엘서를 앞으로 공부하면서 더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 5장 공부

내용; 이야기의 줄거리

1-4절: 바벨론 왕 벨사살이 우상을 찬양하는 연회를 베풀었음

5-9절: 왕궁 문 벽에 손이 나타나 글을 씀으로 왕이 놀라 술사와 박사들을 불러 그 글을 읽도록 명령하였으나 그들이 읽지 못함.

10-16절: 태후의 제안을 받아 왕이 다니엘을 불러서 그 글을 해석하라고 부탁함.

17-28절: 다니엘이 그 글을 해석함.

29-31: 벨사살왕은 다니엘에게 상을 내렸고, 손가락이 쓴 글을 해석한 바와 같이 왕은 그 날밤 피살을 당함.

다니엘 5장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70년 큰 환난의 마지막 해, BC 539년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국의 마지막 해 마지막 날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러분께서 바벨론이라고 불리는 현 세상이 마지막날에 이르렀다고 가정하고 이 장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즉 2011년 5월 21일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하고 본문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적지 않는 자료들을 다니엘 5장에 숨겨두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바벨론 왕국은 세상에 어떤 국가와도 비할 수 없이 번창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벨사살왕의 공적에서 온 것이 아니고, 느부갓네살왕이 세상을 정복하고 통치하던 대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벨사살왕은 부왕(본 장에서 느부갓네살을 부왕으로 불렀으나 역사적 기록에는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손자로 알려짐)이 닦아 놓은 국가의 기초와 국력과 또 국방을 믿었기 때문에 "귀인 일 천명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잔치의 목적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가져온 기명(vessel)을 사용하여 술을 마시며 즐길 뿐 아니라,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5:23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000명의 귀인: 다른 한편 "매대 사람 다리오"는 1000명의 귀인이 참석한 이 큰 잔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바벨론을 점령한 다리오왕은 전략이나 전술도 필요 없었고, 이 대국을 점령하는 일도 아주 쉬운 일 이였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리오왕의 군사들에게는 한 명의 피해도 없었다는 역사입니다.

바벨론 국의 중요한 인물들이 다 술에 취해있었고, 그 중에는 국방장관과 또한 육해(陸海)군(공군은 없었을 때) 사령관들이 마음놓고 잔치를 즐기며 술에 취해 있었던 때 였습니다. 여기에 영적인 뜻을 각 구절을 읽어 가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4절: 바벨론의 왕 벨사살왕이 잔치를 베풀다

"벨사살왕이 그 귀인 일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일천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이 구절에서 "귀인 1000명"은 "바벨론 왕국에 속한 모든 귀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1000은 완성을 가리키며, 바벨론에는 이 귀인들로 국가의 조직이 완성되어 있었든 것을 지적합니다.

술을 마시는 일에 대하여는 많은 기록이 성경에 있습니다. 제일 처음은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창 9: 20-21)고 기록되었으며, 또 그 벌거벗은 것을 아들이 본 것은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었음을 다음 구절에 기록했습니다. 노아가 실수한 기록이며, 술에 취하여 자기의 정신을 잃었던 것입니다. 소돔의 멸망을 피하고 나온 롯도 술에 취하여 실수한 것을 창세기 19장에 기록하심으로 인간이 술에 취하고 범죄 함을 가르치고있습니다.

신약 기록에는 "술 취하는 자와 사귀지도 말고"(고전 5:11)라고 하셨고,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10)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술 취하는 기록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12-13절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사 22:12-13)

술에 취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술에 취한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받고 만족하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사 28:7). 다니엘서 5장에 벨사살왕이 귀인 1000명과 함께 술에 취하게 되는 얘기도 거짓 선지자의 얘기가 됩니다. 예루살렘은 멸망을 당하고, 참 믿는자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와서 살고 있을 때입니다. 바벨론 왕은 이 참 믿는자들을 통하여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충분히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벨사살왕이 다니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진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조부인 느부갓네살왕이 다니엘 4장에 기록한 역사를 벨사살왕은 배웠을 것이나 이것을 무시하였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 성소: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의 뜻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전을 설계하셨고, 또 기명의 용도를 일일이 정하시고 쓰게 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의 전에서 쓰는 기명은 절대로 구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기명을 딴 용도로서는 쓸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전을 가리켜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셨고 또 "성소"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전 성소"가 무엇인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벨사살왕이 그 기명들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전 안에서 가져온 기명을 써서 술에 취하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색인 우상들을 찬양한 것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쓰던 기명으로 술을 마셨다는 사실은 제 이차대전 때의 한국 기독교를 연상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예배당, 성경책, 찬송가 등의 성전 기명들을 이용해서 사실상 일본 천황을 예배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활동하던 거짓 선지자들이 지금까지도 그들의 행위가 타당했던 것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종말을 3년 앞에 두고 있는 바벨론, 곧 기성교회의 상태입니다. 기명이 무엇입니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이 아닙니까? 교회가 하늘의 음식을 받아먹어야 살턴데, 교회가 먹는 음식이 온통 세상적이며, 또 인간적입니다. 이 상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벨사살왕이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던 기명을 써서 술을 마셨습니다. 이 역사적인 기록에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몇 가지 있습니다. 세상이 마지막에 이를 수록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생명이 없는 신상을 찬양한다는 점입니다. 각 금속에 대한 뜻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는, 이렇게 모든 금속을 일일이 지적하신 이유는,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과학문명이며, 사회문명이며, 또 경제적 번영입니다. 이 모든 것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높이 바라보고 찬양하고있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생명,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외면 시 되고 있습니다. 마치 벨사살이 성전에서 쓰던 기명을 사용한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세상에서 편리하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5-9절: 왕궁 벽에 쓴 글자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 옷을 입히고 금 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때에 왕의 박사가 다 들어 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벨사살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

이 구절에서 "사람의 손가락"은 하나님의 손가락입니다. 이 손가락이 쓴 글을 볼 수 있는 때가 다가왔습니다. 참 믿는자들은 이미 이 손가락을 보고 있으며, 바벨론이 어떻게 망할 것인가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대표하는 "바벨론 박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없었으며, 읽어 준다고 해도 그 말씀은 듣기 좋은 말이 안일 것이며, 또 이해를 못했을 것입니다.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라고 한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 일 동안 미국 남부에 회오리바람으로 집이 파괴되고 그 속에서 구사 일생한 사람들의 얼굴빛을 TV에서 보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지난번 격심한 쓰나미 재난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울상, California의 큰 산불에 집을 잃고 울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던 생각을 하십니까? 다니엘 5장은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지금부터 3년이 지나면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한 것"을 볼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손가락이 쓴 글을 알기 위하여 또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라고 읽습니다. 만일 벨사살왕이 다니엘을 자기의 보좌관으로 등용하였더라면 문제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12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형편은 믿는자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우리는 "사로잡혀온 유대 자손"이 됩니다.

온 천하를 다스리던 대왕 벨사살왕이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쓴 글을 보고 번민했던 모양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넓적다리마디가 녹는 듯 하고"라고 한 것이 얼마나 번민한 상태인지 알 수 없습니다마는, "넓적다리(Loins)" 가 "허리"(히 7: 5, 10, 엡 6:14)로 번역되었고, 이 허리의 마디는 신체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녹는 듯 하고"는 몸 전체가 녹는 듯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도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는 듯 하나 이에 대한 설명을 성경 구절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손가락이 쓴 글이 왕을 지적하여 말하는 것임을 벨사살왕 자신이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지금 무릎을 꿇지 못하는 사람은(스 9:5-6), 하나님 심판대 앞에서 무릎이 서로 부딪치는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할 것입니다.

10-12절: 태후가 다니엘을 부르도록 권유함

"태후가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잔치하는 궁에 들어 왔더니 이에 말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케 말며 낯빛을 변할 것이 아니니이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었음이라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자: 태후가 벨사살왕의 모친인지 할머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술을 마시는 연회장에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태후가 다니엘을 알고 있었지만 다니엘의 신앙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11절을 읽으므로 알게 됩니다. 11절에는 또 부왕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다"는 기록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바벨론 왕국의 국사가 언제나 그들의 의견을 받아 시행되었고, 둘째로 그럼에도 그들의 어른인 다니엘은 제외되었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뜻을 생각할 때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참 믿는자들의 환경과 일치합니다. 참 믿는자들은 세상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을 일일이 말씀을 통하여 알게되어 있지만, 세상은 참 믿는자들이 휴거를 당하는 직전까지 믿는자들의 신앙을 무시하고 믿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3-16절: 다니엘이 글을 해석함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입어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지금 여러 박사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로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능히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파한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면 네게 자주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드리우고 너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성경을 읽을 때 역사적으로 바벨론 왕국이 유다와 그 국민들을 혹독하게 다루었음을 알게됩니다.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다 편안하게 살았으리라고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대하 36:6, 왕하 24:7, 렘 37:19-21). 포로들의 생활이 얼마나 가혹한가에 대하여는 어떤 전쟁 사를 살펴보더라도 알게됩니다. 다니엘이 편안하게 살던 기록은 어느 모로 보나 특수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기 때문이었으며, 그 보호는 그에게 명철과 총명과 지혜(Light and understanding and wisdom)를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빛과 명철과 지혜: 이 구절의 번역에 이상이 있으며, 개역성경이 번역에 사용한 사본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KJV의 번역이 바르다고 판정하며,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너에 대하여 들은 즉 네 속에는 신들 영이 있으며 빛과 명철과 띄어난 지혜가 있다 하는도다"(단 5:14, KKJV)

 

"빛과"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신 말씀과 일치되며, 명철(understanding)도 하나님의 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관찰력이며(딤후 2:7), 또 "지혜"는 우리의 구원을 지적하며, 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니엘 5장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다니엘 5장을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이다라고 만 믿고 가르쳐온 것은, 성경을 쓰신 하나님의 목적이 말세에 살고 있는 믿는자들에게 주시는 말세의 경고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3과 그 1/3의 1/10: 세상의 인구가 65억에 육박해 왔으며, 그 중 33%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2006년도에 조사한 World almanac). 하나님께서 그 22억(33%)을 위하여 성경을 쓰셨습니다. 22억 기독교 인구의 대부분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9장에 구원받은 자들을 상장하여 2억(2만만)이라는 숫자를 기록하셨습니다(계 9:16). 2억은 22억의 1/10이며, 이것이 우연의 일치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2억,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합니다.

"자주옷"은 왕실의 옷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유다인의 왕"으로써 자색 옷을 입으신 것을(막 15:17) 잊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자색 옷을 입은 기록은 참 믿는자들이 바벨론 왕국 후에 있을 왕국, 즉 천국에서 자색 옷을 입을 것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이 자색 옷을 입고 있었음을 요한계시록 18장에서 읽을 수 있으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자색 옷을 입고 살았다는 비유 등은, 모든 세상이 찬란하고 번창하는 문화문명 속에서(사단의 치하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셋째 치리자"는 실재적으로 바벨론 대국의 제2 통치자가 있던 것으로 예상되나 영적으로 제 3이라고 할 때 구원받은 택한 백성을 상징하여 말씀하시는 경우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슥 13:8-9, 왕하 1:9-16).

17-21절, 다니엘이 벽에 쓴 글을 해석함.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찌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왕을 세우심: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라고 말씀하신 것을 벨사살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세에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에 대한 모든 것을 시행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의지를 써서 무엇인가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해야할 일이 남에게 착하고 또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남에게 착하고 남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은 내 구원과 결코 관계가 없으며, 내가 세상에 태어나는 날과 죽는 날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낳기 전에 구원받는 것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내 자신이 공부할 때 알 수 있습니다. 21절이 이 사실을 확실하게 결론짓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벨사살왕의 상급을 다 거절할 수 있던 것은 구원이라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실패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세상에서 받는 상금 때문에 수 1000 배도 더 되는 구원에 대한 상급을 저버립니다. 이러한 세상의 상급은 부자가 되고 높은 사람이 되는 세상적 성공입니다.

22-28절: 계속 다니엘이 벽에 쓴 글을 해석함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함: 세상의 종말이 오는 이유 중에 하나가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고 하신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 하나님은 완벽하시기 때문에 내가 갈 길을 미리 정해 놓으셨을 뿐 아니라, 그 길을 가도록 내 일생을 진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믿는자들이 시험에 드는 이유는 내가 선택한 인생의 길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 보다 더 좋은 길인 줄 착각을 하고, "내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길이 무엇인지 말씀에서 찾는 일입니다.

29-31절, 벨사살이 죽임을 당함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무리로 다니엘에게 자주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로 그의 목에 드리우게 하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니라 그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

"금 사슬" 에 대하여는 그 주석이 창세기 41장 42절에 있습니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창 41:42)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은 애굽의 바로가 자기의 왕의 실권을 다 요셉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는 그 왕권을 다음의 왕국 즉 천국에서 받는 상징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주석은 요한계시록 4장 10-11절입니다. 구원받고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모든 믿는자들이 그 구원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양하는 장면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0-11)

이와 같이 바벨론 왕 벨사살이 당한 왕국의 마지막 날 광경을 다니엘 5장에 기록한 것을 살펴보았고, 이것이 우리가 겪는 마지막 대환난을 종결짓는 사건의 상징임을 배웠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니엘 5장의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결론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시기 때문에 성경을 우연하게 쓰신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가 쓴 글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과 대화를 하시게 됩니다. 말씀의 뜻을 바로 깨닫는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응답하는 순간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간입니다. 인간들과 대화 할 수 있는 길이 자기가 직접 쓴 성경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성경말씀을 사람의 생각대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극히 싫어하시며, 그러한 자들이 받을 심한 형벌에 대하여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된 기성교회: 바벨론 왕국의 마지막 때는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고 없는 때입니다.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온 사람들만이 살아 남은 때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때를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일대일로 비교하시며, 교회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교회에 내려지고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빛을 비취지 못하는 때입니다. 벨사살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을 써서 대 잔치를 했다는 것은 기성교회가 번창한다는 상징이며, 교회가 그 기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인간적인 것을 찬양하고 있는 때입니다(겔 21:21-23).

이 때를 진노의 때라고 하였고, 그 진노의 때가 또한 심판의 때이며, 세상의 심판이 믿는자들이 휴거를 당한 직후에 시작되고 5개월이 지날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계 14:8, 18:2, 사 21:9, 렘 50:6-8, 51:44-45).

바벨론 왕국의 종말 역사를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이 종말에 일어날 모든 사건들을 살펴보도록 암시하신 기록입니다(렘 9:4).

이대우 가족 드림

2008년 2월 12일             문서의 처음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