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마지막 큰 환난 기간이 왜 23년인가?

한 뉴스레터 독자로부터 마지막 큰 환난 기간이 왜 23년인가? 라는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한 답이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간단히 해답을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마지막 큰 환난기간에 인간들이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때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사람들이 평안을 느끼며 살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잘 알고있는 구절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2-3)

 

이 구절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로 믿는 사람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오시는 날 까지 이를 것을 가리킵니다. 다른 한편 주님께서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라고 지적하신 그 사람들은 이 환난시기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는 자들이며, 이 환난이 세상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무서운 환난임을 알게됩니다. 이 기간이 23년이며, 이 기간을 성경이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큰 환난 기간이 7년인가? 마지막 큰 환난 직전에 믿는자들이 휴거를 당한다는 것은, 천년왕국(天年王國)이 지상에 올 것을 믿는 사람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믿는자들이 휴거를 당하는 순간은 마치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신 때와 1대 1로 비교가 됩니다.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 들어간 후에 세상이 심판을 받은 것 같이, 믿는자들이 휴거를 당한 후에 세상에 심판이 내려지며, 이 심판의 때는 곧 고난의 때, 심판의 날이며, 또한 큰 환난이 지나간 후가 됩니다. 그러므로 23년은 교회시대가 끝나고 그 후 심판날에 이르는 기간입니다. 많은 교회가 이 기간을 7년 대환난으로 가르쳐 왔습니다마는, 7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7년 기간은 다니엘 9장 27절에 말씀하신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고 하신 말씀 중에서, 70이레의 마지막 이레가 큰 환난 기간이다라고 해석한 데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레의 절반"이라고 하신 것은 70 이레가 절반을 지적하며, 예수님께서 3년 반의 전도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AD 33년 유월절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매일 드리든 제사가 단번에 드려졌고, 그때부터 그 제사는 폐지된 것입니다.

큰 환난기간, 23년은 그 실마리가 노아의 홍수가 나던 해부터 7000년을 계수 하여 도달하게된 2011년에 있습니다. 이 해가 창조 후 13000 + 23 = 13023년이 되는 해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아 때에 홍수로 세상이 멸망한 BC 4990년이 천지가 창조된 후 6000 + 23 = 6023년이었다는 사실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들이 세상역사의 마지막 23년 동안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을 알게됩니다.

23의 숫자가 심판을 지적하여 말씀하신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의 제 23번째 왕: 처음 찾을 수 있는 경우는 구약시대의 교회였던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입니다.

BC 709년에 이스라엘왕국의 제 23번째 왕이던 호세아가 앗수르 왕에게 사로잡힘으로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가 끝이 났습니다(왕하 17:, 18:). 역사적으로 보면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에 의하여 왕 제도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면서도 이방 나라들의 제도를 원하였고, 이것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심판을 받은 기록입니다(왕하 19:)

2. 주권을 잃은 통치기간이 23년: 다른 한편 유다 국에서는 선한 왕 요시야가 BC 609년에 전장(戰場)에서 전사(戰死)함으로 왕국의 통치가 그 주권을 잃고 외국 왕의 통치하에 들어갔고, 그 주권을 잃은 통치가 23년 계속된 후, BC 587년에 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당한데 있습니다.

3. 광야에서 하루에 멸망한 23000명: 고린도전서 10장 8절은 하루에 23000명이 간음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은 기록에서 23의 숫자를 명시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민 25:).

4. 탑승자 276명: 숫자 23이 큰 숫자 속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죄수가 되어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산한 기록이 사도행전 27장에 있으며, 탑승자 276명이 다 구원을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숫자 276이 ∑23 = 1+2+3+-------+22+23임은 놀라운 사실이며, 풍랑은 마지막 큰 환난을 상징합니다. 또한 276은 4 x 3 x 23 = 276이며 이 숫자는 마지막 큰 환난기간에(23년) 전 세계에 사는(4) 참 믿는자들이 하나님의 뜻으로(3)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받을 것을 상징합니다.

5. 실재적인 2300주야: 23년은 마지막 큰 환난기간 3일과 반나절과 42개월(계 13:4-7)과 관계가 있습니다. 3일 반은 3.5 X 24 = 84(2 x 42)시간 이며 이스라엘이 당한 70년의 대환난은 840개월이며 이 840개월은 2 x 10 x 42로써 "42"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23년은 정확하게 8400일입니다. 그러므로 8400은 2 x 42 x 100이 됨으로 숫자 42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8장 13-14절 2300주야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 13-14)

이 구절에서 2300주야는 성전이 짓밟히는 기간 즉 마지막 큰 환난기간을 지적합니다. 숫자 23이 나타났으며, 특히 이 숫자가 "주야"라고 한 점에 유의하게됩니다. 이 2300주야는 6년 4개월이 됩니다. 이 기간이 바로 교회시대가 끝난 해 1988년이며(천지 창조의 13,000년 기념일), 이해 오순절에 시작하여 1994년의 속죄일 (예수님의 탄생하신 BC 7년 희년에서 40번째 희년인)까지 입니다.

교회시대의 끝 교회의 멸망 휴거일 심판날

1988(오순절) 1994(속죄일) 2011년,오순절 2011년,속죄일

___螡__________2300주야_______螡________6100주야_______螡________153일_______螡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숫자를 비교하면 마지막 환난기간이 70년도 아니고, 7년도 아니고, 3일반도 아니며 실제적인 2300주야가 그 환난 기간의 전반(前半)임을 알게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23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여 마지막 환난기간을 상징 하셨습니다. 이 환난 기간은 전반 2300일과 후반 6100일로 8400일이며, 그후 153일이 따릅니다(계 9:10, 5개월).

다니엘 6장 공부

책 다니엘서를 생각할 때 제일 처음으로 생각나게 하는 얘기가 이 6장에 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상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고, 그 대신 그를 모략한 자들과 그들의 식구들까지도 사자 굴에 던져져 사자들의 밥이 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모든 신학자들의 주석이 요지부동한 다니엘의 신앙을 찬양하며, 우리 신앙 생활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내 신앙을 지킬 때 다니엘에게 내리신 기적을 우리에게도 내리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석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감동을 받았을 것이며, 실제적으로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가져야할 신앙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를 쓰신 하나님의 목적이 말세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말세에 대한 현상을 가르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다니엘이 노년에 이르러 경험한 사건이며, 그의 나이가 80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10대 소년으로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왔고, 이스라엘이 당하리라고 하신 큰 환난 70년이 지난 후(렘 25:11-12)로 계수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사실은 바벨론 왕국에서 성공하여 박수들의 어른으로 지내오다가, 바벨론이 매대 적국에게 멸망을 당했지만, 그 바벨론의 왕국의 박수들의 어른이던 다니엘을 이 적국(敵國)의 총리로 직각 등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에 대한 명성이 온 세계적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런 점에서 다니엘은 참 믿는자들을 상징하며, 말씀에 의하여 자신의 신앙을 보전하며, 말씀만이 나에게 사는 길을 가르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에 가서 모든 참 믿는자들은 영적 생활에서 다니엘이 경험한 사건들을 겪을 것을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다니엘서 6장 얘기의 줄거리

1-3절; 다니엘이 다리오왕에게 등용되어 총리가 됨

4-9절; 다른 동관들이 다니엘을 시기하며 모함하여 죽이고자함

10절; 다니엘은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계속함

11-15절; 동관들이 다니엘을 왕께 고소하여 그를 사자 굴에 던지게 함

16-18절;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처벌한 것을 후회함

19-23절;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하지 못했음

24절; 다니엘의 원수들을 사자 굴에 던짐

25-27절; 다리오왕의 조서를 내려 백성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고 함

28절; 다니엘이 평생동안 형통했음

1-3절, 다니엘이 다리오왕에게 등용되어 총리가 됨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숫자 12: 다리오왕이 바벨론을 점령함으로 유대백성이 해방되었던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120 방백"의 영적인 뜻입니다. 숫자 12는 완전한 것을 상징하며 12사도나,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생각하게 됩니다. 12사도라고 할 때는 모든 믿는자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천국을 묘사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12)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12)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12)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12)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12)의 열 두(12)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12000)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12x12)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계 21: 12-17)

이 구절에서 숫자 12는 구원받은 모든 자들을 상징하며, 또 144(12x 12)도 믿는자들을 상징하는 숫자 12를 사용하신 다른 방법입니다.

또 이 120명의 방백들이 왕자(prince)들임에 유의하게 됩니다. 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믿는자들을 왕으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니라"고 하신 것은 다니엘이 총리가 된 것이 하나님의 계획(숫자 3)으로 된 것을 지적하며, 총리가 방백들을 다스림을 지적합니다. 영적으로 생각할 때 120방백들이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하며, 구원받은 자들을 다스리는 다니엘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제는 3절에 "왕이 그(다니엘)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고 함으로써 확인하셨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하던 모든 자들이 그 왕국에 없게된 사실은 천국에 대한 또 다른 상징입니다.

4-9절, 다른 동관들이 다니엘을 시기하며 모함(謀陷)하여 죽이고자함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한 것은, 예수님께서 무죄함에도 불고하고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고소했던 사실과 잘 대조가 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을 예수님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자들이 구원을 받는 순간 새로운 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영적으로 아무 허물도 없는 새사람이 됩니다(고후 5:17). 그러므로 다니엘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고 고백한 것은 다니엘의 입장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믿지 못함: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세상과 대적이 됩니다(약 4:4, 골 1:21). 다니엘의 허물을 찾기 위하여 총리들과 방백들이 "수령(Governors)과 모사와(Counsellors) 관원(Captains)이 의논하고"라고 함으로써 왕국의 모든 지도자들이 관계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이 형편이야말로 말세에 이르러 참 믿는자들이 말씀만을 의지할 때 교회에서 출회를 당하거나,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배척 당할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고소할 수 있던 유일한 "한 법률"은 "하나님의 법"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법"만을 믿고 살 때, 세상은 여러분을 "사자 굴"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사자 굴"에 대하여 성경 여러 곳에 주석이 있습니다. "굴"이라는 단어가 25번 성경에 모두 부정적인 뜻으로 씌어졌으며, 특히 예수님께서 성전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바리세인 들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도적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마 21:13, 막 11:17, 눅 19:45). 성전이 어떻게 도적의 소굴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있어야할 성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다 버리고, 자기들 생각대로 성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성전의 관리들이던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도적이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리게 한 사람들이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아니었습니까?

지금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천국을 대표하는 교회가 도적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도적질하고 사람의 생각만 남아 있는 것이 현대 기성교회가(사 56:10-12) 아닙니까? "사자굴"은 "도적의 굴혈(掘穴)"과 동의어입니다. "사자"는 맹수이며 사단을 상징하며 이것이야말로 말세의 현상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7:11)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계 6:15)

시기로 봐서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여섯째 인을 때실" 직전에 우리가 처해있으며, 다니엘이 사자 굴에 갇혔든 하루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큰 환난 시기임을 알게됩니다. 이 곳에도 "굴"은 "도적의 굴혈(掘穴)"이며 "사단의 굴"(렘 9:11)입니다.

"30일 동안"에 대하여 설명하는 성경구절을 찾을 수 없습니다마는, 3x10은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된 기간 동안 다니엘을 감시해온 것과 같이, 참 믿는자들이 교회에서 출회 당하기 이전에 얼마동안 교회 안에서 성경의 진리만을 말했던 기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잘못된 조서에 왕이 어인을 찍었다는 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마음을 현혹케 하여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살후 2:11, 사 28:7-9).

10절; 다니엘은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계속함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기도하며 감사한다"는 번역은 사본의 차이에서 온 것으로 알며, 성경에서 "기도하며 간구 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입니다. 이 구절에서 "감사"를 KJV는 간구(Supplication)로 번역했습니다.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는 다니엘의 신앙의 일면을 볼 수 있으며, 그 신앙이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이라고 한 것은 대적들이 다니엘의 일과 후의 생활까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며, 큰 환난 시기에 이르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막 24:24)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됩니다.

우는 사자: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함으로서 마치 믿는자들을 찾는 것 같이 들립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이 구절은 "사자와 같은 마귀를 조심하라"고 경고하신 사단의 무서운 속성(屬性)을 지적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주석은 바로 다니엘서 6장입니다. 택하신 백성에게는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단 6:23)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사단이 방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29절에서 이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29)

 

다니엘은 매일 세 번씩 기도했으며, 기도하는 방법이 (1)열린 창 앞에서 (2)세 번씩 (3)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또 간구 했습니다.

"열린 창"은 기도가 하나님께 도달됨을 상징하며, "세 번씩"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무릎을 꿇고"는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뜻과 또 간구 한다는 태도일 것입니다. 참 믿는자들의 기도가 다니엘의 기도와 다를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주기도"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기도의 자세한 비교를 다음 기회에 시도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또 간구 한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의 자연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가 시편 55:1, 행 1:14, 엡 6:18, 빌 4:6절에 있습니다. 기도는 곧 간구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10)라고 하심으로 세상종교와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지적하신 줄 믿습니다. 생선은 구원을 상징하며, 뱀은 저주와 멸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간구 할 것은 이 구원 밖에 없으며, 그 외에 것에 대하여는 염려하지 말도록 말씀하셨습니다(마 6:25). 다니엘의 기도와 간구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깨닫고 시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15절; 동관들이 다니엘을 왕께 고소하여 그를 사자 굴에 던지게 함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무죄한 예수님: 위의 구절은 총리들과 방백들이 계획한 대로 다니엘을 고소할 근거를 발견했다는 기록이며, 왕은 자기가 어인을 찍은 법령대로 형을 집행하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기록을 묵상하게 됩니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발견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법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된 것과 (마 27: 11-30), 다니엘의 경우와 비교가 됩니다. 말세에 일어날 사건들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교단과 교회가 사단에게 완전히 점령되었기 때문에 그 기성교회 안에서 출회를 당할 것과, 또 그것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미리 예언하셨습니다(요 16:2). 다니엘이 당한 사건을 여러분도 지금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16-18절;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처벌한 것을 후회함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ꁹ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왕의 명으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법령에 왕과 귀인들의 인이 쳐 졌기 때문입니다. 큰 환난기간에 이루어지는 사건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있는 이때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간 그 때를 상징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그 뜻을 알게됩니다.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유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계 20:3)고 하신 바로 그 때, 사단이 놓인 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단을 결박한 것이나 놓인 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시간표대로 집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자가 굴속에 있는 것과, 사단이 무저갱에서 잠깐 놓인다는 사건이 전혀 다른 사건으로 보입니다만, 마지막 때의 사건을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자굴 속에 사는 믿는자들: 말하자면 우리 참 믿는자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사자의 굴로 상징하신 것이며, 큰 환난기간에 악의 세력, 즉 미혹하는 세력이 전무후무한 무서운 사건이지만,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해를 받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한편 멸망을 받을 사람들이 사자굴 밖에 살고 있다고 함은,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일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왕이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패하니라"고 했습니까? 다니엘 6장의 얘기에서 다리오왕은 하나님을 상징했습니다(대하 36:23, 사 44:28, 45:1-7).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을 때와 같이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이 마지막 큰 화난 기간에 실족하지 않고 다 살아남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사 43:7, 21).

19-23절;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하지 못했음.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사건이 하루로 되어있습니다. 이 하루가 큰 환난 기간 23년을 대표하고 있음을 고린도전서 10장 8절을 살펴봄으로 알게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전 10:8)

이 구절은 민수기 25장에 기록된 사건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압 여인들과 간음하여 염병이 이스라엘 진 속에 퍼졌고,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 이었습니다(민 25:9). 그러나 고린도전서 10장 8절은 이 24000중에서 하루에 죽은 사람의 수를 23000이라고 지적함으로서 큰 환난기간을 "하루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인간이 당하는 환난 중에서 마지막 때에 당하는 환난은 엄청난 무서운 것이며, 그것은 간음함으로써 오며,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할 때 이것을 간음하는 것으로 정의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천국을 대표하는 기성교회가 간음하고 염병에 걸린 것입니다(사 47:1-15, 계 17:1-18).

문제가 되는 것은 간음하다 염병이 퍼져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 현재 기성교회가 아닙니까? 바사국의 총리들과 방백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던 것은 염병이 걸려있던 것과 일치합니다. 그 염병이 이스라엘 진으로부터 떠날 수 있던 것은, 간음하던 자들을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 끝이 났습니다(민 25:8-9). 마지막 큰 환난시기의 현상을 깨닫도록 주신 상징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일어나"라는 기록은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새벽에 일어났고(창 22:3),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새벽에 산에 올랐고(출 34:4), 신약의 기록에는 여인들이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무덤을 찾아간 기록이 있습니다(막 16:2, 눅 24:1). 모든 경우가 다른 일을 제쳐놓고 한 일을 우선적으로 시행했던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시행하신다는 상징입니다.

다니엘이 살아남은 것은 다니엘이 지혜가 있어서도 아니고, 힘이 세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기 때문 이였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고 한 다윗의 시편을 다니엘은 묵상하며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같은 신앙을 가질 때 거짓 가르침으로 험한 골짜기가 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두려워할 걱정이 없습니다.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살 때 하나님께서 구름을 장막으로부터 "올릴 때" 이스라엘은 행진했고, 그렇지 않는 한 장막에 그냥 머물렀던 일을(출 40:36) 생각합니다. 다니엘이 굴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천을 기억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올림을 받을 것입니다.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는 히브리 3 소년들이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서 나오던 때와 같습니다.

24절; 다니엘의 원수들을 사자 굴에 던짐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니엘을 참소 한 사람들"은 총리들과 방백들입니다. 이 총리들과 방백들이 하나님을 믿는 참 종교를 반대했다는 것은, 그들이 거짓 종교의 지도자들임을 말합니다. 이들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2장 10-11절에 "우리 형제들을 참소 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 낮 참소 하던 자가 쫓겨났고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라고 한 그 뜻이 일치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택하신 백성들을 대적하는 참소(송사)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함을 로마서 8장에 명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고(롬 8:32),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다음 35-39절에 간증했습니다. 다니엘은 이와 같이 크신 사랑을 거듭 거듭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 35-39)

25-27절; 다리오왕의 조서를 내려 백성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고 함

"이에 다리오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니엘의 하나님" 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다니엘의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다리오왕이 선포한 조서는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읽는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건과 일치됩니다.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실 천국에 대한 찬송입니다. 여러분께서 그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며,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때입니다.

28절; 다니엘이 평생 형통함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에 대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마는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여러분이 겪고있는 인생의 역사입니다.

결론

다니엘 6장의 기록은 다니엘이 80세가 넘어서 일어난 사건이며, 이스라엘의 70년 대환난이 지난 후가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해방에 대한 영적인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우리의 구원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 다니엘을 쓰신 목적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큰 환난을 당하고 있는 여러분과 제가 읽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사건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다니엘서에 나오는 단어들의 자세한 주석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자료와 또 지혜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을 참소 하던 총리들과 방백들과 또한 그에게 속한 모든 식구가 사자의 밥이 되어 없어진 사실을 통하여, 가까운 장래에 그리스도의 신앙을 배척하는 세상 사람들을 멸하실 것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우리가 유의할 점은 다니엘을 참소 한 자들이 왕국의 지도자들이었다는 것이며, 기성교회가 극도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음을 알도록 이 다니엘 6장을 읽을 때 눈을 열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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