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다니엘 7장 공부 (계속)

책 "1994?"의 내용

지난 달 뉴스레터의 오자(誤字)와 그 내용을 교정합니다.

뉴스레터 마지막 페이지, 10페이지에 "작은 뿔의 목소리" 는 "심판 주 그리스도의 목소리이며"를 "심판 주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사단의 목소리이며"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첫째 이유는 21절에 가서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였더니"라고 기록하신 데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성도"라고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해석의 오점을 발견함으로써 다니엘 7장에 숨겨두신 중요한 가르침을 발견하게됩니다. 그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는 마지막 큰 환난에 나타나는 사단에 대한 진상입니다. 큰 환난시기에 사단은 광명의 천사와 거짓의 아버지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고전 11:14). 그러므로 8절에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말을 하였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한말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시고(사 29:10), 사단이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들이 추종할 수 있게 위대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말에 사람들이 속는 이유는 그 말들의 근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 지도자로 군림하는 목사들의 설교를 분석하면 인간들에게는 위대한 교훈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성공하고, 안락한 가정을 이루고, 또 경제적으로도 성공하는 비결이 설교의 줄거리를 차지합니다. 얼듯 보기에 해가 되는 얘기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인간의 눈으로는 해가 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우신 근본 목적을 살펴볼 때 해가되는 것을 알게됩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예수님께서 처음에 정하시고, 이 교회를 예수님자신이 세우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7-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18)

위의 구절에서 발견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은 첫째 교회를 새우는 분이 그리스도자신이시며, 둘째 그 교회가 반석인 베드로 위에 새우신다고 하신 선언입니다. 우리가 반석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본성을 받는다는 뜻입니다(고전 10:4, 신 32:4).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이라는 거대한 종교단체가 교회시대를 통하여 철저한 적그리스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신앙교리: 위의 구절이 교회를 건립하고 운영하는 원리가 된다면, 그 원리에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신앙교리가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임을 증명하는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말씀인 성경에 그 토대를 두고, 이 성경을 믿고, 또 행하는 일들이 100% 성경말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택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 자신이며(엡 2:20), 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요 6:44) 그리스도의 믿음을 물려받아(faith of Christ, 갈3:22)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셋째 교회의 유일한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천국에 대하여 만민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시대가 마지막에 이르면서 세상에 모든 기성교회가 예외 없이 위에서 말한 기본교리를 믿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 상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경에 표시하셨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다니엘서에는 "네 째 짐승"으로 표시했고 또 다니엘 11장에는 이 상태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페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마 24:15-16).

그러므로 "작은 뿔"은 네 째 짐승이며, 마지막 때의 현상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뿔은 성경에서 권능을 말하며, "구원의 뿔"(삼하 22:3, 시 18:2)이라고 한 것이나,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시 132:17)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영원하신 권능을 말합니다. 반면에 "작은" 이라고 함으로써 "권능이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을 지적함이 분명합니다.

다니엘서 7장 8절에 "사람의 눈 같은 눈"은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눈을 생각하게 되며,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 밖에 없음을 상기시킵니다.

"또 입이 있어 큰말을 하였느니라"고 한 것은 듣는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위대한 설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5-18절.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음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는 성부와 함께 계시는 성자를 생각하게 됩니다마는, 사실상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에 대한 자세한 관계를 알 수 있게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는 어떤 특정한 왕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다스리는 모든 왕들을 지적하여 말하며, 그 통치자들이 다 사단의 통치하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에서 나라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며, 큰 환난이 지난 후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되는 신천지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영원함"을 세 번 반복하심으로 신천지가 사람의 생각과 노력에서 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하나님 홀로의 계획으로 이루어짐을 지적하십니다.

19-22절, 네 째 짐승의 진상

이에 내가 네 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모든 짐승과 달라서"는 이전에 존재하던 짐승과 다른 새로운 짐승이 나타난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마는, 다니엘 7장의 문맥에서는 큰 환난 기간에 인간에게 접근하는 사단의 성격을 네 째 짐승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 짐승의 성격을 첫째 "심히 무섭고"라고 한 것은 "그 짐승에게 잡히면 죽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주검입니다. 인생은 결국 죽는다는 전제아래 살고 있습니다마는 죽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나이가 들면 기동하기가 어렵고 사람들 보기에도 거북하지만 모두가 더 살기를 원하고, 또 그 노인들의 주변에서 그들이 더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살인범인에게 내리는 가장 흉악한 죄값, 사형으로 정죄(定罪)하는 법이 세워졌고, 또 사형은 가장 수치스럽게 알고 무서워하는 선고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히 무섭고"라고 한 것은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 넣는 사역을 하는 것"이 사단임을 가리킵니다.

살인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대신에 평생징역을 내리도록 하자는 운동이 미국과 또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심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며, 죽는 다는 사실을 가장 큰 형벌로 감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 6:23)고 하심으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하여는 그 죄값을 죽음으로 갚게 됨을 가르칩니다.

인간의 주검: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만일 그 죽음이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지은 죄의 죄값이라면, 어떻게 인간의 죄값이 동일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완벽하시고, 정확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옥의 형벌로 갚게 하시고, 그 형벌의 크기는 인간이 범한 죄에 따라 달라질 것을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롬 2:6, 마 16:27). 이 형벌의 때를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때를 성경은 여러 가지 다른 표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단을 잠깐 놓은 때(살후 2:3), 하나님께서 미혹을 보내시는 때(살후 2:11), 거짓을 믿는자들이 잠을 자는 때, 노아의 때와 같은 때(벧전 3:20),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은 때(눅 17:28), 거짓선지자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가르치는 때(살전 5:3), 믿는자들이 미움을 받고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려가는 때(눅 21:12-18)라고 하신 것으로 "심히 무섭고"라고 하신 것이 설명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서운 때가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늘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쿼바디스(Quovadis)'라는 폴란드인 센크빗치(Sienkiewicz)의 소설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국의 황제 네로(Nero)의 박해를 받고 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고, 화형을 당하는 장면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 쿼바디스라는 소설이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는 전설을 믿게 만드는 책이 아닙니까? 기독교인들이 지금 당하는 육체적인 환난이 이전 기독교역사에 있었던 것 보다 더 심하다는 증명을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심히 무섭고"는 택하심을 입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적용이 되는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마지막으로 받는 환난을 가리킵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환난, 심히 무서운 환난을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여러번 이 무서운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1-42)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이상과 같은 말씀 외에도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서 말씀하신 지옥이 죽은 자들의"부활"에서 시작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 편지에 이 부활이 2011년 5월 21일을 지적한 것을 성경말씀으로 배웠습니다.

"이는 철이요"에서 짐승의 이는 음식을 씹는데 쓸 뿐 아니라 상대방을 해하는데 씁니다. "철이요"는 강하다는 표시이며, 이 짐승에게 잡히면 해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발톱은 놋이요"에서 짐승의 발톱은 사람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하며, "놋"이라고 한 것은 발톱의 위력을 말합니다. 다윗 왕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준비한 귀한 금속이 역대상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대상 22:14)

놋은 금과 은에 이여 귀한 금속임을 기록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보내실 때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마 10:9)라고 하심으로 놋(동)이 귀한 금속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발톱은 놋이요"는 마지막 때에 가서 사단의 행사를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지만 해를 끼치는 이면을 보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발로 밟았으며"는 유린하며 지배함을 말합니다.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는 기성교회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회를 당하거나, 교회가 하는 형편들을 볼 수 없어 교회에서 도망쳐 나와야 함을 지적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하신 약속을 생각하게 됩니다. 택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일어날 모든 일이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도하시어 일어나게 하심을 믿게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슬픈 일이나, 즐거운 일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구원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믿고 위안을 받게 됩니다.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여 신천지를 마련하시고, 택하심을 입은 모든 백성들이 그 신천지의 상속자가(마 19: 29)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23-27절, 네 째 나라,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는 자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 째 짐승은 곧 땅의 네 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네 째 나라"는 다니엘 7장의 문맥에서 마지막 나라이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직전, 큰 환난시기를 지적합니다. 왜 이 시기를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무저갱에 갇혔던 사단이 잠깐 놓인 때이기 때문입니다(계 20:4). 인류역사에 노아의 홍수 이후 지금까지 정확하게 6997년 동안 인간이 악하고 음란했지만 그 죄과에 대한 심판을 받은 일이 없었고, 그 죄악이 인간의 동일한 운명, 주검이라는 종막(終幕)으로 눈가림을 해 온 것입니다. 최근의 보도를 들으면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수십 년을 감옥에서 고생하다가, 진범인을 체포함으로서(최신의 과학적인 DNA, 또는 수색 결과) 석방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세계의 어떤 나라도 법을 완전히 공정하게 집행할 수 없었던 것이 인류역사입니다만 하나님의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때가 마침내 오게됩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라고 한 것이 더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단의 본성을 과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사단은 놓치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그 사단의 본성을 이사야 14장에서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사 14:13)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지상에 떨어졌음을(눅 10:18)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사단은 그의 보좌를 지상에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성도를 괴롭게 함: 큰 환난시기에 이르러 사단의 행패가 극심할 것을 성경 여러 곳에 기록하셨습니다마는, 근 2000년 동안 그 뜻을 알지 못하도록 숨겨두셨든 것입니다. 모든 유명한 성경학자들이 이 마지막 때에 사단의 행패를 큰 전쟁과 재난으로 알아 왔고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에 대하여 깊이 살펴봄으로 그 뜻을 지금 헤아리게 됩니다. "성도"를 말씀하실 때는 이 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을 지적하십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지금 까지 끊임없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직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6). 또한 성도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며, 성도들이 더 이상 교회 안에서 견뎌나지 못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만일 어떤 교회가 양과 염소와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또 예배 때마다 짐승의 피를 흘리는 예식을 드린다면 어떤 기독교인이 그 교회에 남아 있겠습니까? 이와 비슷한 일이 종교개혁 당시에 일어났었고, 많은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로마 카톨릭이라는 사자 굴과 같은 멸망의 소굴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유의할 점은 지금 유대인들이 우리가 읽는 똑 같은 성경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의 생명을 걸고 바라보고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로마카톨릭 교회도 교회 교리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일이 아닙니까? 완벽하시고, 정확하시고 또 모든 것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심히 무섭고"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라"(암 8:11)고 하신 것과 일치됩니다. 기근을 말할 때는 언제나 먹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세상이 당하는 큰 환난의 기근은, 말씀이 있으나 그것을 듣지 못하는 기근입니다. 그것은 마치 법이 없는 나라에서는 범죄 하는 사람들을 벌할 수 없지만, 법이 확고하게 세워진 국가의 국민이 법을 위반했을 때 처벌당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은 하나님의 법이 마침내 확실하게 공개되고 또 집행되는 때입니다.

성경 번역: 하나님의 법인 성경은 명확하게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Wikipedia 백화사전에 기록을 보면 지난 200년 동안에 성경이 2454개 언어로 번역되었고(부분적인 번역이 포함) 438개의 언어로 전권(全卷) 성경이 발간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경번역의 사역은 우연한 기회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는 시기임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몰랐었다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정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 세우고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때이며, 이 때를 "무서운 때", 멸망의 때라고 하셨습니다.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는 베드로후서 3장 3-13절로 우리의 주의를 이끌어 줍니다. "주의 강림하신 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는 세상 사람의 생각이 아니며 자칭 기독교인들의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시가와 정확한 날자는 알 수 없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BC 7년 수장절에 세상에 오셨다는 증거가 성경에 충분히 있으며, 또한 예수님께서 믿는자들을 휴거 당하게 하시고 세상에 심판을 시작하실 날짜가 2011년 오순절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장막절(수장절)과 달라 하루를 기념하는 축일이며, 신약시대를 계수 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행 2:1). 또 2011년 오순절은 노아의 식구가 방주에 들어간 날부터 정확하게 7000년이 됩니다(창 7:11). 마태복음 24장에서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도 모른다"라고 세상은 떠들어됩니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지내리니"는 택하심을 입은 성도들이 3년 반 동안을 사단의 치하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이 되며, 이 3년 반은 7년의 절반이며, 교회시대를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이 세상에서 복음전도 사역을 하셨고, 그 전도사역의 다른 절반을 우리에게 임명하신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이 교회시대에는 사단이 마음대로 교회에서 교리도 만들고, 장로와 목사를 세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음을 지적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 에게 붙인바 되리니"는 교회시대가 완전히 끝나는 2011년 5월을 지적합니다. "온 천하 열국"도 "신천지"를 지적하심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이 "온 천하 열국"이 영원하다고 하셨을 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낡았고(시 102:26), 또 불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온 천하 열국"의 자세한 내용을 성경에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죄가 없는 곳(계 22:15)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하나님자신)께서 왕이 되시는 완전한 왕국입니다.

 

28 절,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함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위의 16절에서 "해석을 알게 하여"라고 했고 그 자세한 해석을 다니엘이 들었을 것이나, 우리가 알 수 있게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는 철이요", "발톱은 놋이며"등의 뜻은 설명하지 않았으며, 열(10) 왕과 또 하나와, 세 왕의 관계 등은 시간을 더 드려서 성경말씀을 살펴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 7장의 문맥이 마지막 큰 환난의 특징을 가르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7장은 심히 무서운 네 째 짐승에 대한 얘기가 초점이 되어 있으며, 다니엘이 그 심중에 번민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됩니다. 다니엘서 앞장(章)에서 살펴 본듯이 다니엘은 조국을 극진히 사랑하였고, 극도로 하나님을 배반하여 벌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애통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성경 예언서의 저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저술한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종말이 오는 것과, 신천지가 세워지며, 그 신천지에서 성도들이 영생을 누릴 것에 대하여 최소한도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극도로 거역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성도"가 될 수 없음을 생각할 때 번민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고 한 대서 마음에 감추었던 것이 무엇일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자기가 본 이상이 이스라엘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국제경기를 관람할 때 자연적으로 한국선수를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본 이상은 전 세계역사를 두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을 것이며, 그 역사 속에 하나님께서 극진히 사랑해 오셨던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입장과 그 말로를 반드시 생각했을 것입니다.

교회의 말로: 이상과 같이 세상종말에 대한 어려운 내용을 공부하면서 내 신앙과 삶의 토대가 되였던 교회의 말로를 바라보고 번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멸망은 그 행적이 이스라엘의 멸망과 일대일로 비교가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멸망당한 것과 같이 교회가 사람에 의하여 세운 교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교리를 완전히 저버렸기 때문에 심판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이 "심히 무서운"것이며, 이 심판을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라고 하셨지만 온 교회가 그 심판을 받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살펴보지 않고는 이 무서운 큰 환난의 심판을 알지 못하게 숨겨두셨습니다.

책 "1994?"의 내용

 

몇몇 독자로부터 책 "1994?"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1994년에 세상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고 한 캠핑씨가 2011년에 또 종말이 온다고 한 것을 어떻게 믿는가?" 라고 질문해 온 적이 있습니다. 저도 1994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을 믿고 이 책 을 번역하고 출판했던 본인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독자들의 질문을 이해하며, 또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책 "1994?의 내용을 요약하기 전에 이 책에 기록된 내용 중 몇 페이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14장 그리스도의 재림시기를 계속 찾아내다

성경은 세상 역사를 두개의 중요한 부분으로 나눈다 (491-494 페이지)

지구의 역사가 약 13,000년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두 개의 중요한 기원으로 나누었다.

베드로후서 3장 5-7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이 구절을 읽을 때 성경이 이전 세상이 있었던 것을 강조하는 것을 알게 되며, 현재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임을 지적한다. 그 전 세상은 노아 때의 홍수로 말미암아 멸망되었다. 현재 있는 세상은 불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첫 번째 세상은 약 6,000년(11,013 BC-4990 B.C.)동안 존재하였다. 현재의 세상은 얼마 동안 더 존재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숫자 7을 사용하여 그의 계획이 완전함을 제시하시며, 4990 B.C. 홍수가 지난 후 새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정확하게 7000년 후에 끝이 될 것이며 그 해는 2011 A.D.가 된다.

신명기 15장 1-2절에는 아주 어려운 어구(語句)를 써서 7000년을 제시하신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매 칠년 끝에 면제(免除)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債主)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이 히브리어의 어구 "칠년 끝"은 좀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록이며 또 매 칠년마다 땅을 묵혀 두었다. 그 칠년에는 씨를 파종하지도 않으며 추수하지도 않는다. 출애굽기 23장 10-12절을 보자.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히브리어의 어구 "묵여 두어"는 신명기 31장 10-11절에서는 "면제"로 번역된 같은 단어이다. 이 어구는 성경에 아주 드물게 씌어졌다. 이 어구는 위에서 지적한 세 구절에만 나타나며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대 이스라엘은 매 7년마다 농산물을 추수하지 않았고 돈을 빌려 준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료 이스라엘에게서 이 7년째 해는 이자를 받지 않았다. 이해할만한 사실은 농사를 짓지 못하기 때문에 갚을 이자를 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신명기 15장 1절에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게 된다. 하나님께서 만일 "칠년 째 되는 해 중에 어떤 날에" 면제가 있다고 하면 더 이해할 만 한지도 모른다.

신명기 31장 10절을 읽으면 더 복잡한 생각을 일으킨다.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에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라고 하셨다.

신명기 15장 1-2절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어구를 사용하였다. 이 구절에도 면제년을 말하며 역시 "칠년 끝"이라는 어구를 썼다. 그렇지만 유대인 달력의 연말이 봄이며, 이 연말은 유월절 15일 전에 온다. 유대인의 유월절은 정월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명기 31장 10절에 장막절을 연말로 부른다. 장막절은 유대인 달력에 7월이며 연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이상하게 표현한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장막절은 연말에 오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모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길이 없고,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별히 이 구절의 어구를 선정함으로써 진리가 밝히 나타나게 하셨으며, 이렇게 하신 이유는 역사적 사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마지막" 혹은 "끝"은 세상의 마지막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더우기 장막절은 추수를 끝마치고 경축하는 명절이었다. 성경에는 이 절기가 수장절로도 불리어졌다(출 23:16, 34:22). 그러므로 세상 마지막의 추수를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 39절에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신명기 15장 1-2절과 31장 10절의 "면제"는 세상의 끝을 지적한다. 이 면제의 뜻은 희년에 채주가 면제하는 것과 같이 병행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든 땅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동시에 모든 빚이 탕감되었다. 틀림없이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크게 표시되는 때이며 우리가 부활된 몸을 받는 때이다.

앞에서 공부한 구절에서 7년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 계획이 성취됨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뜻 외에는 다른 뜻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반면에 어떤 시기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 환란기간이 단축된다. (494-495 페이지)

우리는 아주 호기심을 자아내는 자료를 살펴보게 된다. 위에서 마태복음 24장 21-22절을 읽어 본 바와 같이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기간을 마지막 환난기간으로 계획하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기간이 계획하신 대로이면 7000년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에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는 경우 마지막 심판날은 2011 A.D.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완전한 기간이 택함을 받은 자를 위하여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공부할 때에 본 바와 같이 마지막 환난 기간에는 복음이 점차 수난을 당하여 구원을 받는 자들이 점점 적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2011 A.D.가 아니라 이 해로부터 몇 년 전이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시기는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의 환난 기간을 감하셨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마지막 환난 기간의 시간표를 살펴봄으로써 그 기간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발견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이 기간이 2300주야임을(약 6년) 공부하였고(단 8:13-14), 이 환난 기간의 시작을 발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을 숫자 7과 연관하여 알 수 있다. 2011 A.D.에서 본래 정해진 환난 기간인 2300주야를 감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시기를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본래 정해진 마지막 환난 기간에 대하여 연구해 보려고 한다.

전장에서 배운 것을 기억한다면 마지막 환난 기간은 70년이나 23년으로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말하는 3일 반은 너무 짧은 기간이므로 이 기간은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연구한 자료로는 마지막 환난을 2300주야로 줄이신 것이 확실하며, 2300 주야는 세상의 마지막과 동시에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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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 기대하던 기간 (496-497 페이지)

기대하던 환난 기간 23년을 시간표에 맞추어 놓으면, 조화가 잘 된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23년을 2011 A.D.로부터 빼면 1988년이 된다. 1988년에 2300일을 더하면 우리를 1994년으로 인도한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지금까지 여러 번 우리의 관심을 차지하던 1994년이 다시 나타났다. 이것이 우연일 수는 없다. 우리가 진리를 발견한 것이 틀림이 없다. 우리는 또 다른 의문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기로 한다. 어떤 이유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환난을 23년으로부터 2300주야로 단축하셨는가? 이에 대한 어떤 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을까?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에 대환난 기간을 단축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 보자. 마태복음 24장 22절과 마가복음 13장 20절에는 한결같이 택하신 자를 위하여 환난 기간을 감하신다고 말씀하셨으며 만일에 환난의 전 기간이 계속된다면 구원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3장 20절을 읽어보자.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 하셨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이 구원을 받을 모든 자들이 다 구원을 받을 때까지 존속한다는 성경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 구절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베드로후서 3장에 세상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말씀하셨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인류의 사악함을 참고 기다리시는 이유는 그 중에 아직도 구원을 받을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만일 세상이 하나님의 예정보다 일찍 심판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좌절된다는 것이다. 택하심을 받은 각 개인이 우선 구원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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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책 "1994?"의 내용을 몇 페이지 소개했습니다.

결국 캠핑씨가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 하셨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 13:20)고 하신 말씀을 이해 못했었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세상종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1994년 후에 계속해서 발견된 사실입니다. 그 가르침은 교회시대가 끝이 났다는 것과, 늦은 비가 내려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는 것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 사실과, 또 지옥의 심판이 153일 동안에 이루어진다는 등의 성경진리입니다.

저희들은 이상과 같은 성경의 진리가 참 그러한지 노력하여 성경말씀을 살펴볼 따름이며, 또 그 놀라운 진리를 성경에서 읽고 확인할 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우리에게는 다만 우리의 선생인 캠핑씨의 놀라운 노력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대우 가족 드림 5/14/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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