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세상 종말이 온다는 것은 기정(旣定)된 사실이지만, 예수님 재림의 날짜를 어떻게 찍어서 말할 수 있는가?

우주선을 화성에 보내는 작업을 성공하고 그 화성에 생물이 살고 있는가 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한편, 세상 곳곳에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천재지변이 일어나게 하시고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우주에서 발견하려는 계획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들 막대한 비용을 우주개발에 낭비하기 전에 인류의 복음을 위하여 더 보람있는 계획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는 회오리바람과 장마의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재지변들이 믿는자들에게는 크나큰 하나님의 경고이며, 이 지변을 통하여 세상의 종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성경에서 살펴보도록 말씀하십니다.

오랫동안 세상의 종말, 마지막 큰 환난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살펴왔습니다. 몇 독자로부터 "세상 종말이 온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짜를 어떻게 지적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사실상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날에 오신다는 예측을 발표한 일이 220번 이상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www.bible.ca). 그 중에 어떤 해(1000, 1997, 2000년)에는 약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날짜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마틴 루터와 요한 웨슬레 같은 유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1874, 1878, 1881, 1910, 1914, 1925, 1975, 그리고 1984년에 세상종말이 올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세상종말이 온다는 날짜를 말한 것이 대개의 경우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거나,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때에 그 사건에서 짐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날짜를 말한다는 것은 사이비한 종교인들이나 기독교 이단종파가 하는 일이라고 규정 되어버린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됐지 왜 날짜를 알려고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 220번 이상 세상의 종말이나, 예수님의 재림의 날짜를 잘못 찍었다고 해서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초점을 두고 쓰신 성경말씀의 내용을 다른 각도로 살펴보아야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날짜를 숨겨두신 것 뿐입니다. 숨겨 두셨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해 두셨지만 그 뜻을 아무도 모르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공부할 다니엘 12장에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인봉 할 것임이니라"(단 12: 9)고 하신 것은 막연하게 "때가 되면 성경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간수하고 인봉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간수한다"는 것은 한글 성경의 오역이며, 원문에는 "닫다"(closed) 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또 숨겨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종말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성경에 종말에 대한 기록의 많은 뜻은 그 때가 되어야만 알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시기와 신판: 전도서 8장 5-7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무론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 8:5-7)

"명령을 지키는 자"가 누구입니까? 명령은 성경전체를 지적하시며, 지키는 자는 구원받은 자 입니다. "시기와 판단"은 한글 성경의 다른 오역이며, 바른 번역은 "시기와 심판"(judgment)입니다. 심판에 대하여는 성경에 500번 이상 말씀하셨고, 이 시기와 심판은 바로 종말에 대한 시기를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고 지적하셨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다니엘 12장 9절과 함께 이해함으로 "지혜자(구원받은 자)는 세상 종말에 이르러 하나님의 심판의 시기를 성경에서 발견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기에 대하여는 2000년 전에 성경에 기록해 두셨지만 세상종말에 가서야 만 알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14-15절에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4-15)

"명하는대로 행하면"을 자유의지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물론 택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성경전체)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행하면"이라고 하신 것이 조건부가 된 것으로 알고 "구원을 받는 일도 예수를 잘 믿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일 뿐 아니라 또 본성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0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눅 17:10)

실질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으로 이루어지지만, 상을 받기 위하여 전도사업을 한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니엘 12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시대가 AD 33년 오순절 날 시작된 후 근 2000년 동안은 성경에 있는 말세에 대한 기록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1955년이라는 긴 교회시대 동안에 성경을 공부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말씀을 사랑하는 성경학도 들을 통하여 준비하셨습니다. 그 중에 제가 극히 편리하게 쓰는 도구가 Young과 Strong의 성경사전(Concordance)입니다. 이 사전을 사용하면 번역된 영문의 단어가 성경에 어떻게 씌어 젓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에 원어가 또 다른 뜻으로도 어떻게 번역되었는가를 알 뿐 아니라, 그 어원(語原)의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원래 성경을 쓰신 하나님의 마음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시대 동안에 수없이 많은 성경 주석이 발간 되었습니다마는 그 주석들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자신의 마음을 찾아보려고 하는 노력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개의 성경주석은 저자가 속해 있는 교단의 교리가 반영되어 있으며, 주석 저자의 의견을 서로 비교하면서 찬반을 말하거나, 새로운 의견이 전개된 것입니다.

제가 늘 참고로 귀하게 쓰는 주석은 오래된 Matthew Henry의 주석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믿고 개혁교리에 기초를 둔 성경해석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좀 아쉬운 생각이 있습니다. 만일 Matthew Henry가 성경을 쓰신 분이 하나님자신 이며, 그 쓰신 단어 하나 하나를 가장 적합하게 하나님 자신이 선택하셨다는 것도 깨달았다면, 성경 전체는 말세에 초점을 두고 쓰신 것을 믿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관심을 두신 성경의 독자는 구원받은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이며, 이들은 교회 시대가 끝난 후에 구원받는 사람들임을 알았던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선생이 있다: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자기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선생을 세우신 것을 믿습니다. 구약시대에 그들은 사사였고 또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교회시대에는 사도와 장로들을 선생으로 새우셨고, 그 후 "성경은 하나님께서 홀로 쓰신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믿는 성경학자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생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길은 그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선생들을 마련해 두셨을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숫자와 날자와 또 달력에 대하여 부단히 노력하여 공부한 성경학도인, 우리의 선생을 여러분에게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20세기 전반까지 온 교회시대를 통하여 성경에 기록하신 날짜와 달력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1974년에 "Adam When?" 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성경말씀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학설을 말한 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날짜와 달력"을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셨느냐 하는 것을 발견하고 발표한 책입니다.

이 책이야말로 인류가 글자를 발명하여 역사를 기록 할 수 있던 때 이전의 연대를 정확하게 찾아낸 기록이며, 이 연대는 사람의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성경말씀에서 찾아 낸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언제 일어났느냐 하는 논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논설은 인간들이 세운 가설에서 온 것이지만, 성경에 기록하신 족보와 연대에 의하면 BC 4990년이 됩니다. 또한 노아의 홍수는 창세(BC 11013년)로부터 6023년 후에 일어났고, 또 그후 불로 심판을 받는 세상의 종말이 7000년만에 올 것을 여러 가지 사실로 성경에 명시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2011년에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것은 어떤 환상이나, 계시를 받아 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표를 찾아 낸 것입니다. 이 위대한 작업을 캠핑씨가 시작했고, 이 시작이 바로 1974년에 발표한 Adam When?이란 책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구가 생긴 연령을 성경에 기록하신 창조의 년대와 비교하여 증명하는 두 가지 과학적인 방법을 연구해서 미국 자연과학 학회에도 발표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바닷물에 함유 되어있는 광물질의 함유량을 육지의 광물질이 해마다 침입되는 비율과 비교한 것이며, 또 한 방법은 C14 탄소 방사 량을 측정한 것입니다.

전에 보내드린 성경 연대의 도표를 다시 보내드립니다. 사건에 날 자를 기록해 넣은 것에 대하여 아직도 의문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천지 창조의 날 자를 BC 11013년 유월절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유월절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 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딛 1:2, 딤후 1:9).

BC 4990년 2월 17일(창 7:11)은 노아 때의 달력에 의한 것이며, 이 달력이 유대 달력과 같다고 가정할 수 없으며, 같다고 가정하면 유월절이 지난 후 한 달이 넘었고 오순절이 오기 전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날부터 정확하게 7000년이라고 할 때에 바로 그날이 2011년 5월이 되며, 세상의 종말이 됨을 예측하게 됩니다. BC 4990년 2월 17일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날임을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신 (벧후 3:8)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께서 도표의 날 자를 볼 때, 세 가지 각각 다른 달력의 날짜를 발견할 것입니다. 대개의 날짜를 우리가 지금 쓰는 양력으로 환산하여 표시하였지만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을 말 할 때는 유대인의 달력에서 유월절은 정월 14-21일, 오순절은 유월절 후 50일이 되는 날, 그리고 장막절은 7월 1일에 시작하여 8일간입니다.


다니엘 8장 공부

다니엘서는 1장부터 7장까지 아람어로 씌어졌고 8장부터 히브리어로 씌어졌다고 합니다. 8장에 기록된 연대는 아직 다니엘이 바벨론 왕 치하에 있을 때이며, 다니엘이 이상을 본 것이 "엘람도 수산성(궁전)"이라고 한 것은 바벨론의 적국(敵國)이던 바사 왕국에서 일어난 일로 되어있습니다. 주석을 쓴 성경학자들이 말하기는 다니엘이 바사국에 바벨론대사로 가 있을 때라고 했고, 또 다른 학자는 수산성이라고 한 것도 이상 중의 일부가 된다라고 합니다. "엘람도 수산성"에 대한 기록은 느혜미야 1장과 에스더서에서 여러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수산성은 왕의 술잔을 맡던 느혜미야가 예루살렘을 중건할 수 있도록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기록이 있으며,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되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이상이 "수산성"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바사왕국이 큰 환난 후에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상속받을 천국을 상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니엘 8장에 기록된 사건의 인물들과 나라들이 역사적인 기록이라 할지라도 다니엘에게 이러한 이상을 주신 것은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다니엘 8장의 요약

1-14절: 두 뿔을 가진 수양과 수염소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 이야기이며, 이 전쟁이 "매일 드리는 제사를 버리고 성소를 헐어버릴 일이 2300주야 동안 일어난 후에 끝이 납니다.

15-27절: 다니엘이 수양과 염소의 싸움을 이상에서 보고 번민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와서 그 뜻을 설명합니다.

1-4절: 수양과 수염소의 이상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이상 후 벨사살왕 삼년에 다시 이상이 나타나니라 내가 이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도 수산성에 있었고 내가 이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니라 내가 눈을 들어 본즉 강 가에 두 뿔 가진 수양이 섰는데 그 두 뿔이 다 길어도 한 뿔은 다른 뿔보다도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것이더라 내가 본즉 그 수양이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 받으나 그것을 당할 짐승이 하나도 없고 그 손에서 능히 구할이가 절대로 없으므로 그것이 임의로 행하고 스스로 강대하더라"

양과 염소에 대한 공부를 할 때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를 비유로 말씀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양은 구원받고 영생에 들어가고, 염소는 왼쪽에 새우고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25:31-46).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의 비유야말로 다니엘 8장을 공부하는데 주석이 됩니다. 짐승에 대하여 여러모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염소와 양은 구별 없이 성전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염소는 지금의 기성교회를 상징합니다. 근 2000년간 기성교회가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복음선교의 사역(使役)자로서 일하였고, 또 심판대 앞에 설 때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들이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눅 13:27)고 그들을 부인하신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 8장은 이 교회시대의 교회 활동이 어떤가 하는 것을 묵시로 보이신 것입니다. 뿔은 권력을 말하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뿔, 그리스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뿔 가진 수양"을 20절에 가서 매대와 바사왕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다서에 가면 이 수양이 매대와 바사왕국을 지적함을 충분히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을 극히 미워하던 하만이 망하고 왕후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왕 다음에 가는 치리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또 그 당시에 유대인에게 있었겠지만, 더 큰 관심은 그 역사적인 비유를 통하여 세상종말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할 사건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5-8절: 수양과 수염소의 이상

"내가 생각할 때에 한 수염소가 서편에서부터 와서 온 지면에 두루 다니되 땅에 닿지 아니하며 그 염소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 그것이 두 뿔 가진 수양 곧 내가 본바 강 가에 섰던 양에게로 나아가되 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내가 본즉 그것이 수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수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수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수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수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더라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두 눈 사이에"는 출애굽기 13장에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미간(眉間:between thy eyes)의 표를 삼고"라 하신 것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대면 할 때 눈과 눈이 마주쳐야만 진실한 대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두 눈 사이에는 현저한 뿔이 있더라"고 한 것은 그 뿔의 기능이 모든 사람 앞에 잘 나타나 있음을 지적합니다. 악이 성해지는 것은 사단의 뿔이며, 이 현상이 너무도 뚜렷함을 말합니다.

"강가에 섰던 양"은 생명의 물이 흐르는 강가에 섰음을 지적하며, 또한 이 생명의 강물은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의 상징입니다.

"그 수양을 처서"는 거짓복음이 승리하는 때임을 지적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복음사역이 기성교회에서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함을 상징한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 출판사나 방송국이든 세상이 종말에 도달했다는 성경의 진리를 출판하고 방송하는 일을 거절하고 있음을 또한 상징 한 것입니다. 그것은 "수양을 땅에 엎드려뜨리고"라 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큰 뿔이 꺾이고 대신에 현저한 뿔이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는 바로 사단이 잠깐 놓이는 시기를 상징하며,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기성교회가 곧 적그리스도의 역할을 할 것의 상징입니다.

9-14절: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 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

"작은 뿔 하나"는 다니엘 7장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주석마다 이 작은 뿔을 안티오크 에피파네스(Antiocho-Epiphanes)라고 했습니다. 에피파네스는 특히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예루살렘에 침입하여 성전제사를 철폐시킨 것을 말하고있습니다. 또한 8절에 "큰 뿔이 꺾기고"를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을 예언 한 것이라고 만 믿고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단 8:21).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을 역사에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며, 또 그 인물과 역사를 통하여 사단의 본질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안티오크 에피파네스에 대한 요약된 역사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8장이 유대인들을 괴롭힌 이 악인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이상을 보게 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학자들의 주석이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가 인류역사를 살펴볼 때 알게되는 것은, 첫째 인간의 악한 행위가 기하급수적으로 성해지며, 이러한 현상은 사단의 역할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다니엘이 본 이상은 때가 될 때까지 그 뜻을 알지 못하게 하셨지만, 지금은 때가 되어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는 요한계시록 12장 4절에 "그 꼬리가 하늘 별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하신 것과 같은 시기, 같은 사건입니다. "하늘 별"은 천국을 대표하는 기성교회를 지적하며, 그 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사단이 땅에 떨어진 것과 일반입니다.

"짓밟고"는 유린하는 것이며, 땅에 떨어진 기성교회의 성도들을 유린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추종자들이 백만이나 된다는 유명한 Joel Osteen 선교회로부터 광고지를 어저께 받았습니다. 이러한 유명지사들이 땅에 떨어진 별들을 무수히 모아놓고 짓밟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특히 한국에는 이러한 유명지사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모양입니다. 오호라! 슬픈 일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리고"에서 "제사"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는 것을 삽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드리는 무엇을 제하여 버렸겠습니까? 레위기 2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찌며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찌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規例)라"(레 24: 2-3)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등장에 불을 켜서 성전에 두는 것이 영원한 규례(規例)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원한 규례이면 지금도 그 규례를 지키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 모든 역사와 규례가 빠짐없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규례를 비유로 말씀한 것입니다. "불을 켜서"라고 하신 것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신 명령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이 빛을 비취는 사역을 교회시대에 교회가 맡아온 것이 아닙니까? 교회는 더 이상 그 복음의 빛이 비취는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사단은 짓밟고, 하나님의 성소였든 기성교회는 완전히 헐리고 만 것입니다. 오스틴(Osteen) 목사의 집회를 TV에서 관람하면 "자의로 행하며 형통하더라"고 한 말씀을 우리는 쉽게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오스틴 목사가 발간하는 잡지가 말하기를 오스틴목사의 교회는 개인의 사회적 성장을 도우며, 마을에 평화를 발견하게 도와주며, 가족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도와주며, 또 친구들과 직장 동요들과의 만족한 관계를 얻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교가 진리인 듯 들리는 때가 바로 지금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설교를 찬양하며 따라가는 때가 지금입니다.

13-14절: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위의 구절에서 두 "거룩한 자"가 나옵니다. 그 중 한 거룩한 자가 성소가 짓밟힐 기간이 2300주야가 됨을 말씀하셨음으로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어느 때까지"라고 질문한 거룩한 자는 요한계시록 6장 9-10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들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 일수 있습니다. 이들은 천국에 있지만 그리스도의 구원계획이 완성되고 신천지가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성경학자들이 "2300주야"의 뜻을 찾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주석마다 각각 다른 해석을 발표했습니다. 캠핑씨는 성경 전체의 말씀을 비교하여 깊이 살펴본 결과 2300주야에 대하여 그 정확한 뜻을 책 "1994?"에서 밝혔고, 교회시대가 AD 33년 5순절에 시작하여 1955년 후 인 AD 1988년 오순절에 끝이 났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AD 1988년 오순절에서 계수 하여 2300일이 되는 날이 AD 1994년 9월 7일이 됩니다. BC 7년은 희년이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이며, AD 1994년은 BC 7년부터 2000년이 되는 해 일뿐 아니라 40번째 맞이하는 희년이라는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15-22절: 가브리엘 천사가 이상을 깨닫게 하다

"나 다니엘이 이 이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내가 들은즉 을래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그가 나의 선 곳으로 나아왔는데 그 나아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 네가 본바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숫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상을 보이실 때 왜 다니엘을 "을래강 두 언덕"으로 인도하셨나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두 언덕"은 원문에 없는 단어를 삽입한 것이며, "을래"라는 지명(강 이름?)도 다니엘서에만 나옵니다.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고 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시며, 가브리엘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말세에 가서 성령께서 다니엘에게 보이신 이상을 깨닫게 하십니다. 또 이 사실은 다니엘이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 때"라고 함으로서 알게됩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의 뜻을 찾기 위해 성경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아들을 낳게 하겠다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얼굴을 땅에 대었고(창 17:7), 또 다윗이 불레셋의 골리앗 장사를 물매를 던져 죽였을 때 골리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죽었습니다(삼상 17:31-54). 이 두 경우에 "얼굴을 땅에 대고"라고 한 기록이 어떻게 같은 뜻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러 번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진 기록이 있습니다(겔 1:28, 9:8, 11:13, 43:3, 44:4).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상으로 보았을 때이며, 또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보았을 때이었습니다. 다니엘도 이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게 됨으로 자신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심과 그 영광을 볼 때 우리는 마치 죽은 송장과 똑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이 잠들 때"는 교회시대를 상징합니다. 이 시대에는 다니엘이 본 이상을 아무도 모르지만, 다니엘을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실 때가 된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의 비유로 잘 설명하셨습니다(마 25:1-13). 5절에 "다 졸며 잘세"라고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달에 다니엘 8장의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6/1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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