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불량이 많아졌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33 개월이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 여러분과 같이 공부할 재목이 점차로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2008년 8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 공부할 다니엘 9장은 다니엘서를 쓰신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볼 수 있는 장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장이기 때문에 많은 성경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고, 그 주석을 발표했습니다. 예외 없이 성경학자들의 주석에는 흠이 있습니다. 흠이 생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하도록 인봉 하셨기 때문입니다(단 12:4,9). 다니엘 9장이 말세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말세가 되기까지 아무도 이해할 만한 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둘째; 성경해석법(Hermeneutics)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자유의지를 믿는 신학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아무런 노력을 해도 자기의 자유의지가 성경의 뜻을 지배하기 때문에 바른 해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한 예로 예수님은 재림하신 직후 예루살렘에 수도를 새우시고 1000년 동안 왕 노릇하신다는 해석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왜곡된 교리가 요한계시록 20장을 잘못 이해한대서 왔습니다. 어떤 성경학도라 할지라도 요한계시록 20장을 정독(精讀)하면 "1000년"이 실제적인 1000년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막 4:34)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성경을 직접 쓰셨기 때문에, 처음에 쓰신 성경원문에는 오류가 없음을 믿는 일입니다. 어떤 책을 쓸 때는 그 책의 독자가 누구냐 하는 것을 예측하고 쓰는 것과 같이, 성경을 쓰신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선지자나 사도들의 손을 빌려 성경을 쓰실 때 그 독자가 마지막 때에 사는 기독교인들임을 미리 정하시고 쓰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펴놓고 읽을 때 완벽하신 절대자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앞에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3. 신약성경만을 믿고 가르친다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셨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은 한 책이며, 구약 없이 신약이 있을 수 없고, 신약 없이 구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4. 성경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가르치는데 충분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구절을 선택하여 암송도 하고 가르칩니다마는, 이해하기가 힘든 구절도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구절이 예외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경해석법을 믿고 다니엘 9장을 공부하여 주석을 쓴 분이 해롤드 캠핑씨입니다. 이번 달에는 성경말씀을 성경말씀으로만 해석한 캠핑씨의 다니엘서 9장 24-27절의 공부를 보내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다니엘서를 공부하도록 지시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기록이 이 다니엘 9장입니다.
 

다니엘 9장의 공부
 

1-6절: 다니엘의 기도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書冊)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은 예레미야 25장을 지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라고 한 점입니다. "서책"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리키며, 지금 우리가 얻은 참 교리와 신앙이 오로지 성경에서만 온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칠십년만에 마치리라"고 하심으로 바벨론 왕국의 점령이 정확하게 70년이며, 이 기간이 다니엘서를 공부하도록 지시하신 바로 마지막 때와 관계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는 다니엘이 금식하며 베옷을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말세를 당한 우리의 태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금식"은 한국기독교인처럼 철야금식 기도를 하라는 가르침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금식"은 이사야 58장 6-7절에 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 6-7)
 

참 뜻의 금식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이 복음은 "베옷을 입고"전하며, 슬퍼하며, 겸손해 진다는 뜻입니다. 장례식에 베옷을 입는 것은 슬퍼하는 것이며, 우리의 친지와 세상 사람들이 죽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되며, 그 뜻을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한 다니엘에 대하여 그의 성품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순결하여 범죄 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계한 것은 이스라엘을 대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임을 가르칩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성품이며, "주의 계명"은 성경전체입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는 이스라엘의 상태였으며, 지금의 기성교회의 상태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그 중의 한 사람임을 고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그리스도의 믿음을 주시지 않으셨으면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을 것을 말합니다. 다니엘이, 다니엘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대로 다니엘의 일생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순결하기 때문에 그에게 비전을 주셨다"라고 흔히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로 되지만, 내가 해야할 일을 해야된다"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만 이뤄집니다.
 

7-10절: 다니엘의 기도 계속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지은 죄에 대하여 여러번 "우리"라는 말을(28번씩) 쓰면서 기도했습니다. 동족(同族)을 극진히 사랑했다는 고백이며, 또한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을 상징한 다니엘의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적전에 살고있는 우리의 기도를 뜻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성경을 쓰셨습니다. "율법"은 성경전체를 지적하며, 지금에 기독교인들이 편리한대로 성경구절을 골라서 믿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11-16절: 다니엘의 기도 계속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미리 다니엘이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사건이, 마지막 큰 환난을 겪는 21세기 기성교회와 일대 일로 비교가 됨을 지적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는 자유의지를 지적하며,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부인한다는 사실입니다.
 

17-19절: 다니엘의 기도 계속 I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이 구절에는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1) "주를 위하여"이며, (2)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위함이며, (3)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며, (4) 또한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라고 가르칩니다. 한국기독교인들이 "주시옵소서"하며 통곡하는 기도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100%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활상태를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Called by the name)"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운 인구가 2,000,000,000(세상 인구의 약 1/3)이 되는, 모든 기성교회가 아닙니까? 이와 같이 세상종말에 이르러 예외 없이 교회가 하나님의 법률인 성경과 거리가 멀어진 것을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전도하는)"일이며, 또 기도하는 일입니다.
 

20-23절: 가브리엘이 이상을 설명하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거룩한 산"이 어디이겠습니까? 도움이 오는 곳이 거룩한 산이며, 그 산은 오로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십니다(시 121:1). 이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이 예루살렘성전이었는데 그 성전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다니엘이 "산을 위하여"라고 기도한 것이 성전의 재건(再建)을 위하여 기도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살펴보도록 명하신 것은 이 다니엘서가 "너희들의 입장을 설명하며, 너희들의 기도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다니엘서를 그 후 몇 사람의 유대인들이 읽었겠습니까? 그리고 몇 사람들이 다니엘 9장의 뜻을 알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70이래라는 수수께끼를 써 주셨고, 그 70이래가 지나면 다니엘서의 모든 뜻을 알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9장에 나타나는 다니엘의 모든 기도는 여러분과 나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산을 위하여"이며, 또 그 산에(여호와께) 나아가야 됩니다. 여호와께로 나아가는 것은 오로지 성경말씀만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큰 자랑으로 부르짓는 철야기도도 아니고, 통성(統聲)기도도 아니고, 부흥회도 아니고, 물론 병을 고치는 일도 아닙니다. 성경 속의 모든 비밀을 마지막 때에, 다니엘과 같이 택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분한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숨겨두신 비밀을 알게 하신다는 약속을 우리가 배우며 깨닫고있습니다.

"그 사람 가브리엘"은 그리스도이시며, 다니엘에게 "이상을 깨달을 지어다"라고 하 것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신 것은 다니엘 자신의 성품 때문에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하심으로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의 크신 은총을 받았음을 다니엘이 상징한 것입니다. 이 은총은 노아가 입었고(창 6:8), 아브라함이 입었고(롬 4:3-5), 또 야곱이 입었고(롬 9:13), 또 다윗 왕이 은총을 입은 기록이(행 13:22)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도 여러분과 나는 위에서 열거한 성경이 가르치는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100배나 더 큰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종말에 대한 모든 비전을 "그 사람 가브리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24-27절의 공부는 켐핑씨가 공부한 것을 요약했습니다.
 

24-17절:70 이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1)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1)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9장의 70 이레 목록

 

1. 누가 예루살렘을 중건하였을까?....6

2. 느헤미야가 후보자인가?.....6

3. 그리스도께서 33 A.D.에 십자가에 달리시다.....6

4. 고레스왕은 누구인가?.....7

5.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감.....7

6. 그리스도의 몸, 한 성전과 한 성읍.....8

7.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온 것은

성읍을 짓는 것과 같다.....9

8. 다니엘 9장 24절을 만족시키는

정확한 경로를 발견함.....10

9. 에스라에서 십자가까지 70 이레가 됨.....10

10. 그리스도께로의 두 번째 경로.....11

11. 첫 번째 희년.....11

12. 에스라가 돌아간 다음 해가 희년이 됨.....12

13. 희년의 주기 다음에 오는 434년간.....12

14. 예수님께서 AD 29년 에 세례를 받으심.....12

1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다.....13

16. 그리스도가 성읍이며 성전이시다.....13

17. 다니엘 9장 26절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측함.....14

18. 그리스도께서 그의 언약을 다짐하신다.....14

19. 구원에 대한 언약이 나타난다.....15

20.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심.....16

21. 70 번째 이레의 끝.....16

22.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어떤 숫자를

사용하시는 특성.....17

23. 심판날은 70 이레의 마지막이다.....17

24. 심판날은 속죄가 완성됨을 지적한다.....17

25. 이 사실을 추가하여 증명함.....18

26. 교회는 70 번째 이레의 마지막 후반에 복음을

세상에 전파한다.....18

27. 요한계시록 12장은 다니엘 9장과 관련이 된다.....19

 

다니엘 9장의 70 이레
 

성경 말씀 중에 가장 호기심을 자아내는 구절중의 하나가 다니엘 9장 24-27절이다. 이 구절 속에 하나님께서 70 이레 동안에 일어날 어떤 사건에 대하여 다니엘에게 보여준 한 비존을 우리들에게도 보여 주신다. 이 구절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시기를 제시하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신학자들은 정력을 써서 연구하여 왔다.

성경의 예언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학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다니엘 9장의 70 이레를 이해하려고 시간을 보낸다. 어쨌든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시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깨달으려고 할 때 어떤 부분에서 각각의 단어와 그 단어로 구성한 구절이 가지고 있는 뜻을 다 이해하기 전에는 우리는 만족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없다. 어떤 구절의 뜻을 성경의 몇몇 중요한 구절에 맞추어서 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문장의 전체의 뜻이 서로 조화되지 않는 한 만족한 결론을 얻을 수 없다. 더욱 의문의 말씀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을 내릴 때 성경에 있는 모든 가르침과 완전한 조화가 되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원칙에 의하여 70 이레에 대한 한 결론을 우리는 제시할 것이다. 이 구절에 있는 각 단어들의 뜻은 우리가 내리는 결론에 합리적으로 맞아 들어갈 것이다. 그 해결책은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 본질상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사와 합의가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다니엘 9장 25절의 뜻을 우선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사건이 곧 70 이레가 시작하는 시점이다. 나머지 구절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어느 시기에 이 영이 내렸는가를 우리는 발견해야 한다.
 

1. 누가 예루살렘을 중건하였을까?
 

대개의 성경학도들, 신학자들, 그리고 성경 주석의 저자들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한다는 말을 실제적인 예루살렘과 실제적인 성전의 건축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며 70 이레를 해결하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70 이레를 해결하는 비결은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몸과 또 그를 믿는자들을 상징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복하고 중건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믿는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이 사실을 살펴보며 연구를 계속하려고 한다.
 

2. 느헤미야가 후보자인가?
 

BC 445년 바사왕 아닥사스다의 술잔을 받드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중건하도록 왕의 허락을 받은 시기를 70 이레의 시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석한다. 사실상 느헤미야는 52일간에 걸쳐서 예루살렘의 성벽을 중건하였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사건이 우리가 찾고 있는 70 이레의 시점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또한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에게 성벽을 중건하도록 허락을 한 것이지 성벽을 중건하도록 명령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명령을 하셨다 거나 바사왕이 명령하였다는 기록을 성경에서 읽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신 것으로 되어 있는 다니엘 9장 25절에 느헤미야를 관련시킬 수가 없다. 더욱 우리가 어떠한 노력으로도 느헤미야의 때부터 70 이레를 계산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도달할 수가 없다.
 

3. 그리스도께서 AD 33년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는 성경을 살펴볼 때 그리스도께서 AD 33년에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안다. 누가복음 3장 1절에 세례 요한의 전도에 관한 것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기록을 읽어보자.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이 간단한 구절은 역사적인 시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역사에 의하면 디베료 가이사가 AD 14년 에 그의 통치를 시작한 정확한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15년째는 AD 29년이 된다. 동시에 우리가 요한복음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삼년 반 동안을 전도하셨다. 그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유월절은 봄이며, 그가 세례를 받은 해는 일년 전 가을이 된다. 그러므로 AD 29년 부터 3년 반은 AD 33년이 되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해가 된다.

더욱이 유대인들의 절기와 시기는 달에 의하여 조정이 되기 때문에 AD 32년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해가 될 수 없다. 유월절의 시기는 만월(full moon)과 관련이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당시의 유월절의 시기가 이와 같이 만월과 상관이 되는 해는 AD 30년과 AD 33년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근거에서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해를 AD 33년으로 지적한다. 우리가 다니엘 9장의 70 이레를 이해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해가 역시 AD 33년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살펴 본 이유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느헤미야의 사건은 우리의 문제 해결의 자료로 쓸 수 없다.
 

4. 고레스왕은 누구인가?
 

두 번째 해결책으로 몇몇 사람들의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매력이 있지만 다니엘 9장이 요구하는 모든 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 해결책은 아닥사스다왕의 선조인 고레스왕과 관계되며 그는 BC 559년에 바벨론을 점령하였다. 그에 대하여 역대하 36장 22-2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사실상 BC 537년에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에게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을 증건 하도록 명령하신 결과로 바사 왕국의 포로가 되었던 약 50,00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며 그들은 성전의 토대를 놓았다.

특별히 이사야가 거의 200년 전에 이와 같은 고레스왕의 역사를 예상하였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는 이사야 44장 28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고레스는 다니엘 9장 25절이 요구하는 두 가지의 조건, 즉 하나님께서 성전을 중건하도록 명령하신 것에 대하여 모두 충족시켰다. 그러나 고레스의 역사를 70 이레에 적용시키면 한 가지 흠이 있다. 주 예수님께서 AD 29년에 세례를 받으셨고, AD 33년에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을 BC 537년과 70 이레에 관련시킬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고레스는 느헤미야와 마찬가지로 다니엘 9장 24-27절의 뜻을 해결하는데 자료로 쓸 수 없다.
 

5.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감.
 

우리는 다니엘 9장이 요구하는 원칙을 다 충족시키는 세 번째 경로를 살펴보자. 이 경우는 아닥사스다왕 7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간 일과 관련이 된다. 이 해는 BC 458년이며,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다시 설립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가르치는 일이 성읍(City)을 중건하는 일과 관련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성경을 보면 이 두 가지 역사들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라는 명령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고레스왕의 경로를 다시 보자. 그가 말한 것을 우리가 살펴본다면, 실제적인 예루살렘과 복음을 전파한다는 표현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왕에게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성전의 토대를 놓도록 명령하신 데 대하여, 이사야 44장 28절에 예언하기를 고레스왕이 하나님의 목자라고 말하였다. 고레스왕은 목자가 아니었다. 그는 왕이었다.

성경이 목자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는 선하신 목자이시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이름을 이사야 44장과 45장에 쓰시면서 BC 537년 성전의 토대를 놓는 실제로 있을 사건을 지적하셨지만 다른 어떤 뜻으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그리스도로 상징하셨다.

바사 왕 고레스가 BC 559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은 고레스가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서 사단의 왕국을 멸망케 하셨다. 요한계시록 18장에서 읽는 것과 같이 바벨론은 사단을 상징한다.

고레스왕이 하나님의 명으로 실제적인 하나님의 전을 중건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하나님의 전을 중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이사야 45장 13절에서 이미 본 바와 같이 고레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선언하셨다. 좀 더 나아가서 17절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읍의 건물과 영원한 구원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서에 고레스가 성읍과 성전을 건축함을 말씀하실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하셨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사역이 성취됨을 지적하신 것을 우리는 본다.
 

6. 그리스도의 몸, 한 성전과 한 성읍
 

성경에 하나님의 성전과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사야 60장 14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에서 사람들이 성벽을 중건하기 위하여 온다고 말씀하셨다.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과 성읍을 같은 것으로 표시하셨다.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란 말을 사용하신 사실을 우리는 본다. 요한계시록 21장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며, 2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부르셨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신부가 실제적인 성이 될 수는 없다. 요한계시록 21장을 읽어보면 기초석이 있고 문이 있고 성벽이 있는 성을 신부로 상징하셨다.

더욱이 신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성벽을 건축한다거나 건물이 파괴된다는 것은 복음의 전파를 상징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를 들면 이방인들이 신자가 되어 예수님의 몸에 참여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야고보가 말하였다. 사도행전 15장 15-1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성령의 감동을 받은 야고보는 성벽을 다시 쌓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다시 건축한다는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함에 있어,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예루살렘 성읍을 중건하는 노력이다.

에베소 2장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 믿는자들이 건축 재료가 된다는 같은 표현을 우리는 본다. 에베소 2장 20-22절에는 우리가 예수님의 몸이 됨을 말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통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4절에는 신자들이 하나님 성전의 산 돌이 됨을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신자들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특별히 사용하셨다. 이것이야말로 다니엘 9장의 비밀을 여는 실마리가 된다. 이것은 곧 70 이레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비결이다.

불행하게도 대개의 신학자들이 실제적인 성읍을 중건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생각하여 혼돈을 일으킨다. 번번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있는 것으로 시선을 집중하기 때문에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구원의 값은 이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관계가 되는 일이며 근본적으로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우리는 다니엘 9장 25절에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일이 곧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70 이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깨닫게 된다.

 

7.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온 것은 성읍을 짓는 것과 같다.
 

에스라에게로 돌아와서, BC 458년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법을 다시 설립하도록 아닥사스다왕의 명을 에스라가 받았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에스라 7장 12-13, 23절 그리고 26절에 아닥사스다왕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을 읽는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 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스 7:12-1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스 7:23)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스 7:26)
 

에스라 7장 10절에도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하나님의 법을 설립한다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같으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성읍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 뜻임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성읍을 건설하도록 왕을 통하여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다니엘 9장 25절에서 말한 내용에 부합하며, 성읍을 건축하도록 명령한 시기가 곧 70 이레가 시작하는 시점이 된다. 우리는 BC 458년에서 70 이레를 세기 시작할 완전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이 해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사실상, 에스라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것과 건물을 건축하는 일에 관련을 시켰다.

앞에서 읽은 바와 같이 에스라 7장에 에스라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였고, 에스라 9장 9절에는 그의 기도 속에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왕을 통하여 주신 명령은 성전을 짓는 일과 관계가 된다는 말을 사용하셨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바사 열왕 앞에서 우리로 긍휼히 여김을 입고 소성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을 주셨나이다"

 

하나님께서 BC 458년 아닥사스다왕에게 에스라를 보내어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도록 명령하신 일이, 다니엘 9장 25절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다 만족시키며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린 때부터라고 되어 있다. 24절을 다시 읽어보자.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贖)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거룩한 성읍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가리킴을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다. 이 구절을 구성한 모든 말씀들의 뜻은 무엇이며 그 예언이 성취되는 시기는 언제인가?
 

8. 다니엘 9장 24절을 만족시키는 정확한 경로를 발견함.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느 시기에 허물이 마치도록 하셨는가? 또 어느 시기에 그는 우리의 죄가 끝나도록 하시는가? 어느 시기에 그는 우리의 죄악이 영속되게 하실 것인가? 즉각적으로 "물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갚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누구든지 이 사실은 알고 있다. 이 구절은 바로 그 십자가를 말한다.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악이 영속(永贖)되게 하셨고 그리고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AD 33년이 BC 458년과 관련이 있는가? 참으로 관련이 있다. BC 458년 에스라가 아닥사스다왕의 명을 받고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의 법을 다시 설립하기(복음을 전한다거나, 영적인 성읍을 건설하는 것) 시작한 해부터 AD 33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해까지가 정확하게 490년이 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구약--신약--0년이 없음--기간

458 + 33 -1 = 490
 

9. 에스라에서 십자가까지 70 이레가 됨.
 

BC 458년에 에스라는 성읍을 건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갔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AD 33년에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458과 33을 더하면 491이 된다. 491에서 1을 빼면(0년이 없음) 490이 된다. 이 490년은 성읍을 건축하도록 명령을 내린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의 죄악을 영속하시므로 우리의 죄가 끝나도록 하시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신 해까지의 실제적인 연수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상(異象)과 예언이 응하게 하셨다(Seal up the vision and prophecy). 490년은 70 이레가 된다. 70 x 7= 490년이 된다. 다니엘 9장 24-25절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우리는 본다.

"이상과 예언이 응하게 하시며"라는 구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를 가리키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세우신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 계획을 인봉 하셨음을(seal:계약의 완성) 가르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선언이다. "지극히 거룩한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는 구절은 십자가를 지적하며 바로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왕위에 오르신 것이다. "지극히 거룩한 자"는 "지성소"와 관련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성전이시고(요 2:19에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답변하셨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우리의 공식적인 왕이 되셨고, 영원한 선지자가 되셨고, 또 대제사장이 되셨다.

다니엘 9장 24절에서 말한바 70 이레는 490년이다. 그러므로 BC 458년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도록, 즉 성읍을 다시 중건하도록 명령을 받은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까지의 직접적인 경로를 우리는 발견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니엘 9장의 70 이레에 대한 한 해답을 얻었다.
 

10. 그리스도께로의 두 번째 경로
 

다니엘 9장 25-27절에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두 번째의 경로가 있다. 이번의 경우는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내리시는 사건으로 인도한다. 이 경로는 처음의 경로와 같이 BC 458년에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도록 명령을 받은 해부터 시작한다.

이 경로는 계산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그 이유는 70 이레의 기간을 가지고 약 2000년의 간격 안에서 두 가지 사건의 경로를 따로 계산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경로는 더욱 신비함이 틀림이 없다. 다니엘 9장 2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경로를 두 가지로 갈라 놓으셨는가? 첫번의 기간은 일곱 이레 즉 49년이며 둘째 기간은 62 이레 즉 434년이다.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69(7+62) 이레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든 우연히 하시지 않는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알아야 할 절대적인 뜻이 있으며 그 뜻이 또 성경 속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일곱 이레로 시작한 이 경로가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11. 첫 번째 희년
 

나는 일곱 이레가 희년의 주기를 가리키는 것을 몇 해 전에 생각하게 되었다. 레위기 25장에서 희년에 대하여 읽을 수 있고, 희년은 매 50년마다 온다. 그러므로 이 두 희년의 간격은 49년이 된다. 희년은 모든 빚이 탕감되는 해다. 희년에는 토지가 본래의 주인에게로 되돌아가고, 노예가 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유를 얻는 해가 된다. 두 희년 사이가 49년이 되는 사실이 의문을 준다.

BC 458년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법을 설립(영적인 성읍을 중건)하도록 명령을 받은 해를 시점으로 하여 두 번째 경로를 계산할 때, 우선 희년의 주기(49년)를 기준으로 하라는 뜻인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곱 이레라는 용어는 한 희년으로부터 다음 희년으로 가는 주기를 말하며, 두 번째 주기 62 이레를 계산할 때에 희년의 다음 해부터 시작하여 계산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성경에 있는 희년에 대한 연대를 살펴보자. 우리는 이러한 희년의 연대가 다니엘 9장 25절에 있는 말씀과 잘 결합이 되며, BC 458년부터 예수님의 재림시 까지를 계산하는 두 번째 경로에서 한 희년의 주기를 먼저 고려할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먼저 어떤 해가 희년이며 또 그 해는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간 때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자. 어떤 해가 희년인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제일 처음의 희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레위기 25장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셨으며, 그때 그들은 한 안식년을 주님 앞에서 지키도록 되어 있었다.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49년이 되도록 "칠 년을 일곱 번씩 계수 하라"고 하시면서 이것이 희년이 된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지 50년이 되는 해가 희년이었다.

이스라엘이 BC 1447년에 애굽을 떠났고 BC 1407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레위기 25장 2-10절을 기억하면 우리는 첫 번째의 희년을 찾을 수 있다. 레위기 25장 2절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해가 안식년임을 선언하셨다. 이 해는 바로 BC 1407년이다. 이 해로부터 일곱 이레 즉 49년 후가 첫번 희년이 된다. 이 해는 BC 1357년 (1407-50= 1357)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해가 07과 57로 끝나는 해는 희년이 된다. 희년에 대한 예를 들면 BC 1357년, BC 1307년, BC 1257년, BC 1207년 등이 된다.
 

12. 에스라가 돌아간 다음 해가 희년이 됨.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해(BC 458년)와 인접되어 있는 희년에 관심이 있다. 물론 이 해는 BC 457년이며 BC 458년의 바로 다음 해가 된다.

이 것은 우리 연구에 격려가 되는 사실이다. 두 희년 사이는 49년이며, 그 일곱 이레의 마지막 해가 안식년이며, 매 희년의 바로 전 해가 안식년이다. 그러므로 BC 458년은 안식년이며, BC 457년은 57로 끝이 나는 해임으로 희년이다.

이와 같이 다니엘 9장 25절에서 말하는 처음 기간이 희년이라는 생각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간 해가 안식년이며 그 다음 해가 희년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희년인 BC 457년부터 다음 희년은 49년을 계산하면 BC 407년이 된다. 그러므로 62 이레의 기간이 시작하는 해는 바로 이 희년의 다음 해가 될 것이다. 이 해는 BC 406년이다.
 

13. 희년의 주기 다음에 오는 434년간
 

성경에는 62의 일곱 배가되는 연수를 말하며, 이 기록은 62 이레 434년의 기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에서 발견한대로 희년의 다음 해인 BC 406년부터 시작하여 434년을 계수 하면 AD 29년에 도달한다. 이 숫자는 62 x 7과 같다(406 + 29-1 = 434 = 62 x 7).

지금까지 우리는 BC 458년 아닥사스다왕이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도록 명령한 때로부터 한 경로가 시작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셨으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이를 것이며"라고 하셨다. 이 일곱 이레는 희년의 주기이며 희년은 안식년인 BC 458년 다음 해에 온다. 일곱 이레가 되는 첫번 희년은 BC 457년에서 시작하여 BC 407년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해 BC 406년부터 시작하여 62 이레인 434년이 지난 다음에 AD 29년에 도달한다. AD 29년에 62번째 이레가 끝나며 70번째 이레가 시작된다.
 

14. 예수님께서 AD 29년에 세례를 받으심.

 

AD 29년은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해이므로 관심이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다니엘 9장이 말하는 계산의 결과가 주 예수님의 오심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명확히 나타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첫 번째 경로를 계산 할 때 70 이레인 490년을 적용함으로써 70 이레의 끝이 되는 AD 33년에 도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AD 33년의 봄인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는 약 3년 반 동안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AD 33년 유월절보다 3년 반 동안 앞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공식적으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시기 시작하셨으며 자신이 속죄제(贖罪祭)에 드릴 어린양이 되셨다.

AD 33년 봄으로부터 3년 반을 거슬러 올라가면 AD 29년 가을이 된다.

그러나 이 해는 62 이레의 마지막이 되는 해이며 다니엘 9장에 있는 두 번째 경로인 것을 발견했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잘 연결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다니엘 9장 25절은 우리를 AD 29 년에 도달하게하며,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垓字)가 이룰 것이며"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중건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며, 복음이 다시 전파됨을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 예루살렘을 중건한다는 말은 실제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영적으로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말씀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오셨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시려고 오셨다(눅 4:43-44).

26절에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러나 그 자신을 위함이 아니며](한글 성경에는 이 부분이 빠져있음)"라고 읽는다.

우리는 AD 29년부터 3년 반 후인 AD 33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안다. 기억할 것은 AD 29년은 바로 62 이레가 끝나던 해이다. 그리고 62 이레가 끝난 후, 즉 AD 29년 후 메시아께서(기름 부음을 받은 자)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언제나 성경에서 끊어져 없어짐(Cut off) 이라는 뜻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구절이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날을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그는 그 자신을 위하여 끊어져 없어짐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심판을 당하신 것이다. 그 는 AD 33년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시고 죽임을 당하셨다. 이것은 다니엘 9장 25절에 기록된 62 이레의 마지막 해인 AD 29년 후에 일어났다.
 

1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다.
 

26절에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라고 하셨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예언은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은 실제적인 성읍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절에서 성읍은 실제의 성읍이 아니고 믿는자들의 몸을 말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구절은 왕(Prince)의 백성을 말한다. 이 왕은 메시아를 가리킨다. 메시아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실 임금으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의 머리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푯말이 붙어 있었다. 참으로 그는 왕이 되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왕국을 설립하신 것이다. 왕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결정한 사람은 대제사장 가야바 이였음을 상기한다. 요한복음 11장 50절에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16. 그리스도가 성읍이며 성전이시다.
 

왕의 백성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성읍과 성전이 무엇이며 오시리라는 왕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이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가? 그는 실제의 성전을 말하는 것인가? 유대인들은 실제의 건물로 된 성전을 생각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요 2:20).

예수님께서 그 자신의 몸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멸망을 당하셨으며, 또 다시 중건이 되셨다. 우리는 물질로 된 성전을 찾기 시작하여서는 안 된다. 다니엘 9장 26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는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毁破)하려니와---".

예수님께서 그 자신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파멸을 당하였던 성전이며 사흘만에 다시 중축된 성전이다. 그러므로 다니엘 9장 26절에 말한 바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백성이었으며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오시도록 약속이 되어 있는 왕이시며, 파멸을 당할 성전이었다.

26절은 파멸을 당할 성읍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것 역시 예수님을 지적함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성전이라고 부르신 것을 기억할 것이며, 그를 믿는자들을 성전이라고 부르셨음을 기억한다. 에베소서 2장에서 읽는 것과 같이 우리는 거룩한 성전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믿는자들의 머리가 되심 같이, 믿는자들이 하나님의 성읍 안에 거한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읍임을 말한다.

믿는자들을 그리스도의 신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등으로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성읍이면 그리스도께서 그 성읍의 머리가 되신다. 그가 성전이면 우리가 또한 성전이다. 그가 성읍이면 우리가 또한 성읍이다. 이사야 62장 12절에 그리스도를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고 한 것을 보라. 그러므로 다니엘 9장 26절에 성읍이 파멸된다는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가리킨다.
 

17. 다니엘 9장 26절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측함.
 

마침내 우리는 다니엘 9장 26절에 62 이레, 즉 434년이 지나고 AD 29년 후에 메시아가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AD 29년에 세례를 받은 후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것은 434년이 경과한 후 다시 3년 반이 된 때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바리새인들과 장로들과 대제사장이었다. 이들이 바로 "와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시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도록 하였다.

다니엘 9장 26절은 또한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곧 그의 죄가 아님을 선언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만 하였다.

다니엘 9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언제나 성경에서 홍수를 이야기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쏟아 붓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표현을 창세기 7장과 8장의 노아의 홍수에 대한 자세한 것을 읽을 때 알게 된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홍수로 쏟아 부어서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그와 한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그의 진노를 쏟아 부으신 것이다. 십자가상에서 받으신 심판을 노아 때의 홍수로써 상징한 것이다.

"마지막 전쟁"이라는 말은 말할 것 없이 그리스도의 왕국과 사단의 왕국 사이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세상의 마지막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말하는 이 마지막 전쟁은 심판의 날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모든 대적들이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게 되는 때를 말한다. 전쟁의 끝은 또한 십자가를 가리키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단을 멸망시키신 것이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사탄을 멸망시키셨다고 선언하셨다. 세상 마지막에 우리는 사단과 사단의 왕국이 완전히 멸망당하는 것을 볼 것이다. 다음으로 이 마지막의 7년이 어떻게 조화가 되고 연결되는지를 알아보자.
 

18. 그리스도께서 그의 언약을 다짐하신다.
 

다니엘 9장 27절 말씀의 실마리를 풀어 보자.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일주 안에 혹 한 이레 안에 굳게 정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어떻게 이 구절을 이해하여야 하는가? ""란 누구를 지적함인가? 그가 굳게 정한다는 언약은 무슨 언약인가? 언약을 굳게 정할 "많은 무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어떤 신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하며 그가 유대인과 언약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더욱이 그들은 이 구절이 마태복음 24장 21절에서 읽는 것과 같은 마지막 환난을 말한다고 한다. 25절과 26절에 하나님께서 오실 왕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그 왕은 메시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언약을 굳게 정한다는 것은 25절과 26절에 있는 메시아가 오시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27절에 나오는 "그"가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해석을 결코 우리가 받아드릴 수 없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지적하는 구절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 함은 이 구절이 결코 마지막 환난을 지적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 때가 바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번제를 드리는 의례(儀禮)적인 법의 제도가 끝나게 된 때이다.
 

19. 구원에 대한 언약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언약은 믿는자들과 약속한 은혜의 언약, 또는 구속의 언약을 말한다. 구약성경에 언약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berith"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약 280번 나타난다. 가끔 이 단어는 영어 번역에 league(동맹)로 되어 있고, 동맹은 어떤 두 국가가 서로 동맹함을 뜻한다. 그러나 87%의 경우 이 언약이라는 단어는 은혜의 약속, 혹은 구원의 약속과 관련하여 씌어졌다. 사실에 있어 언약이라는 단어는 복음과 같은 뜻이다.
 

신약성경에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testament로 번역이 되었고 희랍어로는 "diatheke"이다. 신약성경에 이 단어는 33번 사용되었고 예외 없이 구원의 언약과 관련이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찬을 시행하실 때에(마 26:28)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의 피 곧 언약(testament)의 피니라" 로마서 11장 27절에는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언약으로 말미암아 선택을 받은 남은 자(remnant)들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 구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또한 히브리서 12장 24절에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라고 하셨다. 또한 히브리서 13장 20절에는 "영원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언약에 대한 구절들은 다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혹은 구원의 언약이 그를 믿는 모든 자 들에게 적용이 되는 것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요단강 강변에 서서 계실 때 세례 요한이 그를 바라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언약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오신 어린양이시다. 다니엘 9장 27절에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굳게 정하신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언약을 굳게 할 그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가 구원할 사람들이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인자의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위에서 살펴본 여러 성경 구절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어떠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는 암시는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은혜의 언약을 많은 구절이 강조하며 성경 전체의 주제가 은혜로 주시는 언약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다니엘의 62 이레의 끝이 AD 29 년에 일어났으며, 그 시기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때이다. 그 때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으며, 공식적인 대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때이며, 또한 공식적으로 메시아가 되심을 선언한 때이다. 바로 그 해가 70번째 이레가 시작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감을 볼 수가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27절에 "그가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라고 한 "그"가 바로 주 예수님 자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굳게 정하셨다.

그렇지만 70번째 이레의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가? 만약 우리가 AD 29년부터 7년을 간다면 36 혹은 AD 37년에 도달하지만, 성경에는 이 시기에 중요한 사건이 생긴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못된 경로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속하여 27절을 살펴보자.
 

20.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심.
 

다니엘 9장 27절 하반 절에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고 되어 있다. 이 극적인 말씀은 우리가 바른 경로를 밟고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 그 중간에, 즉 70번째 이레 중간에 제사와 예물이 금지된다고 하셨다.

역사상 제사와 예물이 금지되었던 것은 단 한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높이 가 약 50휘트[feet] 가량의 아주 두꺼운[several inches]휘장)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갈라졌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신 것이다. 그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홀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는데 그 일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없게 되었다.
 

제사를 드리는 임무가 완전히 끝을 맺은 것이다. 구약의 성직자의 직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끝이 났다. 피를 흘려 제물을 바치는 제사는 영원히 없게 되었다. 사실상 유대인들은 그 후 계속하여 몇 년 동안 피를 흘리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계속하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으로는 그들의 제사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된 것이다.

희생의 제사는 창조 직후부터 있었으며, 아벨은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고, 또한 노아도 희생의 제사를 드렸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와 같이 피를 흘려서 드리는 제사와 번제에 대한 분명한 계명을 주셨다. 이러한 희생의 제사는 "유일한 희생의 제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적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모든 번제와 피를 흘리는 제사를 그는 완성하셨다. 짐승을 죽여서 제사하는 일이나 번제를 드리는 일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시간표에는 영원히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 9장 27절에 한 이레의 반이라든가 이레의 중간에 제사와 예물이 끊어진다는 것은 곧 AD 33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AD 33년 봄 유월절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번제와 제사가 끊어졌고, 그 날은 AD 29년으로부터 3년 반이 지난 다음이다. 기억할 것은 62 이레의 마지막이 AD 29년이며, 이 때에 공식적으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메시아이심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발표하였다.

70번째 이레가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AD 29년에 시작하였고, 3년 반 후 즉 70번째 이레의 중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제사와 예물이 끊어진 것을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BC 458년 에스라가 하나님의 법을 설립하기 위하여, 즉 영적인 성읍을 중건하기 위하여 명령을 받은 때부터 십자가까지 62 이레와 반 이레가 되는 아주 분명한 경로를 찾았다.
 

21. 70번째 이레의 끝
 

70번째 이레의 나머지 반은 어떻게 되는가? 다니엘 9장 27절을 다시 읽어보자.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AD 33년에 제사와 예물이 끊어진 후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의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이 때는 바로 마지막 때 직전을 말한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사단이 옥에서 잠깐 놓여 세상을 미혹한다는 것을 안다(계 20:3).

마지막 때에 배도하는 일이 생긴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읽을 수 있으며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들"이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마지막 때에 죄악이 늘어날 것이다. 이 때야말로 잔포(殘暴)한 미운 물건들이 나타나는 때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살펴본 것과 같이 마지막 환난의 때를 말한다.

이와 같이 잔포하고 미운 물건은 종말까지 계속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심판날이 이를 것이며, 그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과 사단에게 내릴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70번째 이레의 후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 즉 제사와 예물이 끊어진 때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때 심판날까지 이른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것이다.
 

22.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어떤 숫자를 사용하시는 특성
 

예루살렘을 중건한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하여 영적인 집을 건축함을 가르친 것은 좋지만, 십자가부터 마지막 심판날까지의 전 신약시대를 3년 반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한 구절 안에 있는 숫자가 실제적인 햇수로 시작하여 상징적인 숫자로 씌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사실상 우리 인간의 논리로 본다면 그렇게 질문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셨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내가 성경을 쓴 것이 아니며, 성경학자나, 성경을 설교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쓴 일은 전혀 없다. 우리는 조용히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뜻으로 성경을 가르치시는가를 보여 주시도록 기다려야 한다.

다시 다니엘 9장 24-27절을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70 이레가 햇수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단순히 70 주간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햇수이거나 또 어떤 다른 날짜의 단위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우리가 계산한 첫 경로에서 에스라로부터 십자가까지의 70 이레가 실제적으로 490년이 되었고, 둘째 경로에서 우선 한 희년의 주기(49년)를 계산하였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한 희년의 주기는 일곱 이레 혹은 49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희년의 주기를 일곱 이레로 지적하신다. 결국은, 62 이레가 시작하기 전에 BC 458년부터 BC 407년까지가 지나갔고, 이 기간은 정확하게 말한다면 희년의 주기보다 약간 더 긴 기간이 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볼 때,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반 이레를 계산할 때 다니엘 9장 27절은 정확한 실제적인 햇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없다. 우리는 단지 성경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이 기간이 무엇인가의 답을 얻어야 한다. 27절에서 본 바와 같이 이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AD 33 년으로부터 마지막 때, 심판날까지를 가리킨다.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반 이레(3년 반)가 참으로 신약시대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강조하심을 우리는 볼 것이다. 이 사실을 요한계시록 11장과 12장에서 읽을 수 있다.
 

23. 심판날은 70 이레의 마지막이다.
 

70 이레를 말씀하실 때, 십자가와 심판날의 두 사건의 시기를 지적하실 때 하나님의 숫자를 사용하셨다. 이것은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반 이레를 전 신약시대로 지적하셨고,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며 또 하나님의 권한으로 하신 것이다.

이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반 이레가 제사와 예물이 끊어지는 십자가에서 시작하여야 함을 우리는 안다. 이 경로는 십자가로부터 마지막날까지 가야만 한다. 그 이유는 다니엘 9장 27절에 선언하기를 70번째 이레가 "잔포하고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고 한 그 종말에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종말은 심판날이며 세상의 마지막 때이다.
 

24. 심판날은 속죄가 완성됨을 지적한다.
 

심판날이 오는 마지막 때는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때다. 24절을 기억해 보면 70 이레가 예루살렘의 중건으로부터 시작하여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때에 끝이 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때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도 하며 또 한편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거듭난 영을 생각하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부활한 몸을 받지 못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때에 이루어질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완전히 없이하여 주신다. 이때에 우리 믿는자들의 죄가 끝날 뿐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죄도 그들이 지옥에 던짐을 받음으로써 끝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악이 영속(永贖)되는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속을 받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우리가 영원히 속죄함을 얻은 새 몸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천국에 계시는 그리스도께로 가고, 우리의 몸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로 무덤에 가지만, 그 죽었던 몸이 완전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구원의 완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두 가지 경로가 다 다니엘 9장 24-27절에서 말하는 대로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다.
 

25. 이 사실을 추가하여 증명함
 

우리가 요한계시록 11장을 살펴보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심판날까지를 3년 반으로 상징한 성경 구절들을 발견함으로써 지금까지 얻은 결과를 증명한다. 다니엘 9장 27절에 하나님께서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반 이레가 십자가로부터 심판날, 혹은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재림시 까지의 전(全) 신약시대를 가리키심을 상기할 것이다. 7년의 절반은 3년 반이다. 이것은 1260일과 같다. 이 정확한 기간을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두 증인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들은 요한계시록 11장 4절에서 감람나무로 상징된 교회이며, 로마서 11장에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 11장 4절에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모든 종류의 교회와 교인들이 천국의 촛대로 상징이 되어 있다. 고린도후서 13장 1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두 증인은 복음을 전하는 신약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
 

26. 교회는 70 번째 이레의 마지막 후반에 복음을 세상에 전파한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각 구절이 서로 결합이 되어 있고 잘 조화가 된 책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로부터 심판날까지를 3년 반으로 다니엘 9장 27절에 말씀하시며, 같은 날짜를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서 사용하셨다.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고 하셨다. 이 기간은 다니엘 9장 27절에서 지적하는 신약시대를 말한다. 얼마나 잘 균형이 잡혀 있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성경인가? 실마리가 되는 성경구절을 일단 발견하면 모든 말씀이 서로 잘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니엘 9장에서 우리는 성읍과 성전이 그리스도와 그의 몸이시고 또 교회를 상징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서 같은 말씀으로 상징하셨으며, 하나님께서 또 그의 전을 측량하신다고 하셨다.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이시며 척량(尺量)하라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전이 완성되면, 즉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으면 마지막이 온다. 이 기간은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서 말씀하시는 1260일이며, 이 기간은 다니엘 9장에서 말하는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후 반인 약 3년 반이며, 이 기간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

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있는 것을 읽었다.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시에 왕이 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사시던 것 같은 삶을 산다. 예수님은 그의 심령이 온유하시며 겸손하신 것을 읽는다.

그와 같이 우리도 가장 겸손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영적인 말씀을 전하여 주는 사람들이다. 굵은 베옷을 입는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죽어 가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증인이 될 때 우리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말씀, 즉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을 받게 되는 이 소식에 대하여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27. 요한계시록 12장은 다니엘 9장과 관련이 된다.
 

요한계시록 12장을 읽어보면 이 장에서도 반 이레에 대하여 연결이 되어 있다. 6절을 읽어보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이 구절에서 말하는 여인은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한 믿는자들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는 그리스도를 사람으로부터 난 아이라고 하셨다. 성경은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셨으며 그는 그리스도가 되실 아이이었다.

그 아이가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간 다음, 그 여자(신약교회)는 광야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양육을 받았다.

광야는 구약성경에서 이 세상을 상징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약속한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40년간을 광야에서 보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광야의 생활은 온 신약시대의 상징이다.

우리가 마지막 때에 부활한 몸을 받는 것은, 마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 상징이 된다. 1260일은 3년 반이 된다.

하나님께서 다니엘 9장 27절과 연결하여 신약시대의 기간을 다시 지적하셨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 요한계시록의 두 장을 통하여, 다니엘 9장 27절에서 예언하신 70번째 이레의 마지막 후반인 십자가로부터 심판날까지의 기간이 되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도록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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