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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월 뉴스레터

youshine 2017.10.20 15:53 Views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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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 드립니다.

 

이제 뉴스레터를 쓸 기회도 몇 번 남지 않았습니다. 귀중한 이 시기에 어떤 제목으로 성경공부를 해야 할까?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장 많은 의문과 질문이 바로 마가복음 13장 32절 이라 생각하면서 2월달 뉴스레터를 씁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2)

 

이 구절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같은 내용을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 3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KKJV)

 

(성경 학자들과 또 고대에 성경원문을 복사한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고심한 흔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고 하신 말씀이나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요 5:30)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혼동 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창조 주이심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창조 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을 믿음의 자녀들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혼돈하는 원인 중에 하나는 똑 같은 성경구절이 두 개의 다른 번역본에서 각각 다르게 번역 되었다는 점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아들도 모르고"라는 구절이 첨가되었습니다. 이 구절의 차이점을 두고 역대의 성경학자 들이 논쟁한 내용을 Website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차이가 생긴 이유에는 번역의 근거가 된 희랍어 사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글 개역성경은 Alexandria 사본을 번역한 것이며, KJV는 전통사본(Traditional Text)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차이가 있는 두 가지 사본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믿어집니다.

 

성경 사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신앙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읽고있는 성경은 모두가 번역한 책이며,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역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잘못된 성경번역의 문제점 이전에도 또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의 사본 (寫本)들입니다.

구약의 사본인 히브리어의 Masoretic Text는 유일한 것이며,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사본을 기독교에서도 사용합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의 사본은 5,000권이 넘기 때문에 어떤 사본을 써서 번역하였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5,225권의 사본 중 80-90%가 서로 같기 때문에 이것을 대다수 사본(Majority Text), Byzantine Text 또는 Traditional Text(TT:전통사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TT는 19세기말까지 유일하게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엽에 Codex Vaticanus(바티칸 사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 사본은 모두가 이집트 Alexandria 근처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Alexandria사본(AT)이라고 부릅니다. 로마 제국 말엽에 Alexandria에 신학교가 있었으며 그 신학의 활동으로 많은 AT가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 AT를 사용하여 번역한 성경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NIV이며,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ASV와 동일함) 입니다. 반면에 KJV는 TT를 사용하였으며, 1611년에 번역되었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KJV를 아직도 사용하는 이유는 그 번역이 다른 번역들보다도 원문에 충실하다는 이유입니다.

많은 보수적인 성경학자 들이 AT에 대한 경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TT와 AT의 차이 점이 약 8000곳이나 있다고 합니다. 이 다른 점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의 구원계획을 고의적으로 감소한 결과라고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구절에서 제해 버렸습니다. 이 구절들은 사도행전 15:11, 16:31, 로마서 1:16, 누가복음 4:41, 요한복음 4:42, 6:69 등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바꾸어 번역한 곳이 로마서 14:10에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삭제된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마태복음 18:11, 23:14, 마가복음 9:44, 46, 11: 26, 15:28, 누가복음 17:36, 23:17, 사도행전 8:37, 15:34, 28:29, 로마서 16:24 등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태복음 24장 36절의 번역을 다시 비교해 보겠습니다.

 

"아들도 모르고"는 없는 구절을 삽입 한 이유는 곧 그리스도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하신 말씀을 고의적으로 부정했거나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심을 몰랐다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기독교의 창시자로만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임을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최근에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이 몇 번 저희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저로서는 세상종말에 대한 복음을 여호와의 증인들도 들을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을 것이라는 바람으로 집안에 들어오게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거짓복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을 집에 들이지 말라고 하신 (요2 1:10)명령에 불순종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인수가 늘어가고 있지만 이들이 참 가련한 인생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 중 첫째는 지상에 천국이 온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지상천국의 왕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그리스도께서 군림하신다는 터무니없는 가르침입니다.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모두가 청산유수와 같이 성경을 얘기합니다마는, 모두가 Kingdom Hall이라는 제작소에서 틀에 넣어 만든 인형들처럼 보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경을 얻었습니다. 말 할 여지없이 번역에 사용한 사본이 AT이며, 앞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감소하여 말 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당신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 14:9)

많은 성경학자 들이 "여호와증인"을 이단으로 규명한 것에 충분한 납득이 갑니다.

 

마가복음 13장 32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2, KKJV)

 

개역성경과 KJV의 번역사이에 차이는 없습니다. 두 번역에 다 "아들도 모르고"라는 구절이 있고, 또 영문에는 번역자의 의견을 따라 아들을 대문자를 사용하여 "neither the Son"으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희랍어 원문에서는 아들을 대문자로 사용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마가복음 13장 32절을 마태복음 24장 36절과 동일한 뜻으로 말씀하셨음을 믿게 되며, "아들도 모르고"의 아들은 그리스도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 아들은 세상을 잠시동안(13,023년간) 다스리도록 임명한 "멸망의 자식", 사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2)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멸망의 아들"은 사단을 지적하지만, 사실상 멸망을 당하는 온 인류를 지적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세상종말의 "그 날과 그 때”는 예수님자신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이며, 노아의 때와 같이 방주를 짓고 있는 택하심을 입은 백성, 세상의 종말이라는 칼이 (겔33:2-3)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있는 택하신 백성이 "그 날과 때"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나팔을 불겠습니까?

노아의 식구들에게 모든 정보를 주신 것처럼, 세상종말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심판 날에 대한 자초지종을 분명하게 기록해 두셨다가, 때가 되자 공개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을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1-4)

 

"도적 같이 이를 줄"과 "아무도 모르나니"는 같은 뜻입니다. 노아 때의 홍수는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살던 모든 인간들이 "도적 같이" 당한 사건들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라는 말은 특히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지적하신 것이며,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언제 오셔도 휴거를 당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거짓선지자임을 깨닫지 못하고 확신을 가지고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렘 23:16-26) 여러분도 "이단종파"의 신자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 줄 압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끈기 있는 전도를 들을 때마다 그들 마음속에 "평안과 안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홀연(忽然)한 멸망"이 그들에게 내려질 것입니다.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라고 하신 말씀 속에 여러 가지 영적인 뜻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선 이 구절은 마지막 큰 환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영문과 희랍어에는 "해산 고통" 이라는 단어, Travail(희랍어:mochthos)이 따로 있고, 히브리어 yalad는 원래에 "아이를 밴다"는 뜻이지만 "해산하는 고통"으로도 번역을 했습니다.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과 같은 뜻이 구약성경 이사야서 13장 6-8절에도 있습니다.

 

"너희는 애곡할찌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사 13:6-8)

 

이 구절에서도 세상 종말에 가서 받을 큰 고통을 "임신한 여자같이 고통하며"라고 지적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남자들은 "해산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뿐 아니라, 여자들도 발달된 의술의 덕분으로 지금은 "해산하는 고통"을 모르고 사는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분명하게 그 뜻을 가르치시는 성경구절 들이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에 대하여는 요한복음 16장 21절에서 기록하셨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요 16:21)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세상 종말은 믿는 자들에게 무한한 영광이며, 고생 많던 인생의 천로(天路)역정(歷程)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3절에 말씀하신 해산고통은 믿는 자들을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이 해산하는 고통을 좀더 설명하는 구절이 마 24:19, 막 13:17, 눅 21:23절입니다.

 

“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 24:17)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은 바로 "해산고통"을 당할 자들이며, 단순히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을 지적하신 한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23장 29절에 이 비유를 반복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29)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은 창세기 16장이며, 이스마엘의 어미 하갈의 얘기를 읽으면 그 뜻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열국의 어미”(창 17:16)로 정하셨지만, 그는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barren)이었습니다(창 11:30). 그러므로 그가 이삭을 낳게 된 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며, 우리가 구원 받는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여러분께서 열국의 어미 사라의 후손입니까? "해산 고통"을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해산고통을 경험할 날이 몇 일 남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얻는 결론은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하신 약속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마가복음 13장을 끝까지 읽어나가면 "깨어 있어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에 유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이 매우 미약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영어의 “watch"이며 “파수군의 역할을 끊임없이 하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62장 6-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 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 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 께서 예루살렘 을 세워 세상 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 62:

 

또한 마가복음 13장 33절에서 이 파수꾼의 역할이 기도와 동시에 이루어짐을 TT원문 성경에서 말하지만 개역성경에는 "기도하라"라는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태복음 24장 36절과 마가복음 13장 32절에서 말씀하신 "그 날과 그때"에 대하여 우리가 배운 것을 요약하면,

 

1. "아들도 모르고"라 하신 것이 "그리스도께서도 모르고"라고 이해될 수 없으며, 멸망의 아들인 사단의 통치아래 있는 모든 인간들은 그 날과 그때를 결코 모를 것입니다.

 

2. 마가복음 13장 32절과 같은 사건을 말씀하신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세상종말의 날짜를 알게 될 것이며, 계속하여 파수군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 파수꾼의 역할은 성경을 계속 공부하여 발견한 진리를 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우리의 구원은 내가 믿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며, 불가능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어미인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 같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상으로 마가복음 13장 32절의 공부를 마치고 말세의 징조에 대한 성경구절을 몇 구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감람 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고 그들의 멸망을 슬퍼하시면서 세상 종말에 대한 징조를 말씀하신 기록이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7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구절을 살펴봄으로써 세상종말의 징조와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구절들이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이기 때문에 말씀의 뜻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교회의 상태를 말씀하신 구절들은 말세의 징조를 대표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성경 학자들의 가르침이 신자들의 생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면 마태복음 24장 15절에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고 하신 가르침이, 한때는 그 특정한 사람이 "교황"이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증한 것은 사단을 지적하며 사단이 거룩한 곳에 참여한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곧 일어난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 2:12-13)

 

버가모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말씀에 충성했기 때문에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교회역사를 통하여 빈번하게 일어난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이 교회로부터 출회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요 16:1-2)

 

그러므로 사단이 교회 안에 정좌하고 있는 상태가 세상종말의 시기를 알게 하시는 기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본"때는 "읽는 자가 깨닫게 되는 때" 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죄악상이겠습니까? 세상은 창조 직후부터 죄악이 관영 합니다. 사실상 지금 그 죄악이 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으로 세상의 종말의 날짜를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참 신실하신 의사 한 분께서 "말세의 징조는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서 말씀하신 "666"이라는 숫자가 실제화 하는 것일 수 있다"라고 하시면서 신문기사를 주셨습니다.

미국 전국의 의료보험 개혁안에 업무의 신속한 대처를 위해 2017년까지 온 국민이 몸에 베리칩(Verichip)을 이식하게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상당한 수의 기독교인들이, "구원 받은 자들은 이 베리칩을 몸에 받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말세의 징조이다"라고 논란을 일으키고있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성경 전체의 뜻을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 조차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결론이라고 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씀하신 666은 상징적이며,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쓰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모든 인간들이 받는 표이며, 사단(짐승)에게 인간을 통치하는 권력을 주신 것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씀하시는 사단의 활발한 사역이 말세의 징조이지만 그 시기를 알아내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말세에 대한 징조를 근본적으로 알게 되려면 다니엘서를 공부해야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마 24:15)

 

사실상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는 "말세의 징조를 다니엘서에 기록하였으니 살펴 공부하라"고 하신 명령입니다.

다니엘서에 몇 가지 중요한 숫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8장 14절에 2300주야이며, 9장 24절의 70이레이며, 12장 11절의 1290입니다.

역대의 성경 학자들이 이 숫자에 대한 설명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알도록 여러 번 노력하였지만 그 정답을 찾지 못하다가 마침내 정답을 알도록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고, 2011년 5월 21일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다니엘서에서 읽는 숫자들을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가 창세기 5장과 11장을 이해하면서 이루어 졌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가 B C 11,013년에 일어났다는 성경말씀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교회시대가 끝이 났다는 말씀을 생각할 수 없었고, 노아의 홍수가 BC 4990년에 일어났다는 성경기록을 알기 이전에는 노아의 홍수 후 7000년 만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성경의 기록을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다니엘서에 말씀하신 2300주야, 70이레, 그리고 1290일의 정확한 날짜들의 짜임이 2011년 5월 21일 세상종말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하여 성경 속에 엮어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경에 명시한 세상종말에 대한 징조를 공부할 때 모든 말씀이 더 분명해 집니다.

 

말세의 징조 50가지

 

1. 교회의 타락;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3-4)

 

배도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을 우러러 보고만 사는 기독교인들이 교회의 타락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타락을 알아야 하며,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은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신앙을 여러분께서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는 달콤한 설교이면에 숨어 있는 올무에 빠지지 않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거짓 복음에 속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말씀의 뜻을 알 수 있도록 기도와 함께 말씀을 공부하는 일입니다.

 

불법의 사람(Man of Sin)은 멸망의 아들이며, 이들이 교회에 앉아 있는 것을 성경이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때에 세상종말에 대한 날짜에 깨달음을 주십니다. “우리교회는, 우리 목사님은 제외된다”라고 아직도 주장하십니까? 분명하게 여러분은 사단을 숭배하고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세상 종말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태를 말씀하신 이상으로 그 때와 날짜를 지적하셨음을 믿어야 됩니다.

 

2. 사단이 잠깐 놓이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계 20:2-3)

 

사단이 잠깐 놓이는 기간이 1988년 오순절 다음날에서 시작하여 2011년 오순절 날 까지 23년입니다. 사단이 잠깐 놓인 것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물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살후 2:10)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고 하신 말씀과 동일합니다.

 

3. 노아의 때와 같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 나서 저희를 멸하기까지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특히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라고 하신 점에 유의하게 됩니다.

일면으로 볼 때 2011년 5월 21일 까지 세상은 변화 없이 살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지만, 인간생활의 번창을 말씀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니엘서 12장 4절에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병행한다고 믿어집니다.

잘 살게 된 세상입니다. 성공한 후 잘 살게 되었어도, 그리스도의 참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것입니다.

 

4. 참 믿는 자들, 구원 받은 자들의 상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베드로후서 3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두르라. 그날에 하늘들이 불이 붙어 해체되고 원소들도 뜨거운 열로 녹으려니와” (벧후 3:12,KKJV)

 

하나님의 날, 말세를 "간절히 사모하라"고 개역성경은 번역했습니다. KKJV의 번역이 더 잘 되었습니다. "서두르라(Haste)"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때 "속히 도망하라"(창 19:22)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같은 뜻의 구절이 마태복음 24장 16절에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라고 하신 말씀과 일치됩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유대에 남아 있는 분이 있습니까?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소돔 기둥이 된 것과 일치함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구절이 벧후 3:12입니다.

"서두르라"고 하신 명령은 교회에서 나오는 일을 "제일 위에 두고"라고 하신 명령입니다. 말세를 맞이하는 일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해야 된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5. Watch: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watch)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 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참 믿는 자들의 또 다른 행동은 마태복음 24장 42-43절에 "깨어 있어라 (watch)"고 하신 명령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 단어의 번역은 파수꾼의 역할을 철저히 하라"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도적을 맞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 "도적"이라는 단어를 watch와 함께 쓰셨고, 도적이 오는 때를 세상의 종말, 심판 날을 지적하셨습니다.(계 16:15) 그리고 그 도적이 그리스도자신 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파수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독교인은 그들이 구원을 받는 다고 믿어오던 믿음이 도적을 맞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도적을 맞지 않기 위하여 깨어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도적이 오는 날짜를 알아야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10처녀의 비유에서 도적을 맞은 미련한 다섯 처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비유에서 "졸며 잘세"((Slumbered)(마 25:5)는 신약성경에서 두 번만 씌어진 특별한 희랍어 "Nustazo"이며, 잠이 들었다는 뜻이지만 베드로후서 2장 3절이 이 단어의 주석이 되어있습니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Nustazo) 아니하느니라" (벧후 2:3)

 

"멸망은 자지(Nustazo)아니하느리라"고 하심으로 세상 종말에 있을 인간의 멸망과 관계를 지으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생각한다면 지혜롭고 미련한 10처녀(온 인류가 다 멸망의 대상이라고 하신 것이며,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오는 시기를 마지막에 가서 알았던 것입니다. 신랑이 오실 날짜를 알았던 유일한 이유는 등불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우리는 배웁니다.(시 119:105)

등불을 켜지 못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사러 쫓아다니는 때가 말세가 아니겠습니까? 실제적으로 유명한 종교서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휴거와 세상 종말에 대하여 책을 써내고 벼락부자가 된 분들을 여러분께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상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뜬소문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이 참 신앙인 줄 믿고 있는 상태가 말세입니다.

 

많은 대형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철학과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복음이라고 팔고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까지 자기들 구미에 맞는 설교를 찾아 다닐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Family Radio를 귀중하게 여깁니다. Family Radio는 60개 가령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어 연간 운영비가 수 100만 불이 되지만, 돈을 벌기 위하여 선전하는 일이 없이 꾸준히 성경 말씀만 전하고 있습니다.

 

그 중 뜬소문의 예를 몇 가지 들면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예수님께서 언제 오셔도 우리는 휴거를 당할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짜는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고 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알려는 노력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등불에 기름이 없어 찾아 다니는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세상에서 기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기름 없이 2011년 5월 21일이 오고 말 것입니다.

 

나머지 말세의 징조 45가지에 대하여 다음달에 살펴보겠습니다.

 

                                 

Matthew 1:21 (KJV) 21 She will bear a son, and you shall call his name Jesus,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Powered by Faithlife / Logos Reftagger more » *Just click in the textbox, right-click, and copy